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툰은 독자와 소통하는 재미…계속 그리고 싶어요”

한겨레21 2024. 5. 22.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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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난다② 순간을 포착하는 단단한 필력… <도토리 문화센터> 난다 작가 인터뷰
<도토리 문화센터> 사군자 교실의 터줏대감 정중순.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어쿠스틱 라이프><도토리 문화센터> 난다 작가의 이야기가 앞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

요절복통 생활개그, 비결은 관찰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5531.html

<도토리 문화센터>(이하 <도토리>)라는 스토리 만화를 하면서 그 즐거움을 알았을 것 같은데, 게다가 <어쿠스틱> 휴재는 지금 6년차거든요.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저도 이렇게 휴재가 길어질 줄 몰랐어요. 최근에 1권부터 14권까지 다시 읽었어요. 다시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야 아무래도 좀 들죠. 그런데 개인적인 생각을 푸는 툴이 스토리 만화와는 좀 다른 매력이 있거든요. 최근에 저는 잡스러운 생각 같은 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많이 해소하고 있어서…, 이렇게 해소하지 말고 그리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들어요. 물론 잘할 수 있는 것과는 별개로요.”

“실제 있었던 일 만화적으로 전달”

난다 작가의 작업실 풍경. 난다 제공

스토리만화는 작품 뒤에 작가가 약간 숨을 수도 있지만, 생활툰은 아무래도 작가 자체가 오픈되는 느낌이라 불편하진 않나요.

“맞아요. 스스로가 약간 소비되는 느낌이 들 수 있고, 오래 하다보면 아무래도 그렇게 되더라고요. 오래 연재할 때는 말하고 싶은 욕구가 많이 사라졌는데요. 이제 한 5년 쉬다보니 다시 말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 거 같아요. 한 편 올리면 거기에 대해 댓글도 많이 올라오고, 마치 독자들이랑 같이 얘기하면서 소통하는 듯한,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작품 속에선 스스로 건망증이 많다고 말하는데, 이 많은 에피소드를 어떻게 발굴하고 겹치지 않게 하나요.

“일단 재미있는 일이 있으면 기록을 잘해두는 편이고요. 기록을 보다보면 기억이라는 게 어떤 지점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다른 것들까지 줄줄이 생각나는 게 있거든요. 제겐 그런 일이 많은 것 같아요. 연상 작용처럼요. 기록해둔 것 중에서 사용한 것은 삭제해두고, 기억이 확실치 않을 때는 남편에게도 한 번씩 확인합니다.”

생활툰이라고 해도 등장인물의 성격 설정에 맞춰서 사건들을 조율하지는 않나요.

“아니요. 만화에 쓰는 내용은 기본적으로 다 있었던 일을 기반으로 해요. 개인정보가 드러날 부분은 감추든가 대사의 어미나 조사를 조금 바꿔서 재미있게는 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이 하지 않았던 일은 쓰지 않아요. 상황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해 연출의 강약이나 순서를 조절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작업이지만, 재미를 위해 없던 일을 만들어서 끼워넣는 일은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독자들은 아마 금방 눈치챌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있었던 일을 최대한 만화적으로 재미있게’ 전달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난다 작가 에세이 <거의 정반대의 행복>. 위즈덤하우스 출간.

<거의 정반대의 행복>을 읽고 글이 너무 좋아서 놀랐습니다. “건강한 어른의 몸에 맞춰진 세상에 나는 아이의 몸이 되어 다시 적응해야 했다.” 글 쓰는 연습을 따로 많이 했나요.

“연습했다기보다는 개인 홈페이지 시절부터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계속 짧은 글을 썼고, 또 <어쿠스틱>이 내레이션이 되게 많잖아요.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문장 다듬는 훈련이 된 거 같아요. 하지만 본격적으로 이렇게 긴 글을 모양을 갖춰 쓴 건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정말 힘들었어요. 그림으로 그리면 한 컷이면 되는데 글쓰기는 단어가 몇천 개가 필요하고…, 제가 쓸 수 있는 어휘에 한계가 딱 보이더라고요. 정말 고생했어요. 다시는 글을 안 쓰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요(웃음).”

“내가 진짜 원하는 걸 그린다”

책도 많이 읽나요?

“10~20대 초반엔 좀 많이 읽었는데 소홀해졌다가 지금은 스스로 많이 소진됐다는 걸 느끼거든요. 부족한 걸 그냥 직접적으로 느껴요. 뭔가를 읽을 때 분명히 내가 모르는 배경지식이 있는 것 같은데 이게 뭔지 모르겠다, 엄청 근원적인 뭔가가 있을 것 같고…. 거기에서 기반한 맥락인 거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이런 게 되게 많은 거예요.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 근원이 되는 텍스트를 찾아서 읽고 제가 취약한 부분은 더 찾아 읽고 이전에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안 읽었던 유명한 만화작품들도 일부러 읽어요.”

대표적인 두 작품 모두 ‘오늘의 우리만화’ 수상작이죠. 이들이 대중적으로도 사랑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는 걸까요, 아니면 취향을 드러냈을 뿐인데 사랑받게 된 걸까요.

“둘 다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게 먹힐까, 이렇게 하면 인기가 많겠지 하는 건 항상 실패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 기준으로 작업하면 그리는 나도 너무 괴롭고 또 그게 작품에 다 드러나서 결과도 좋지 않고요. 내가 원하지 않는 걸 고생해서 그리는 것보다는 내가 진짜 이거 그리고 싶다 해서 그리는 쪽이 훨씬 더 얻는 게 많은 것 같아요. 물론 상업적으로 먹힐까 아닐까 이런 것도 당연히 생각해야겠지만 같이 조율해야 하는 문제인 것 같아요. 가끔은 진짜 내 욕망대로 완전히 그려볼까, 이런 생각도 해요. 그런 건 보통 단편으로 돌리는 편입니다.”

단행본으로 출간된 <도토리문화센터>

콘티 설정집은 몇 개나 있나요. 최근 출판된 단행본에 “오랜만에 꺼냈는데 이렇게 재밌는 게 있었나” 하는 부분이 있던데요.

“아니요(웃음). 실제 보니까 비슷비슷한 얘기를 약간씩 변형시킨 게 많더라고요. 사실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건, 스토리 장편 하나 끝내고 나니 훨씬 더 많이 쏟아지는 것 같아요. 계속 준비만 하고 생각만 했을 때는 같은 아이디어들이 맴돌고 끝도 안 맺어지고 이랬는데, 장편 하나 끝내고 나니까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되겠다는 게 이제 보이더라고요. 한 번 경험하니까 이야기가 더 많이 생각나요.”

데뷔 전과 데뷔 후 그림체가 약간씩 변해왔습니다. <어쿠스틱>을 오래 연재했는데 최근 화로 올수록 선이 조금 더 편안해졌어요. 그러다 <도토리>에서는 뭐랄까 붓으로 그리는 것 같은 부분도 있잖아요. 혹시 문화센터의 붓글씨 교실의 힘일까요. 3년간 붓글씨 내공을 닦았나요.

“(웃음) 붓글씨 교실은 코로나19 때문에 한 달밖에 못 다녔어요. 제가 쓰는 프로그램에서 필압을 느끼도록 사용해서 붓으로 그린 것 같은 느낌을 낸 거고요. 아무래도 물리적으로 그리는 시간이 늘다보니 자연스럽게 조금씩 느는 것 같아요.”

<도토리>의 그림체가 작품이랑 정말 어울린다고 생각했거든요.

“고맙습니다. 이야기에 맞는 그림체를 그리려고 좀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힘들어요. 제가 원래 해부학적으로 정확하게 그리는 스타일도 아니고 데포르메(회화에서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변형하고 왜곡을 가하는 기법)도 많은데, 좀더 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그림에서도 그런 임팩트를 주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서 연습해보고 있어요.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나를 지키는 시선의 단단함

모든 작품에서 ‘나다운 것’을 지키려는 의지가 보이고, 자신에서 출발해서 세상을 바라보려는 시각이 무척이나 단단하게 보입니다. 물론 작품이 작가 자체는 아니겠지만 무엇이 이런 시각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나요.

“오히려 제 멘털이 참 약하고 어떤 것에 영향을 받으면 너무 크게 휩쓸리기 때문에 그런 거에 대한 방어기제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강해서 더 그렇지 않나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스스로 통제해야 하고 나한테 맞는 건 내가 결정해야 하는 스타일인데, 남한테 휘둘린다든지 상황에 휘둘린다든지 통제권을 잃으면 남들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향인 것 같아요. 이런 상황이 아주 불편하고, 피하려 하고, 또 남들이 나한테 침범하는 것도 싫고, 그런 게 감지되면 본능적으로 불편하니까 그러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아요.”

에필로그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사인을 받고 간단한 반주와 함께 사심을 잔뜩 채우며 저녁을 먹었다. 여전히 긴장이 안 풀려 횡설수설한 것 같아 아쉽지만. 어디에선가 난다 작가는 필명을 너무 아무렇게나 지은 거 같아 후회된다고 했다. 하지만 단어 뜻 그대로 난다의 작품이 각종 경계와 벽을 넘어 훨훨 날아다녔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퉁명스럽기만 한 엄마의 딱딱하고 갈라진 발뒤꿈치를 이해할 수 있어 사랑받고 싶어 했던 딸들의 마음과, 살아가느라 바빠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한 채 상처를 줬던 모든 엄마의 마음이 낮달맞이꽃처럼 환하게 피어나지 않을까.

세상에 자기 자리 하나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사라지고 있는 것만 같은 누군가를 붙들어 단단히 두 발로 서게 만들어줄 수 있는, 숨어 있는 약한 이들에게 ‘얼마든지’ 손을 내어줄 수 있는, 그런 마음들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밖으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도토리> 속 사군자 교실 수강생 정중순의 미술 선생님이 쓴 편지(“은사(恩師), 너는 나의 은혜로운 스승이란다. 이 두 번째 이름은 오로지 너 스스로 만든 거야”)처럼, 우리가 자기 삶의 진짜 주인이 되고, 서로에게 은사가 돼줄 수 있도록 말이다.

한상정 만화연구자·인천대 교수 

작품 목록

<어쿠스틱 라이프> 2010~2018년 다음웹툰(현 카카오웹툰) 연재. 애니북스에서 14권으로 출간.

웹툰작가인 난다와 게임개발자인 한군, 두 부부의 꾸밈없는 일상을 보여주는 작품. 웃김 주의.

<내가 태어날 때까지> 2014년 애니북스 단행본. 여성커뮤니티 ‘마이클럽’(현재 서비스 종료)에서 연재함.

임신과 출산을 다룸. 여성 독자들의 성원으로 당시 누적 조회 수 100만 기록.

<난다의 두 번 본 영화> 2015년 <채널 예스>에 격주 연재.

난다가 두 번씩 본 영화에 대한 웹툰.

<거의 정반대의 행복- 너를 만나 시작된 어쿠스틱 라이프> 2018년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 2주 만에 1만3천 부를 판매한 에세이집.

그간 갈고닦았던 내레이션 실력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보여줌.

<도토리 문화센터> 2021~2023년 카카오웹툰 연재. 문학동네에서 단행본 2권까지 출간.

주변 사람들을 따뜻하게 보게 됨. 지하철에선 독서 주의. 크게 웃다가 울다가 해서 미친 사람 취급당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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