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판 키우면 끝?" 이륜차 불법행위 근절 안 되는 이유

김정덕 기자 2024. 5. 22.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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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륜차 불법행위 못 막나, 안 막나
공무원의 자의적 법해석이 문제
불법행위별 처리 절차조차 몰라
국토부는 관련 제도 개선도 외면

# 자동차 번호판은 도로 위 신분증이다. 자동차 운행 시 번호판이 없어도, 알아보기 어렵게 해놔도, 가려놔도 불법이다. 이륜자동차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운전자가 잘 관리를 해야 하고, 이를 어기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런데 부과 방식이 관할 지방자치단체 혹은 공무원마다 다르다. 행정시스템이 엉망이라는 방증이다.

# 더 큰 문제는 주무부처가 이를 바로잡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거다. 물론 국토교통부는 이륜차의 안전한 운행을 위해 올해 7월부터 배달 종사자의 면허 유효성을 실시간 확인하는 운전자격 확인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륜차의 불법운행 단속 강화를 위해 뒷번호판 규격과 문자 크기도 키우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현장에선 모두 무용지물이란 비판이 나온다. 정작 중요한 제도 개선은 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자체의 불법 이륜차 제재 수위는 일선 공무원의 재량에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다.[사진=뉴시스]

국내 이륜자동차(오토바이)는 그야말로 '거리의 무법자'다. 이륜차의 교통신호 무시, 불법유턴, 중앙선 침범, 인도 주행, 불법 개조 등은 거리를 다니다 보면 언제 언제서든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개중엔 번호판이 없는 이륜차(무판 이륜차)도 있다.

이상한 건 이런 불법행위들이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거다.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쉽게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춰 놨고, 관할 지자체와 경찰이 함께 집중단속을 벌이는데도 효과가 별로 없다. 왜일까.

지난 8년 전부터 우리나라 이륜차 문화와 제도의 개선을 위해 이륜차의 불법행위를 꾸준히 공익신고해온 조인호(가명ㆍ40)씨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소극적인 행정을 펼치는 공무원들이 적지 않아 사전단속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여기에 배달시장까지 커져 이륜차의 불법행위가 줄지 않고 되레 늘었다. 그러니 정부와 지자체는 이륜차의 불법행위에 거의 손을 놓은 상황이다. 이륜차가 '거리의 무법자'가 돼가는 것도 그래서다."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이런 지적을 하는 걸까. 조씨가 공익신고한 사례와 정부ㆍ지자체ㆍ공공기관과 소통한 근거자료를 토대로 문제점을 짚어봤다. 참고로 아래 내용은 조씨의 신고사례 중 극히 일부다.

■ 쟁점 자의적 법 해석 = 2023년 8월, 조씨는 경기도의 A지역에서 번호판이 유독 더러운 이륜차를 발견했다. 차체는 깨끗한데, 번호판 부분만 시커먼 기름과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사진을 찍어 국민신문고 앱을 이용해 신고했다.

조씨는 신고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만약 번호판이 더러운 이륜차가 사고를 내고 도주했다고 해봐라. 그럼 어떻게 잡을 수 있겠는가. 사전 번호판 관리는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그랬더니 해당 A지자체는 이런 답변을 내놨다. "해당 이륜차 번호판 오염 문제 관련, 이륜차 소유주에게 정비 명령을 했다. 명령 미조치 시 행정조치할 예정이다." 자체 정비할 기회를 준 다음,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거다. 고의성 유무를 지자체 공무원이 자체 판단해서 그 이후에 제재를 결정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는 자동차관리법에는 이런 기회를 준다는 내용이 없다는 점이다. 현행 자동차관리법은 "누구든지 등록번호판을 가리거나 알아보기 힘들게 해서는 안 되며, 그런 자동차를 운행해서도 안 된다(제10조5항)"고 규정하고 있다.

'고의로' 법을 어겼다면 같은 법 제81조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경찰 업무). 고의성이 없었다면 같은 법 제84조에 따라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지자체 업무)를 부과한다. 그 외엔 어떤 내용도 없다.

이륜차의 번호판은 신분증이나 다름없다. 관리가 필요한 이유다.[사진=조인호씨 제공]

더구나 과태료 부과라는 행정조치는 '행정목적 달성을 위해 행정법규 위반이라는 객관적 사실을 토대로 가하는 제재'다. 불법이 있으면 그 자체로 행정조치의 대상이라는 얘기다. 대법원의 입장도 이와 같다. "위반자가 의무를 다하지 않았음을 탓할 수 없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고의나 과실이 없다고 하더라도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대법원 선고 2002두5177 판결)."

한국교통안전공단의 '2023년 불법자동차 단속업무편람'에도 1차 위반은 과태료 50만원, 2차 위반은 과태료 150만원, 3차 이상 위반은 과태료 250만원으로 적시돼 있다. 과태료 금액이 올라갈 뿐 '한번은 봐준다'는 내용은 없다.

게다가 조씨는 비슷한 내용을 경기도의 또다른 지자체에도 신고한 적이 있다. 그 지자체는 지체하지 않고 과태료를 부과했다. 조씨는 "공무원이 법을 멋대로 해석해서 행정처분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자체에 따라 혹은 담당 공무원에 따라 오락가락 행정처분이 이뤄진다면 현장에서 '법을 어기면 처벌받는다'는 믿음이 생기겠는가"라고 꼬집었다.

■ 쟁점 법 모르는 공무원 = 2023년 9월에는 소음기(머플러)를 불법개조한 이륜차를 발견해 B지자체에 신고했다. 그랬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이륜차 소유자에게 해당 소음기의 자진 정비를 명령했으며, 기간 내 미조치 시 행정조치 할 예정이다."

하지만 소음기 불법개조는 자동차관리법 제34조 위반에 해당하고, 이 경우 지자체가 처리하면 안 된다. 지자체는 이륜차 소유자가 지자체의 허가를 받고 소음기를 개조했는지를 확인한 후, 허가를 받지 않았다면 관할 경찰에 고발해 처벌(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도록 해야 한다. 담당 공무원이 일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업무가 손에 익을 만하면 공무원 순환보직이 이뤄지다 보니 이런 상황이 생기는 것"이라면서 "이럴 때는 공무원에게 일일이 업무를 가르쳐줘야 할 판인데, 문제는 배우려고 하는 공무원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담당 공무원들을 모아놓고 교육을 진행해도 앞에서 답변만 알았다고 할 뿐 필기해서 실무에 적용하려는 이들이 거의 없다"면서 "해당 업무를 하고 돈을 받는 사람들이 전문가가 될 생각이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꼬집었다.

■ 쟁점 명령 이행 여부 확인하나 = 2023년 10월, 조씨는 앞서 8월에 있었던 번호판 오염 이륜차를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A지자체에 처리 결과를 문의했다. 번호판 정비 사진을 확인했는지, 또 확인했다면 사진을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A지자체는 "오염 문제가 해결됐다"면서도 "번호판 정비 사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만 거듭했다. 그러면서 개인정보보호 이슈로 사진이 있어도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조씨는 "내가 직접 이륜차를 찍어 신고한 사람이고, 번호판은 기본적으로 공개가 돼 있는 건데 대체 뭐가 개인정보보호라고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정비 사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공무원이 일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방증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 쟁점 제도 개선에 손 놓은 국토부 = 결국 조씨는 국토교통부에 지자체의 업무처리 방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특히 무판 이륜차의 경우 지자체의 과태료 부과 대상이지만, 정작 지자체엔 사법권이 없어 단속을 못 하니 등록제로 바꿀 필요성이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도 더스쿠프 통권 595호 '문화도 제도도 엉망, 2류 이륜차 이대로 괜찮나'란 기사에서 "이륜차 등록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런 주장에 국토부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내놨다. "현행 사용신고제는 등록제와 동일한 법률효과로 이어지고 있어 등록제 전환에 따른 실효가 없다. 더구나 이륜차 대다수가 택배나 퀵서비스 등 저소득층의 생계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규제강화는 이들을 불편하게 할 뿐만 아니라 행정비용의 증가도 초래한다."

조씨는 "생계 목적이면 법을 어겨도 봐주겠다는 건가, 그래서 단속도 제대로 하지 않는 건가"라면서 말을 이었다. "왜 법에도 없는 규정을 자기들이 임의로 만들어 적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국토부마저 손을 놨으니 이륜차는 계속 '거리의 무법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정부가 이륜차 뒷번호판을 키워 불법운행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는데, 단속 강화만으로 이륜차 문화를 개선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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