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 없이도 터질 수 있다…<위아더좀비> 이명재

한겨레21 2024. 5. 2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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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이명재① ‘시트콤’ 작법에 영화적 연출, 장르 진화시키는 신인의 등장
<위아더좀비> 마지막회 주인공 인종의 대사. 큰 의욕도 끈기도 없는 인종이 좀비 세상에서 죽지 않으려 좀비인 척 하며 살아가는 에피소드들에서 독자들은 휴머니즘과 힐링을 느낀다. 네이버웹툰 제공.

어떤 문화 시장이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좋은 지표 중 하나는 흥미로운 신인의 등장 여부다. 첫째, 자기 관점과 스타일을 지닌 새로운 인력이 유입되는 것은 당연히 시장에 좋은 자극이 된다. 둘째, 창작 욕구와 재능 있는 신예가 특정 미디어에 도전한다는 것은 해당 시장이 젊은 창작자들에게 여전히 매력 있는 공간임을 방증한다. 셋째, 그런 신인이 데뷔할 수 있다는 것은 시장의 포용성을 보여준다.

2020 지상최대공모전 1기에서 <위아더좀비>로 대상을 타며 데뷔한 이명재 작가를 보면서 느낀 감정이 그랬다. 아, 다행히 아직 웹툰 시장엔 여전히 이런 재밌는 신인이 유입되고 있구나. 좀비 사태는 애초에 진압됐지만 마트의 풍족함을 누리기 위해 거대 타워 안에 격리된 좀비들과 함께 사는 걸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위아더좀비>는 초반부터 허를 찌르는 개그 센스도 돋보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에 대한 선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즐거운 군상극으로서 도파민 자극 없이도 다음 회차가 궁금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2023년 9월, 기대했듯 따뜻한 엔딩으로 데뷔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그를 꼭 만나보고 싶었다. 이 신인이 웹툰 시장에 기여한 것들을 명확한 언어로 구체화하고 싶어서.

웹툰 장르에 신선한 변화를 가져올 묵직한 신인 이명재 작가를 만났다. 김진수 선임기자

선한 믿음 바탕에 둔 따뜻한 군상극

네이버웹툰 베스트 도전에서 농구 만화 <디 언더사이즈드>를 연재하던 중 지상최대공모전에 <위아더좀비>로 대상을 타고 데뷔했다. 나중에 쓰려고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였나, 공모전을 앞두고 급조한 건가.

“이제 <디 언더사이즈드>로는 정식 연재가 어렵다는 판단이 들어 그만 그려야겠다고 생각하니 불현듯 <위아더좀비>에 대한 작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출발점은 좀비 세상에서 좀비인 척하며 살아남는 모습이 재밌을 것 같다는 거였다. 딱 그 정도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좀비 사태가 벌어지는 무대를 서울타워로 잡으니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구상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개그물에 일종의 휴먼드라마적인 성격이 덧붙여졌다. 주축 멤버가 다 같이 무사히 밖으로 나온다는 결말 외에 나머지는 아직 텅 비어 있는 상태였다. 공모전에선 첫 3화 이내에 승부를 봐야 했기 때문에 나중에 어떻게 될진 몰라도 우선 이런저런 떡밥을 던져야 했다.”

1화가 굉장히 인상적인 게, 좀비 사태가 벌어지고 주인공 인종이 갇히고서 1화 마지막에 ‘그렇게 1년이 지났다’로 점프한다. 보통은 그 1년의 생존기를 예상할 텐데.

“분명히 1화 마지막에 강한 임팩트를 줘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다. 다만 처음 생각은 인종이 소영을 만나면서 1화가 마무리되는 거였다. 그런데 현재 네이버에서 웹툰 <탑코너>를 연재 중인 윤성 작가님과 얘기를 나누다가 그냥 ‘1년이 지났다’로 마무리하는 게 어떠냐는 조언을 들었다. 솔직히 머리로만 받아들였을 땐 뭔가 맥 빠지는 엔딩 아닐까 싶었다. 어떤 사건이 시작되는 느낌은 아니니까. 하지만 우선 조언대로 그려봤더니 좀 낯설고 신선한 느낌도 들고 다음 편이 궁금해지기도 하더라. 결과적으로는 작품의 톤을 잡는 데도 도움이 됐다. 뭔가 되게 급박한 큰일이 벌어질 것 같다가 의외로 해결은 쉽게 되는 그런 개그 패턴과 정서 같은 것들.”

가령 3화에서 인종이 소영과 접선하러 비장하게 나섰다가 바로 다음 컷에서 소영한테 맞아 멍이 든 상태로 붙잡혀 심문을 당한다.

“그것 역시 1화 마지막의 연장선적인 호흡이었다. 원래는 스릴러 같은 느낌으로 끝내려 했다. 길을 나섰다가 뭔가 있는 것 같아서 돌아섰더니 사람이 딱 등장하는 식으로. 그게 좀더 정석이니까. 그런데 1화 마지막에 그냥 ‘1년이 지났다’고 끝내보니 정석보다 좀 많이 점프하더라도 이 작품의 톤은 유지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여기서 이 작품만의 새로운 톤이 생성될 수 있겠다 싶기도 했고.”

황량한 세계에서 모색하는 ‘인간다움’

<위아더좀비> 9화 주인공 인종의 대사. 큰 의욕도 끈기도 없는 인종이 좀비 세상에서 살아가는 에피소드들에서 독자는 인간다움과 힐링을 느낀다. 네이버웹툰 제공

주인공인 김인종이 별로 의욕이 없는 사람이라 그런 호흡이 가능한 것 같다.

“원래 그런 감성을 좋아하는 편이다. 내가 평소 낙서로 그리는 작품에서도 뭔가 사는 건 귀찮은데 열심히 살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캐릭터가 나온다. 보통 작법서에서 주인공에게 요구하는 게 매력, 능력, 강한 동기, 필연성처럼 이야기를 끌어갈 힘인데, 내가 봐도 인종은 그런 게 많이 부족한 편이다. 얘만 가지고서는 이야기 진행이 안 되고, 심지어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을 만한 능력도 없다. 어떤 면에선 작가 입장에서 참 의지가 안 되는 주인공이다. 내가 뭘 시키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하는 친구니까. 그런데 그러다보니 또 이상한 설득력이 생기는 거다. 딱히 강한 동기가 없다보니, 또 그 동기에 반하는 행동이랄 것도 없어서 얘의 행동에 대해 챙겨야 할 개연성이 많지 않은 거다. 일종의 자유도가 늘어난 거지. 그래서 더 편하게 이런저런 사건에 휘말리게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 사람은 이건 할 수 없어’라는 마지노선은 필요하지 않을까. 인종이 지문 등록을 위해 좀비의 엄지를 자르며 눈을 가리고 죄송하다 말하는 장면에선 인간에 대한 예의를 느낄 수 있는데.

“인종이 할 수 없는 건 잔인하거나 나쁜 짓이겠지. 좀 덜 구체적으로 범위를 넓혀 말하면 좀비 세상에 몰두해서 나올 수 있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살기 위해 누구를 죽인다거나 생존을 위해 뭘 훔치거나 좀비를 잔인하게 죽이는 것. 다른 작품 중엔 좀비 사태가 벌어지면 비인간적인 일을 저지르고, 생존을 위해서라면 그래도 되는 것처럼 묘사하는 경우가 많지만 내 만화에선 안 그러고 싶었다. 왜냐면 <위아더좀비>에선 좀비가 없는 바깥세상과 좀비가 득시글한 타워 안쪽 세상에 걸친 이야기를 하려 했으니까. 인종은 그중에서도 좀더 바깥세상을 염두에 두고 사는 캐릭터고. 만약 그 기준을 어기면 이야기의 밸런스가 깨진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이 인물은 잔혹한 좀비 세계에 속하는 사람이 되고 그렇다면 더는 바깥세상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되니까.”

이명재 작가는 다른 작품들에 대해 절대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았지만, 솔직히 이 대목에서 피 칠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케이(K)-드라마들의 목록이 떠올랐다. 인물들을 서로 죽고 죽이는 생존 경쟁으로 몰아넣은 뒤, 마치 그것이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이라도 되는 듯 허세를 부리는 작품들. <위아더좀비>는 단순히 좀비물에 대한 클리셰를 코믹하게 뒤집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런 좀비 세계의 잔혹함을 자연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미덕을 갖는다. 나는 황량한 세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다움이 어떻게 가능할지 모색하는 것이, 대충 핏빛으로 버무린 세계를 재현하는 것보다 훨씬 풍부한 상상력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매주 웃길 수만은 없어서…”

덕분에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시트콤적인 정서가 유지되는데, 한보라의 과거사를 다룬 ‘힐링캠프’ 에피소드에선 힐링물의 정서를, ‘어른으로 가는 길’ 초반엔 공포 스릴러의 정서를 담아내기도 한다.

“해당 에피소드들은 그런 장르적 변주를 의도한 경우긴 하다. 이번엔 완전히 힐링 계열로 가자, 이번엔 스릴러 정서를 담자, 이런 식으로. 독자들에게 장르가 좀 바뀌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한 건데, 이게 창작자로서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반이라면, 매주 웃길 수만은 없다는 한계 때문에 시도하는 게 반이다. 가령 <거침없이 하이킥>처럼 매회 재밌게 만들 수 있다면야 나도 그냥 매번 웃기게만 그리겠는데 그렇게 하긴 어려운 일이니까. 이번 에피소드는 힐링, 스릴러, 액션이라는 것을 확실히 초반부터 인지시키면 독자도 거기에 맞춰서 봐주고 나 역시 웃겨야 한다는 강박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다.”

그런데 <거침없이 하이킥>이야말로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섞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그런 부분까지도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시트콤을 하면서 살인 사건을 넣고, 중간중간 유미 캐릭터로 미스터리적인 맥락을 환기하는 걸 보며 ‘중간에 장르 변주를 줘도 재밌을 수 있구나’ 하면서 자주 감탄했다. 원래도 좋아했던 작품이지만 작업 중에도 틀어놓고 콘티를 짜고는 했다. 항상 다시 시트콤이 예전처럼 부활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거침없이 하이킥>만 한 작품이 나오긴 어렵겠다는 생각을 한다. 얘기하다보니 보고 싶네. 인터뷰 끝나고 집에 가서 또 봐야겠다.”

웹툰이란 형식이 시트콤과 맞아떨어지는 부분도 있었을까.

“굉장히 단순한 거긴 한데, 일주일에 한 화, 그리고 3~4주에 한 에피소드, 이런 식으로 약속된 흐름만 만들어놓으면 시트콤을 하기에 굉장히 좋은 매체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모죠 작가님의 <마루는 강쥐> 같은 작품도 굉장히 극적으로 재밌고, 에피소드 구성에서 시트콤적인 요소가 있다고 보는 편이다. 웹툰을 통해 시트콤이 계속 나오면 좋겠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위아더좀비> 작가 이명재 인터뷰는 다음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

휴머니즘 터지는 좀비 웹툰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5530.html

팁박스-이명재의 코미디 DNA

인터뷰 중 <거침없이 하이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이명재 작가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기존의 다른 인터뷰에서도 종종 김병욱 감독의 <거침없이 하이킥>과 장진 감독의 <아는 여자>, 이병헌 감독의 <멜로가 체질> 같은 영상화된 한국 코미디 장르물에 대한 애정을 밝혀왔으며 이번에도 그러했다. 장진 감독의 영화를 <킬러들의 수다>부터 시작했다는 그에게 장진 감독의 초기작 제목들을 이야기해주자 마치 귀한 정보라도 들은 듯 고마워하기도 했다. 스스로 “<아는 여자> <멜로가 체질> <거침없이 하이킥>처럼 위로와 웃음을 동시에 전할 수 있는 작품이 좋고, 창작자로서 닮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듯, <위아더좀비>에서 이들 한국 코미디의 디엔에이(DNA)를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다.

작품 목록

<위아더좀비> 2021년 2월15일~2023년 9월25일 네이버웹툰에 연재. 2020 지상최대공모전 1기 대상 수상.

초대형 쇼핑몰 서울타워에 좀비 사태가 발발하고 정부가 이 타워를 봉쇄하면서 미처 구조되지 못한 인간과 좀비들이 공존하는 상황을 그려낸 한국의 드라마·좀비 아포칼립스 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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