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의 우리말 사랑 [크리틱]

한겨레 2024. 5. 2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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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부터 5월 초까지 에스비에스(SBS)에서 방영된 다큐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삼부작의 먹먹한 여운이 방송이 끝난 후에도 계속 남아 마음을 흔들었다.

김민기의 노래를 즐겨 들었던 이라면 누구나 느꼈겠지만, 김민기 노래의 가사는 우리말이 지닌 담백한 아름다움과 깊은 애수의 한 경지를 품고 있다.

이런 노래 가사를 지을 때 김민기는 "작게는 노랫말 하나를 다루는 자세, 즉 낱말 하나하나마다 정서의 빛깔이 다른 것"을 생각하며 우리말의 질감을 최대한 섬세하게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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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로서의 정체성을 거부하며 사석에서도 노래하지 않았던 김민기가 ‘겨레의 노래’에서 ‘아침이슬’을 부르고 있다.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프로그램 갈무리

권성우 | 숙명여대 교수·문학평론가

지난 4월부터 5월 초까지 에스비에스(SBS)에서 방영된 다큐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삼부작의 먹먹한 여운이 방송이 끝난 후에도 계속 남아 마음을 흔들었다. 한동안 김민기의 삶과 노래에 대해 깊은 관심을 지녔으면서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사실이 많았음을 알게 됐다. 이 글에서는 다큐와 그 이후에 발표된 김민기에 대한 글들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다른 시각으로 김민기에 대해 써보고 싶다.

그것은 김민기의 모국어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드문 감각이다. 김민기의 노래를 즐겨 들었던 이라면 누구나 느꼈겠지만, 김민기 노래의 가사는 우리말이 지닌 담백한 아름다움과 깊은 애수의 한 경지를 품고 있다. ‘상록수’, ‘아침 이슬’, ‘그 사이’, ‘강변에서’ 등등 그가 직접 지은 수많은 노래 가사는 가슴에 파고드는 여운과 때 묻지 않은 감성을 전달한다. 가령 그 정겹고 아름다우며 때로는 비장한 가사가 빠진 김민기의 노래를 과연 상상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경지가 가능했을까.

김민기는 이진순과의 2015년 한겨레 인터뷰에서 “내가 학전 배우들한테도 유난히 강조했던 게, 배우는 ‘모국어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점이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런 우리말과 모국어에 대한 그의 태도는 오래전부터 지속돼 왔다.

김민기는 1998년 강헌과의 대화에서 동시대 동료 가수 한대수에 대해 “그는 미국에서 돌아왔지만 이 땅에서 산 어떤 음악가들보다도 한국어의 강인한 미감을 단숨에 포착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고 얘기했다. 그 자신이 한국어의 미감에 대해 누구보다 깊은 관심을 지녀왔기에 이 발언이 가능했으리라. 그건 1971년 발매된 그의 음반이 “최초의 싱어송라이터 앨범”(강헌)이라는 사실과도 연관될 테다. 그래서일까. 그는 같은 대화에서 자신에게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오적’ 시절의 김지하 시인을 들며 “내가 대학 초년생 때 우리말의 생동감을 처음으로 각인시켜 준 유일한 분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말의 생동감’은 그의 여러 노래를 통해 한껏 구현된다. 이런 노래 가사를 지을 때 김민기는 “작게는 노랫말 하나를 다루는 자세, 즉 낱말 하나하나마다 정서의 빛깔이 다른 것”을 생각하며 우리말의 질감을 최대한 섬세하게 살핀다. 그의 노래를 한 곡, 한 곡 듣다보면 그 정답고 아름다운 가사가 귀에 그대로 박힌다. 김민기의 노래가 그토록 많은 사람의 가슴에 남아있는 것도 바로 그가 특별한 정성을 기울인 가사에 있지 않을까.

김민기가 대하소설 ‘토지’와 ‘임꺽정’에 대해 관심을 표하며 이 작품들을 오디오북으로 만드는 걸 고민한 점도 모국어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라는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으리라. 그는 2004년 주철환과의 인터뷰에서 “한글이란 게 참 매력적이거든. 매력이라는 것은 애증관계야. 한글에 새로운 체계를 한 번 만들어보고 싶어”라고 말했다. 한글의 매력, 모국어의 미감은 대학 시절부터 쭉 이어져 온 김민기의 커다란 관심사였다. 이렇게 본다면 김민기는 노래(극)를 통해 평생 우리말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위해 헌신하고 고민해 온 가수이자 음유시인이며 문화기획자라 할 수 있겠다.

그를 이상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누구나 그렇듯이 김민기 역시 어떤 한계와 모순을 마주하며 살아왔을 테다. 다만 김민기의 노래, 뜻, 한국어의 미감이 우리에게 온전히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부디 그의 건강이 회복되기를 간곡하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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