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가느냐, 제대로 가느냐…라이시 사후 선택 앞둔 하메네이
반대파까지 끌어들이는 모습을 보일 것인가 아니면 강경 보수 노선으로 굳힐 것인가.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 사후 치르는 대선에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85)가 이와 같은 선택지를 마주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2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란의 실세이자 최고 종교지도자인 하메네이가 이러한 선택을 내려야 하는데, 선택지 각각이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먼저 하메네이로선 개혁·온건 성향을 가진 인물들에게도 대선에 출마할 정치적 기회를 보장하는 방안이 있다. 이 경우 모양새는 좋으나 하메네이와 성향이 다른 인물이 선출돼, 그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국가가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다른 안은 최근 치렀던 선거에서처럼 반대 성향 후보를 차단하고 기존 정권에 친화적인 이들로 선거를 치르는 것이다. 개혁적인 성향의 정적들뿐만 아니라 중도적이고 충성스러운 야당 인사를 저지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이럴 경우 이란의 정치 구조가 한층 더 권위적으로 굳어진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근래 들어 투표율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점은 하메네이에겐 압박 요인이라고 NYT는 짚었다. 이란은 그동안 서방 선거의 낮은 투표율을 지적하며 민주주의를 비판했는데, 정작 이란에서 경직된 민심이 낮은 투표율로 드러나고 있는 처지다. 이란 총선의 투표율이 2016년 60%를 넘었으나 2020년 42%로 급락했고, 올해 3월엔 41%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역대 대선 투표율 또한 라이시 대통령이 당선된 2021년은 사상 최저 수준인 48%에 그쳤다. 하산 로하니 전 대통령을 배출한 2017년 대선(73%)에 비하면 월등히 낮다.
이처럼 고꾸라지는 투표율은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성직자 집단과 정치권력을 향한 냉담한 민심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NYT는 전했다. 영국 소재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사남 바킬 연구원은 “정권 입장에서 이처럼 국가와 사회의 거리가 벌어지는 건 심각한 문제다. 그들은 보수적인 단결성을 유지하길 원하지만 라이시의 빈자리를 채우기는 힘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메네이가 보수 세력의 내분에 직면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고 라이시 대통령은 하메네이에게 ‘예스맨’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사후 확실하게 내세울 수 있는 후임자가 없는 상황에선 분열이 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 클램슨대 아라시 아지지 박사는 “정치권에는 심각한 경제적·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진 이들이 많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으로 출마에 나서는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하메네이의 의중을 짐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보도를 종합하면, 테헤란 시장을 거쳐 현 국회의장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63)가 우선 거론된다. 갈리바프 의장은 실용주의 성향이란 평가를 받는다. 또 다른 인물로는 이란 혁명수비대 출신으로 하메네이 충성파로 꼽히는 사이드 잘릴리(59)가 있다. 아지지 박사는 “갈리바프 의장은 국회가 이란의 경제난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처했다. 잘릴리가 출마하면 이는 서구에겐 좋은 징조가 아닐 것”이라고 분석했다.
NYT는 “대선에 출마할 것이 명백한 온건파는 없으며,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대중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확실치 않다”고 전했다. 이란 국민이 대선에 큰 관심을 보이리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중동 전문매체 암와즈의 모하마드 알리 샤바니는 “지도자들이 민중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나라에서, 그리고 이미 반정부 시위에 대한 억압적인 백래시(반동)가 촉발된 나라에서 이는 장기적 위험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고 라이시 대통령의 장례식은 23일까지 이어진다. 대통령 유고 시 50일 이내 보궐선거를 치러야 하는 이란 헌법에 따라, 이란 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 보궐선거일을 다음 달 28일로 확정했다. 후보자 등록은 이달 28일 마감된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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