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전문가 양성 나선 제복 벗은 ‘거짓말탐지기’ 전문가들

전현진 기자 2024. 5. 22.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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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섭 백석대 범죄수사학 교수가 지난 10일 서울 서대문구 경기대 평생교육원에서 폴리그래프(거짓말탐지기) 검사의 실제 운용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전현진 기자

“‘죽이지 않았다’는 진술에 폴리그래프에서 ‘진실’ 반응이 나왔어요. 형사들이 다시 수사해서 결국 진범을 잡았습니다.”

지난 10일 서울 서대문구 경기대 평생교육원 교육실 프레젠테이션 화면 속에 살인사건 피의자의 모습이 보였다. 임금섭 백석대 범죄수사학 교수가 약 20년 전 시행한 폴리그래프 검사에 관해 설명하고 있었다. 폴리그래프는 ‘거짓말 탐지기’라고도 불린다.

경찰 출신인 임 교수는 1990년 8월 경찰관이 돼 상담심리학과 범죄심리학을 공부한 계기로 폴리그래프 검사관이 됐다.

“부담감이 크겠어요.” 교육생 한 명이 질문하자 임 교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폴리그래프 검사관은 객관적인 시각으로 검사해야 합니다. 진실하게 검사하면 부담스러울 것이 없죠.” 임 교수는 범행을 부인하는 피의자의 ‘거짓’ 반응과 유력한 용의자의 ‘진실’ 반응을 통해 진범을 잡아내는 것이 폴리그래프 검사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교육은 전국 지방경찰청에서 선발한 12명의 경찰관을 상대로 진행된 폴리그래프 검사관 양성 과정의 일환이었다. 이 중 4명은 뇌파 분석 전문으로 특별채용된 이들이다. 그동안 경찰수사연수원이 교육을 진행했는데 운영에 어려움을 겪다가 지난해부터는 외부 위탁 교육을 시작했다. 강사는 경찰 출신 전문 검사관 12명과 외부 교수 등 총 17명이다. 지난 3월부터 5월 31일까지 진행되는 10주 과정 중 첫 집중 교육이다.

실제 폴리그래프 검사 화면이다. 파란색·초록색·빨간색 선이 흉부·복부 호흡과 심박수 등을 나타내며 생리적 반응이 거짓말을 할 때 무의식적으로 변하는 특성을 이용해 정해진 질문에 대한 답변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측정한다. 전현진 기자

교육을 총괄하는 것은 이재석 경기대 폴리그래프 전문교수다. 그도 1989년 경찰관이 돼 현장 감식 요원으로 근무하다 폴리그래프 검사관으로 2021년 퇴직 때까지 활약한 전문가다. 이 교수는 “현장 감식을 하다 보니 범인이 누구인지, 어떤 말을 하는지,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며 “그러다 폴리그래프 검사 의뢰가 늘어나면서 전문 검사관이 됐다”고 말했다.

폴리그래프는 의료 현장에서 쓰이는 장비로 흉부, 복부의 호흡과 심장박동 등 생리적 반응을 파악해 거짓 반응을 포착하는 것이다. 다만 폴리그래프 검사는 엄격한 증명력을 요구해 법정에서 증거로 쓰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진술 외에 다른 증거가 없거나, 당사자들이 진실이라고 호소한 내용을 과학적으로 따져봐야 할 때 한 몫을 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만8045명이 폴리그래프 검사를 받았다. 이 중 35.9%가 성폭력 범죄 관련자였고, 36.3%는 폭력 사건이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진술 외에 다른 증거가 부족한 사건들에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이 외에도 살인, 사기 등 다양한 범죄 수사에 활용했다.

5월 현재 기준 전국 검사관은 42명이다. 연평균 검사가 1만2000여건 진행되므로 단순 계산하면 한 명이 한 해에 301.9건을 검사하는 셈이다.

실제 검사를 능숙하게 하기 위해선 3~5년 정도의 교육과 숙달 과정이 필요하다. 장비 운용 기법만 익혀선 안 된다. 그래서 교육 과정에는 장비 운용 실습은 물론 생리학부터 심리학, 진술 분석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한다.

폴리그래프 검사대상자들의 경우 검사를 거절하면 거짓말을 했다고 의심받을까봐 실제 검사에서 ‘꼼수’를 쓰는 이들도 있다. 이 교수는 “검사 중에 기침하거나 움직이는 식으로 명확한 판정을 하기 어렵게 하는 이들도 있다”며 “이렇게 진실한 대답을 회피하려는 모습이 보이면 그 내용도 검사 결과로 기록된다”고 설명했다.

국내 최고 폴리그래프 전문가 중 하나인 이재석 경기대 전문교수는 폴리그래프 전문가를 양성해 치안 서비스의 발달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현진 기자

이 교수는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도 폴리그래프 검사의 목적이라고 했다. 그는 2000년대 초중반 유영철·정남규가 저지른 연쇄 살인·강도 사건이 벌어졌을 때 20여명이 범인으로 의심을 받았고 폴리그래프 검사실에 왔다고 했다.

이 교수는 “범행 내용에 관해 물었을 때 ‘자신이 한 일이 아니다’라는 답에 진실 반응이 나왔다”며 “이들이 누명을 쓰지 않게 한 것도 폴리그래프 검사를 하면서 자랑스러운 순간”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후배 전문가들이 생겨나 폴리그래프의 영역을 더욱 발전시켰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폴리그래프 검사는 다양한 질문과 그에 대한 반응을 주고받게 된다. 이런 빅데이터를 모아 인공지능(AI) 분석을 하면 거짓 탐지의 영역을 더욱 넓혀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실력 있는 후배 검사관들이 폴리그래프의 기술을 더 갈고 닦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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