참을 수 없는 ‘빵 굽는 향기’ [이종건의 함께 먹고 삽시다]

한겨레 2024. 5. 22.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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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만든 음식의 냄새는 없던 허기짐도 만든다.

빵 냄새 가득한 그이들의 주방에 늘 빚을 지기에, 한 번 쯤은 내 손으로 굽겠다며 가겠노라 말했더니 일할 거리를 가져오라고 한다.

빵을 주식 삼은 문화권의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그저 방치해 뒀을 뿐인 반죽에 효모가 자리 잡아 열심히 일하며 부풀어 오르는 것을 '거저 받았다'며 신성시했다.

철거현장에서 사용했던 그 빵과 같은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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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바라지 골목에서의 성찬상. 박김형준 작가

이종건 | 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

갓 만든 음식의 냄새는 없던 허기짐도 만든다. 그 중에서도 유독 사람을 홀리는 냄새가 있다. 갓 구운 빵의 향기. 고소하기도, 기름지기도, 또 한편으로는 산뜻하기도 한 복잡미묘한 향은 지나는 사람을 붙잡고 기어코 빵 한 덩이를 들고 가게 만든다. 형형색색 화려한 디저트부터, 속을 채운 고로케나 소세지 빵 등 종류도 다양하지만 역시나 빵 하면 떠오르는건 보기 좋게 부푼, 속에는 아무것도 채우지 않은 주식 빵이다. 철거현장에서 예배를 드릴 때면 나와 동료들은 늘 ‘성찬식’을 한다. 성당과 교회에서 때마다 하는,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종교 의례다. 강제철거로 나뒹구는 집기들 사이에 간이 테이블을 세우고, 정갈히 천을 덮는다. 목사는 테이블 위 빵을 두 갈래로 찢고, 모두에게 보이도록 포도주잔을 들어 축복한다. 거친 폭력 앞에 벼리게 세워진 마음이 함께 나누는 식탁 속에 위로받는다. 우리는 그걸 ‘한 몸’을 이룬다고 한다.

“중간중간 기다려야 하니, 일할 거리를 가져오시는 게 좋겠어요.”

내게는 빵을 굽는 좋은 동료들이 있다. 보통의 성찬식에서 사용하는 납작하고 맛없는 전병이 아닌 진짜 빵을 사용할 수 있도록, 중요한 날이면 빵을 구워 가져다주는 고마운 이들이다. 빵 냄새 가득한 그이들의 주방에 늘 빚을 지기에, 한 번 쯤은 내 손으로 굽겠다며 가겠노라 말했더니 일할 거리를 가져오라고 한다. 사워도우 빵을 만들기로 했다. 공장식으로 굽는게 아니라, 며칠에 걸쳐 만든 발효종을 이용해 만드는, 시큼하고 고소한 빵이다. 밀가루, 물, 소금에 발효종을 섞고 사전 발효만 12~16시간. 휴지를 거치고 손반죽을 한 뒤 또 1, 2차 발효를 거친다. 바쁜 손노동보다는 섬세함과, 인내심이 대부분인 작업. 일할거리 가져오라던 이유를 알겠다.

“인간이 하는 일은 얼마 없어요.”

충분히 많은 노동이 있었지만, 그래도 인간이 하는 일 별로 없다던 그 말이 좋았다. 빵을 주식 삼은 문화권의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그저 방치해 뒀을 뿐인 반죽에 효모가 자리 잡아 열심히 일하며 부풀어 오르는 것을 ‘거저 받았다’며 신성시했다. 우연한 계기로, 수천년전의 인류는 손바닥만한 밀가루가 식구를 먹이게 되는 기적을 마주했고, 그렇게 가장 오래된 종류의 주식이 탄생했다. 우리는 각자 그저 자신의 할 일을 하며 살아가는데, 그 모두의 총합은 어쩐지 내 노력보다 크고 아름답다고 느낀다. 다 계수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보편적 노동이 이 도시를 부풀게 한다. 거저 받은 것 같은 도시의 일상 속에는 보이지 않는 서로의 노동이 촘촘히 얽혀 있다. 우리의 도시는 커다랗게 부푼 빵이다. 하지만 도시를 부풀게 한 노동은 수치화 되지 않고, 부동산이라는 이름의 숫자만 남았다. 촘촘하고 세밀하게 짜여진 도시의 맥락을 끊어내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에서 오늘도 직접 구운 빵이 기분 좋은 향기 뿜으며 찢어진다. 모두의 손에 쥐어지는 성찬 빵은 공평한 밥상이다.

예열된 오븐에 반죽이 들어간다. 예쁘고 큰 빵 한 덩이가 나왔다. 철거현장에서 사용했던 그 빵과 같은 모양새다. 두 시간을 더 식혀 먹어야 한다는데, 참을 수가 있어야지. 겉면을 칼로 긁으면 기분 좋은 소리가 난다. 그걸 석석 잘라내니, 효묘가 일한 자국인 공기방울이 촘촘하다. 거친 빵을 씹는다. 발효되면서 나는 특유의 신맛이 있다. 그 신맛에 침이 고이고, 씹을수록 고소함이 더해진다. 기분 좋은 향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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