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종을 지나 가꾸는 계절로 들어서며 [똑똑! 한국사회]

한겨레 2024. 5. 2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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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들이 함께 모내기를 했다. 원혜덕 제공

원혜덕 | 평화나무농장 농부

달력의 계절로는 봄의 끝자락이지만 체감으로는 이미 여름이다. 5월의 꽃인 아까시꽃과 함박꽃은 활짝 피었다가 지고 있다. 씨앗을 심고 모종을 내다 심는 일도 이 계절에 맞춰 끝나가고 있다.

땅에 씨앗을 심는 일은 농사의 시작이자 절반이다. 수확이라는 마지막 과정이 있고 그 결실을 위해 농사를 짓지만 농사의 대부분은 심고 기르는 과정이다. 1월 말에 온상에 고추씨를 넣은 것으로 시작한 파종은 모종으로 기르는 기간과 밭에 내다 심는 시기에 맞춰 토마토, 봄배추, 참외, 호박 등으로 이어졌다. 파종하여 기른 모종들 중에서 빨리 자라고 추위에 강한 잎채소들은 4월 초에 내다 심었고, 오래 자라고 추위에 약한 열매채소는 날이 풀린 4월 말부터 밭에 내다 심었다. 지금은 거의 다 밭으로 나갔다. 지난주에 고구마를 심고 모내기를 마치고 나서 들깨모를 붓고 콩을 심은 것으로 심는 일은 얼추 마무리되었다. 딸기 같은 경우는 땅이 아닌 공중에 띄워 기르는 양액 재배가 대세가 되었지만 작물 전체로 보면 땅에 씨를 뿌리고 땅에서 자란다.

대부분의 작물은 식물에 맺힌 씨를 심지만 감자와 토란처럼 땅속의 수확물을 그대로 심는 경우도 있다. 고구마처럼 순을 길러서 그 순을 잘라 심는 것도 있다. 낟알로 맺히는 밀과 보리 등의 곡식 종류는 대체로 바로 밭에 씨를 뿌린다. 가을에 뿌리고 봄에 뿌리는 차이는 있다. 벼는 모판에 모를 길러서 논으로 간다. 요즘은 콩, 수수 등의 곡식도 대개 모종으로 길러서 밭에 내다 심는다. 밭에 씨로 바로 심는 것보다 모종으로 길러서 심으면 무엇보다도 초기의 어려운 김매기를 한 번 줄일 수 있어서 이 방법을 사용한다.

올해 농사 일지를 펴서 파종하거나 밭에 내다 심은 날짜를 들여다보니, 1/30 고추씨 파종, 2/21 토마토 파종, 2/22 봄배추, 양배추 파종, 3/9 참외, 수박, 호박 파종, 3/22 감자 심다, 4/9 봄배추 양배추 브로콜리 모종 밭에 심다, 4/25 토마토 모종 밭에 심다 등이 차례로 나와 있다.

낮기온이 올라 어떤 작물을 심을 때가 되었을 때마다 남편은 겨우내 발효시킨 거름을 밭에 내고 심을 준비를 한다. 심는 일에서는 나도 부족하지 않다. 지금 세상은 채소가 철을 가리지 않고 시장에 나와 있어 도시 사람들 대부분은 봄이 되어야만 비로소 씨앗을 뿌린다는 사실을 모르지만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농부는 자연의 철에 따라 심고 길렀다. 우리는 올해도 기온에 맞춰서 수십 가지의 채소와 곡식을 심었다. 자급자족을 위해서도, 다양한 생태 환경을 가진 바람직한 농장으로 꾸려가기 위해서도 우리는 많은 종류의 작물을 심는다. 그러다 보니 날씨, 곧 계절의 변화를 더욱 세밀하게 느낀다.

어제 농사 실습 온 학생들과 함께 채소밭의 김을 맸다. 원혜덕 제공

모종을 기르고 밭에 내다 심는 일을 끝낸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기르는 시기에 들어섰다. 고추에 지주대를 세우거나 토마토의 넝쿨을 유인하는 등의 일도 있지만 김매는 일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김매는 일만 없으면 농사일에 드는 노동력은 절반도 더 줄어들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고령화로 접어들었다. 그런 중에서도 농촌은 심각하다. 논이나 밭에서 일하는 젊은 사람들을 보기가 쉽지 않다. 평생 농사일을 해왔기에 다른 농사일에는 뒤지지 않는 분들이지만 풀은 대부분 제초제를 뿌려 잡는다. 우리가 제초제를 사용하는 일은 없지만 주위의 그러한 현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 밭은 처음부터 계속 퇴비를 만들어 작물을 심을 때마다 넣어왔기에 날이 가물어도 푹신하다. 흙을 만질 때마다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진다. 농사짓는 현실이 수익 면에서나 기후 변화로 엄혹해져서 밭을 돌보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지만 그러한 문제와는 별개로 이렇게 가꾼 땅에 철을 따라 씨를 뿌리고 가꾸는 즐거움과 보람은 농사짓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곧 여름으로 접어든다. 더위와 풀과 싸우며 이 여름을 맞고 있다. 저절로 푸르러지는 산과 들판과 함께 농부가 가꾸는 땅에서도 푸르름이 채워지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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