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로동당 서약한 경우”…황당한 진도 사건 자문 의견 낸 뉴라이트 교수

고경태 기자 2024. 5. 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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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진실화해위 ‘진도 사건’ 자문회의
제성호 교수 가정법으로 ‘부역 몰이’
“구체적 자료와 기록 없다”는 건 인정
2016년 4월29일 오전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에서 인권법제위원회 주최로 열린 2016 북한 인권 전략회의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NGO의 역할 모색\'에서 당시 제성호 인권 법제위원장과 참석자들이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암살대원의 행위가 북한(인민군, 정치보위부나 내무서 등)의 지시 또는 통제 하에 이루어진 것이라면, 당해 암살행위는 반국가단체의 지시 또는 통제 하에 이루어진 반국가적 불법행위로 의율(적용)될 것임. 이와 관련, 암살대원이 조선로동당에 당원으로 ‘가입’하거나 충성서약 등을 한 경우에는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으로도 간주될 수 있음. -하지만 일응 이에 관한 구체적인 관한 자료나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임.

다른 한편, 북한이 암살대원의 행위를 지지, 인정, 채택, 수락, 승인 등을 하는 경우에는 암살대원의 행위는 북한이란 반국가단체의 ‘공식’ 행위로 간주될 수도 있음. -그러나 제공된 현재의 ‘대공’ 자료만으로는 북한의 구체적인 개입이나 관련성을 찾기는 어려워 보임.

22일 오후 열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자문회의를 앞두고 김광동 위원장이 추천한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가 낸 의견서 내용 중 일부다. 제 교수는 의견서에서 ‘암살대원’이라는 불투명한 경찰 사찰기록으로 진실 규명(피해자 인정)이 미뤄져 논란이 되는 ‘진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진도 사건) 희생자 4명에 관해 위와 같은 견해를 밝혔다. ‘진도 사건’은 진도군 의신면·임회면에 거주하던 이들이 한국전쟁 중 인민군 점령기에 부역 행위를 했다는 이유 등으로 1950년 10월 경찰 수복 뒤, 1951년 1월까지 거주지 일대에서 경찰에게 살해된 사건이다.

제 교수는 근거가 전혀 없는데도 “(북한의 지시나 통제가) 있었다면…”이라는 식의 가정법을 통해 희생자들이 마치 북한 당국에 의해 조종된 ‘반국가단체 구성원’이라도 되는 양 몰았다. 그러면서도 사실관계에 전혀 기반을 두지 않고 있음을 의식했는지 문장 끝마다 “구체적인 자료나 기록은 없음”이라고 덧붙였다. 허황한 자문 의견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3월12일 ‘진도 사건’ 희생자 4명에 대해 ‘진실규명 불능(피해자 인정 불가) 의견을 전체위원회에 상정했다가, 야당 쪽 위원들 반대로 결정을 보류한 바 있다. 한겨레가 이들 희생자 4명 중 3명이 13살·14살·17살 미성년자라는 사실과 희생 경위를 보도하며 논란이 계속되자 김광동 위원장은 22일 오후 폭넓은 의견을 들어 이들에 대한 진실규명 처리방향에 참고하겠다는 취지로 자문회의를 열었다. 자문위원은 김광동 위원장이 추천한 7명과 여야 추천 상임위원이 각각 4명씩 추천한 8명으로 총 15명이다. 15명 중 여당 쪽 추천 자문위원이 11명인 셈이다. 의견서를 낸 제성호 교수는 여당 추천위원을 대표해 이날 발제 했다.

제 교수는 뉴라이트 성향의 법학자로,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를 지냈다. 뉴라이트는 미국의 네오 컨서버티브(신보수)를 모방해 전통보수를 개혁하자고 한국사회에 등장했지만 외려 전통 보수보다 강경한 이념 지상주의를 표방한단 평가를 받는다. 진실화해위의 한 관계자는 22일 한겨레에 “제성호 교수 발제 내용은 국가폭력 희생자들에 대한 ‘부역자 낙인찍기’를 주도하는 김광동 위원장의 논리와 판박이”라고 말했다.

제성호 교수는 “(진도경찰서의 요시찰명부) ‘대공’ 자료는 국가보안법 및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에 따라 작성된 것으로 명확히 공문서의 성격을 보유하고 있다”며 ”(익명 처리된 희생자) A, B, C, D가 ‘북한을 위해’ 대한민국 기관원이나 민간인을 암살하였다고 가정한다면, 설령 이들 4명이 본래 민간인 신분이었다고 할지라도 대한민국에 대한 ‘적대행위’ 혹은 북한 ‘부역 행위’를 했다고 볼 여지가 다분하다”고 결론 내렸다. 이 부분도 존재하지 않은 사실에 대한 가정법으로 이뤄져 있으며, ‘대공’자료의 ‘암살대원’ 기록을 뒷받침할만한 자료가 전혀 없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제 교수는 “대한민국 군경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사망 결과를 초래했을지라도,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한다”고도 했다.

진실화해위 ‘부역 몰이’의 주역들. 왼쪽부터 김광동 위원장, 이옥남 상임위원, 황인수 조사1국장. 한겨레 자료사진

하지만 경찰 사찰기록에 19~35세로 적힌 4명의 실제 나이가 적다는 점을 의식했는지 이렇게 덧붙였다. “17세(A)는 미성년자, 14세(B)와 13세(D)의 자는 형사 미성년자에 해당하는바, 이들이 독자적으로 암살하기로 하는 의사결정능력을 가지고 있었을지에 대해서는 강한 의문이 제기될 것으로 보임.” 한겨레는 A, B, C, D로 익명화된 이들의 실명이 각각 허장오, 허훈옥, 허윤, 김대환이며 1950년 10월 진도군 의신면 만길리에서 허광백(가명)씨의 지시 등에 의해 경찰에 의해 즉결처분당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제 교수는 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정리법) 제2조 1항3호 ‘1945년 8월15일부터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에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민간인 집단 사망·상해·실종사건’에서의 ‘민간인 개념’과 관련해서는 “동법상의 민간인은 ‘적대세력과의 관련성이나 무기를 사용하는 등의 보호 상실 사유가 없는’ ‘무고(無辜)한 사람(良民)’ 내지 ‘평화적 문민(文民)’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사료됨”이라고 썼다. 제성호 교수는 “민간인은 곧 양민이어야 한다”는 논리를 쓴 셈인다. 양민이라는 용어는 정치·사상과는 무관하며 체제순응·협조적인 일반민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제가 남한 의병 대토벌 당시 일반민을 항일세력과 구별하기 위해 써온 개념이다.

제성호 교수의 의견과 관련해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22일 한겨레에 “‘적대행위를 하였다는 사실’만 있다면 현재 적대행위를 하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민간인으로서의 보호’를 상실하게 된다고 해석했는데, 이건 제주 4·3부터 시작된 한국 현대사의 민간인 학살과 관련된 사법부와 행정부의 판단에 모두 상충하는 해석일 뿐만 아니라 국제법적으로도 난센스”라고 말했다.

2001년부터 2016년까지 15년간 네덜란드 헤이그의 구유고슬라비아 형사재판소(ICTY) 재판관을 역임했던 권오곤(71) 김앤장 법률사무소 국제법연구소장도 최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진도 사건’에 대해 “(국제인도법에 기초해)명백한 불법행위를 놓고 희생자들이 민간인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논점 자체가 아쉽다. 이들을 설사 전투원으로 분류한다 해도 즉결처형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한편 이날 야당 추천 자문위원으로 참석해 대표 발제를 한 이장희 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진도사건 희생자 4명이)민간인 신분이며, 적대세력·살해행위 가담에 고의성(진정성)이 애매하고 이를 입증할 만한 구체적 증거 문건이 없다”며 “희생자를 입증할 만한 인적 물적 증거를 희생자에게 입증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서를 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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