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이 됐다가, 좀비가 됐다가…뮤지컬에 빠진 탄광촌 아이들

송인걸 기자 2024. 5. 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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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모두가 서로의 거울이 돼 보는 겁니다."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은 대부분 뮤지컬에 친숙했다.

임상빈 교감은 "아이들이 2년 전 처음으로 합창을 배웠는데 길지 않은 시간에 수준급이 됐다. 그다음 안무 수업이 열렸는데, 그것도 아이들이 곧잘 따라가더라. 노래와 춤을 함께 버무리니 자연스럽게 뮤지컬이 됐다"고 했다.

학부모들은 자녀들과 '마틸다', '영웅', '레베카' 등 국내 유명 뮤지컬을 관람하며 꿈을 키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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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청라초 3~6학년들 첫 수업부터 황인혁 교수 가르침에 몰입
충남 165개교 농어촌예술학교 참여해 무용·공예·국악·영화 배워
보령 청라초등학교 5~6학년들이 지난 9일 뮤지컬 수업 시간에 좀비를 연기하고 있다.

“자, 모두가 서로의 거울이 돼 보는 겁니다.”

지난 20일 찾은 충남 보령 청라초등학교 다목적 교실. 오전부터 뮤지컬 수업이 한창이었다. 마주 선 아이들이 ‘짝꿍 따라 하기’를 했다. 어색하게 손을 움직이던 아이들은 이내 몸 전체를 활발하게 움직이더니 왁자지껄한 웃음을 터뜨렸다.

청라면은 보령 성주탄광이 있던 곳이다. 광업소는 40여년 전 문을 닫았지만 광부 목욕탕을 개조한 카페 등 곳곳에 탄광 흔적이 남아 있다. 청라초에 다니는 학생은 유치원생 11명을 포함한 64명. 강사로 나선 황인혁 경복대 공연예술학과 교수의 능숙한 가르침에, 마주 서는 것도 쑥스러워하던 학생들이 금세 진지하게 짝을 관찰하고 흉내 냈다. 다음 과제는 좀비놀이. 손발 꺾기 연기로 큰 박수를 받은 6학년 종우가 좀비로 뽑혔다. 종우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좀비 연기를 하자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웃고 뛰는 사이 수업시간 40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은 대부분 뮤지컬에 친숙했다. 지난해 5~6학년들이 중심이 돼 무대에 올린 창작 환경 뮤지컬 ‘보령 앨리스’는 오염된 바다에서 거북이를 구하는 내용으로 청라면의 명물이 됐다. 처음부터 뮤지컬 수업을 열었던 건 아니다. 임상빈 교감은 “아이들이 2년 전 처음으로 합창을 배웠는데 길지 않은 시간에 수준급이 됐다. 그다음 안무 수업이 열렸는데, 그것도 아이들이 곧잘 따라가더라. 노래와 춤을 함께 버무리니 자연스럽게 뮤지컬이 됐다”고 했다. 지난해의 흥행 덕에 올해는 시작도 하기 전에 배역 경쟁이 시작됐다. 임 교감은 “지난해 단역을 맡았던 5학년이 올해는 무대 주인공이 되려고 뮤지컬 수업을 별러왔다”며 “덩달아 3~4학년들까지 열심”이라고 했다.

보령 청라초 6학년 심수정양(왼쪽)과 5학년 지율양이 거울놀이를 하고 있다.

6학년 아이들은 주연을 맡았던 지난해의 흥분이 여전히 남아 있는 듯했다. 민경이는 “지금도 집이든 학교든 내 모습이 창에 비치기만 하면 마임을 연습한다”고 했다. 수정이는 학교에서 틈만 나면 춤판을 벌인다. “친구들과 연기, 노래 연습을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버려요.” 가희는 지난해 무대에 올렸던 ‘나쁜 백설이와 착한 마녀’의 대사를 여전히 중얼거린다.

교사들은 스태프다. 에어로빅 강사 자격이 있는 전슬기 교사가 안무를 맡았다. 합창 지도는 이기쁨 보건 교사가 담당한다. 수학여행 같은 교외 일정에는 연극, 뮤지컬 관람이 빠지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서울에 가서 ‘시간을 파는 상점’을 관람했다. 아이들은 “공연이 끝난 뒤 배우들과 대화하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열심히 연기를 배워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학부모들은 자녀들과 ‘마틸다’, ‘영웅’, ‘레베카’ 등 국내 유명 뮤지컬을 관람하며 꿈을 키워주고 있다.

박은숙 교장은 “우리 학교는 풍성한 삶을 위한 예술교육과 민주시민으로서의 인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처음에는 표현력 하나만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뮤지컬 수업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학교 전체에 활력이 돈다”며 “학생 참여율도 높고 연습도 적극적이라 뒷받침하는 일도 즐겁다. 올해 올릴 창작 뮤지컬도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보령 청라초 5~6학년 아이들이 지난 9일 교정에서 원숭이, 바나나 등 주어진 주제에 따라 특징을 표현하는 즉흥극을 하고 있다.

청라초가 진행 중인 농어촌 우리동네 예술학교 프로그램은 충남 태안교육지원청이 2022년 시범 운영을 한 뒤 교육부가 지난해 전면 도입했다. 올해 충남에서는 초등학교 155곳, 중학교 10곳 등 165개 학교가 참여해 오케스트라, 국악, 미술, 뮤지컬, 사진, 영상 등 60여개 분야의 예술 강좌를 개설했다. 정은영 충남교육청 교육혁신과장은 “농어촌 학교는 문화예술교육 여건이 좋지 않다. 우리동네 예술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농어촌 학교 학생들이 다양한 문화예술을 배우고, 경험하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글·사진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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