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시행 앞둔 보호출생제, “위기 임신부 지원 등 선행제도 정비 없인 아동 유기 부작용 우려”

이혜인 기자 2024. 5. 22.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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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박스를 운영 중인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장로교회에서 지난해 한 직원이 베이비박스를 확인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오는 7월 시행을 앞둔 보호출생제를 두고 “‘베이비박스’ 폐지, 위기 임신부 지원 등의 제도를 정비하지 않고서는 제도의 부작용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김민지 법무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보호출산제,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보호출생제 근거가 되는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위기임신보호출산법)의 기반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 시행된다는 점을 우려했다.

익명으로 아기를 유기할 수 있는 ‘베이비박스’ 운영을 폐지하고, 임신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할 수 있게끔 모자보건법을 비롯한 임신중지 관련 입법 정비를 선행해야 한다는 취지의 우려다. 또 위기임산부는 ‘경제적, 심리적 사유 등으로 출산에 양육을 겪고 있는 여성’으로 한정해야 함에도 그렇지 않은 경우까지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정책 대상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악용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보호출생제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경우에 병원 밖에서 출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익명출산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으로, 오는 7월19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병원에 출생신고 의무를 부여하는 출생통보제가 시행되면 병원 밖 출산을 택하는 위기 임신부가 늘어날 수 있어서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로 법이 제정됐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은 “보호출산제보다도 취약한 임산부를 충분히 지원하고 보호하는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미혼모 등 취약 임산부에 대한 임신기 지원이 미약한데, 이러한 지원 없이 보호출산제를 선도입하는 것이 아동유기를 양산할 우려가 있다는 뜻의 지적이다. 허 연구관은 덴마크의 경우 임신 12주가 지난 30세 미만의 임산부로서 자신을 부양해줄 가족이 없는 경우 한화로 약 242만원 상당의 생활보조금을 지급하는 한부모 지원 제도 등을 소개했다.

토론회에서는 보호출산제가 아동을 보호하자는 취지임에도 아동이 부모가 누구인지 알 권리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법 자체의 한계도 지적됐다. 홍진수 자립준비청년은 미등록 신생아 상태로 영아원에 맡겨져 자란 후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겨우 부모의 신원을 확인한 본인의 사례를 언급하며 “출산 정보는 출생한 아이의 당사자 정보이다”라며 “당사자가 알려달라고 할 때 주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부당함을 넘어서 아이의 기본권리를 박탈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유미숙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위기상황에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방법, 아동들이 성장한 후 정보공개를 원할 경우에 비식별화하지 않는 것 등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 당장 처한 상황만 해결하기 위한 보호출산제는 또 다른 공적 베이비박스가 될 뿐”이라며 제도 시행에 앞서 다른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강성희 진보당 의원,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등과 보호출생제 관련 시민단체가 함께 주최했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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