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즘 넘치는 좀비 웹툰…<위아더좀비> 이명재

한겨레21 2024. 5. 22.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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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이명재② ‘시트콤’ 작법에 영화적 연출, 장르 진화시키는 신인의 등장

◆<위아더좀비> 이명재 작가의 이야기가 앞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도파민 없이도 터질 수 있다.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5529.html

<위아더좀비> 9화 주인공 인종의 대사. 큰 의욕도 끈기도 없는 인종이 좀비 세상에서 살아가는 에피소드들에서 독자는 인간다움과 힐링을 느낀다. 네이버웹툰 제공

웹툰 초기와 달리 현재 개그물은 주류에서 좀 벗어났는데 걱정은 없었나.

“그런 걱정은 없었다. 가령 현재 상업적으로 인기를 끄는 주류 장르가 소위 사이다 쾌감을 주는 일진물이나 게임 판타지라 해도 어차피 내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냥 내가 잘하는 걸 해야겠다는 마음이 먼저였다.” 

장르뿐 아니라 연출 역시 요즘 웹툰의 주류와는 거리가 먼 편이다. 컷 안에 인물이 여럿 들어가고 그걸 컷마다 다른 구도로 비추는 영화적인 연출을 한다.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는데 그 영향이 큰 것 같다. 영화적이란 게 틀린 말은 아닌 게, 머릿속으로 카메라를 들고 여러 구도로 잡아보다가 예쁘거나 인상적인 컷이 나오면 그걸 그리는 식이다. 전공에서 스토리보드에 대해 배우면서 익힌 것들, 예를 들어 30도 법칙이라든지 이쪽 앵글을 잡아주면 저쪽도 잡아주는 것들을 신경 쓰는 편이다. 화면 전환은 특히 영상 기법을 따르려 하고.”

‘스크롤’ 방식에서 구현하는 웹툰 연출

<위아더좀비> 18화에서 유치원생 왕왕이의 어머니가 좀비 사태 때문에 죽는 군중 컷. 네이버웹툰 제공

유치원생 왕왕이의 어머니가 좀비 사태 때문에 죽는 군중 컷의 경우, 보통은 왕왕이 어머니에게 클로즈업할 텐데, 오히려 카메라를 뒤로 쭉 빼는 듯한 연출을 하며 아수라장을 한 컷에 담아낸다.

“우선은 그 장면만큼은 진짜 좀비 사태처럼 보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카메라를 뒤로 확 뺀 게 크다. 그와 별개로 카메라가 다이내믹하게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연출의 중요성을 느끼긴 한다. 컷과 컷의 연결에서 좌우나 상하 관계를 많이 신경 썼는데, 웹툰은 워낙 단독 컷도 많고 한 화면에 많이 담겨봤자 두세 컷이다보니 컷끼리 서로 도와줄 수 있는 게 부족하더라. 그렇다면 한 컷 안에서 시선의 흐름을 유도할 수 있는 깊이감의 문제, 즉 x축, y축이 아닌 z축의 연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인종이 자동차 안에 있는 경호원 좀비들을 보는 장면에서 카메라를 계속 밖에만 두면 다이내믹함이 없으니 자가용 안쪽까지 넣어 낮은 앵글로 좀비들이 뒤엉킨 모습을 비추고, 결국엔 시선이 그 바깥에 있는 인종에게 가게 한 것도 z축을 염두에 둔 연출이다. 질문했던 군중 컷도 카메라는 뒤로 쭉 빠지되 시선은 왕왕이 어머니를 향하게 한다는 점에서 z축으로 깊이감을 살리려는 연출이고. 이런 건 전공 영향도 있지만 웹툰을 하면서 더 고민하고 시도하게 됐다.”

영상 문법을 웹툰에 적용한 건데, 그런 시도를 하기에 웹툰 연출의 자유도는 어떤 것 같나.

“아직 머릿속에 잘 정리된 건 아닌데, 확실히 페이지 만화와는 완전히 분리해서 연구해야 하는 영역이라 본다. 아직 그것이 어떤 형태일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새로운 연출 가능성이 굉장히 많을 것 같다. 단순히 기술적으로 음악을 넣거나 움직이는 효과를 넣는 것을 넘어서 스크롤이라는 방식 내에서 시도할 수 있는 연출이 아직 충분히 연구되지 않았다고 본다. 만약 영화관 스크린이 모두 세로가 더 긴 직사각형으로 바뀌었을 때 영화를 찍어야 하는 감독이라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고민을 하고 전혀 다른 영상물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이명재 작가가 작업하는 책상 위 모니터와 태블릿 사진. 이명재 제공

요즘 유행하는 건 스마트폰에 꽉 차는 한 컷에 공들인 ‘대갈치기’(인물 얼굴 클로즈업) 연출인데.

“그것도 스마트폰이라는 디바이스에 맞는 연출적인 발견이라고 생각한다. 작화에 공을 들였을 때 독자에게 그런 공들임을 인식시키기 좋은 연출이다. 물론 그것이 너무 한쪽으로만 획일화되면 안 되겠지만, 그건 연출의 획일화보다는 인기 작품이 특정 장르에 쏠려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인물의 강렬한 감정이나 동기를 보여주기엔 클로즈업 연출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내 경우엔 그보단 상황이나 임무를 같이 보여줘야 하는 장르니까 더 영화적인 연출을 고민하게 됐던 거고.”

예를 들어 특유의 예쁜 그림체로 유명한 웹툰 <여신강림>의 연출은 기존의 출판 로맨스 만화보다는 틱톡 같은 모바일 쇼츠 서비스와 유사하다. 이런 연출이 늘어나는 건 단순한 모방의 문제보다는 일종의 수렴 진화에 가깝다. 하지만 이명재 작가가 기대하듯, 또한 스스로 <위아더좀비>에서 어느 정도 성취해냈듯, 모바일 디바이스에 맞춘 웹툰 연출의 영역은 더 넓어질 수 있으며, 사실 이러한 탐구야말로 좋은 신인이 필요한 이유기도 하다.

장르적 차이를 얘기하는데,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에서의 각자도생이나 승자독식의 전망보다는 인간의 협력과 선함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 역시 중요한 차이점이다.

“두 갈래에서 독자가 감정 이입하는 현실 인식의 맥락은 비슷하다고 보는 편이다. 경쟁에 치이고, 나는 능력이 없는 거 같고, 화나고, 상상 속에서나마 내가 잘되면 좋겠고. 그런 상황에서 ‘회빙환’ 장르는 그런 내게도 새로운 기회가 생겨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대리만족을 주는 거고, 나 같은 경우엔 그냥 경쟁에서 잠시 벗어나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고. 다들 사는 게 많이 힘든데 서로 다른 방식으로 독자를 만족시키는 것 아닐까.”

화요일에는 마음 편해질 거야

그럼에도 비정한 세계 안에서의 승리보다 협력적인 세계에서의 작은 희망을 재현하는 이유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다 잘될 거라고 믿는 낙관주의자는 아니지만 어떤 낙관적인 세계를 재현하고 또 그걸 보고 공감하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있다는 걸 확인할 때 얻는 위로가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그게 너무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그런 분들은 내 작품을 보지 않을 거고, 적어도 현실이 그렇다는 건 알아도 세상이 좀더 희망적이길 바라는 사람들에겐 그런 위로를 주고 싶었다.”

사실 시트콤의 핵심은 오늘 하루 어떤 기분 나쁜 일이 있었더라도 저녁에 <거침없이 하이킥>을 틀면 웃을 수 있을 거란 믿음을 주는 거기도 하니까.

“맞다. 시트콤이라는 게 오늘 아무리 힘들었어도 저녁 8시20분에 티브이(TV)를 틀면 웃게 될 거라는 약속이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아니면 이번 한 주가 고됐어도 토요일 저녁에 <무한도전>이 기다린다는 기대감일 수도 있고. 그런 루틴이 주는 위로와 희망이 있다. 다만 앞서 말했듯 나는 코미디로 항상 웃기는 것에 대해선 자신감이 적었기 때문에 목표를 좀 소박하게 잡았다. 화요일에 <위아더좀비>를 보면 그래도 마음이 편해질 거야, 괜찮아질 거야.”

위근우 칼럼니스트

에필로그

2020 지상최대공모전 1기 대상으로 데뷔, 2022 부천만화대상 신인상 수상, 2022 오늘의 우리만화 선정. 작품은 담백하지만, <위아더좀비>의 수상 경력은 상당히 화려한 편이다. 성공적인 데뷔작을 낸 신인 작가에게 빤하면서도 참을 수 없는 질문을 했다. 소포모어 징크스가 두렵진 않나요? 답은 간단했다. “감사하게 좋은 평은 받았지만 그렇다고 들뜰 정도까진 아니었으니까요.” 앞서 좋은 신인의 등장이 생태계의 건강함을 파악하는 지표라고도 했지만, 또 다른 중요 지표는 좋은 신인이 역시 좋은 두 번째 작품을 내는 것이다. 나는 마음 편히 이명재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을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

작품 목록

<위아더좀비> 2021년 2월15일~2023년 9월25일 네이버웹툰에 연재. 2020 지상최대공모전 1기 대상 수상.

초대형 쇼핑몰 서울타워에 좀비 사태가 발발하고 정부가 이 타워를 봉쇄하면서 미처 구조되지 못한 인간과 좀비들이 공존하는 상황을 그려낸 한국의 드라마·좀비 아포칼립스 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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