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와 법 위에 있는 의사들[뉴스와 시각]

권도경 기자 2024. 5. 2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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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지인의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환자를 떠난 의사는 자격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이다.

그는 뇌출혈, 뇌경색, 뇌동맥류 환자를 수술하는 신경외과 의사다.

의사들은 석 달간 파업이 중증환자의 기대여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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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경 사회부 차장

이달 초 지인의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혈액암에 폐렴까지 겹쳐 빅5 병원 중환자실에 있던 환자였다. 합병증이 낫자 의사는 손이 부족하다면서 퇴원하길 압박했다. 애타게 매달리던 지인에게 의사가 건넨 한마디는 “환경을 바꿔보라”였다. 병원을 옮기자 어머니 상태는 1주일 만에 악화됐다. 이달 중순 빅5 병원에 가까스로 다시 입원한 어머니는 이틀 전 딸 곁을 영원히 떠났다. 지인은 빈소에서 “의사가 최선을 다해 치료했는데도 결과가 안 좋았다면 받아들였을 것”이라며 “매몰찬 의사의 말이 사는 내내 잊히지 않을 것 같다”고 울먹였다. 딸에겐 짙은 회한만 남았다.

사흘 전에는 이건주 한국폐암환우회장이 세상을 등졌다. 아픈 몸을 이끌고 “환자를 떠난 의사는 자격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이다. 그의 마지막 호소는 “삶의 막바지에서 환자는 지금도 간절하게 치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였다.

평생과 맞먹을 ‘오늘’을 보내고 있을 암환자들이 스러져가고 있다. 이들 죽음이 의사 집단행동과 직접적 연관이 많다고 단정할 수 없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의료 공백이 길어지면서 누군가는 치료 기회가 없어 목숨을 잃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한 개두술 명의는 예약환자가 1900명이란 걸 듣고도 이달 초 사직서를 냈다. 그는 뇌출혈, 뇌경색, 뇌동맥류 환자를 수술하는 신경외과 의사다. 그에게는 두 가지 예약 리스트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외래환자용이고 다른 하나는 응급환자용이다. 뇌혈관질환은 골든타임이 중요하다. 그는 자신이 당장 집도하지 않는다면 난민처럼 떠돌다가 숨지거나 장애가 생기는 응급환자들이 있다는 실상을 알고 있다. 현재 그는 병원에 출근해도 진료를 하진 않는다. 환자를 단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의지가 없단 얘기다.

의사들은 의대 증원 과정에서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환자의 상처는 더 깊다. 의사들은 석 달간 파업이 중증환자의 기대여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잘 안다. 숱한 성명서에 환자들에게 미안하단 말은 없었다. 자성하는 모습도 없다. 환자들은 분노조차 못 하고 있다. 을(乙) 중의 을이어서다. 전공의들은 생계난을 호소하고 있다. 스스로 불러온 생활고다. 환자들은 생사의 경계에 서 있다.

환자들 비명은 묻혀도 의사들 주장은 언론 지상을 뒤덮고 있다. 음모론까지 나와 논란이다. 지난주 서울고법은 의대 증원을 집행정지할 이유가 없다고 판결했다. 입법부에 이어 사법부도 행정부의 정책 결정을 존중했다는 의미다. 의사단체 소송대리인은 이를 유신헌법을 인정한 판결에 빗댔다. 막무가내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은 재판부 회유 의혹을 연일 제기했다. 의대 증원의 과학적 증거를 내놓으라고 외치던 임 회장이 패소 직후 음모론을 꺼낸 것이다. 기댈 구석이 음모론밖에 없다면 완패한 거다.

무너진 건 법리가 아니라 의사 윤리다. 상례도 무너졌다. 환자를 인질로 삼는 투쟁은 관용의 대상이 아니다. 선택지가 돼서도 안 된다. 의사들이 환자들을 보살피면서 정부와 협상했다면 국민은 의사들 주장에 귀 기울였을 터다. 넉 달째 병원 이용이 불편해도 의료개혁을 바라는 국민 지지는 꺾이지 않았다. 법원은 국민의 손을 들어줬다. 이젠 의사들이 환자 곁으로 돌아와야 할 때다. 시간도, 국민도 의사들 편이 아니다.

권도경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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