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비건되기

2024. 5. 2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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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기업 바우(Vow)가 지난해 3월 공개한 매머드(mammoth) 배양육으로 만든 미트볼의 모습이다. 매머드는 4000년전 멸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회사는 시베리아의 영구 동토층에서 발견된 사체에서 DNA를 추출해 배양육을 만들었다.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이 미트볼을 먹을 순 없다. 회사 측은 동물을 도살하지 않고 세포에서 자란 고기의 잠재력을 보여주기 위해 미트볼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스튜디오 아이코(Studio Aico)]

2023년 3월 28일 호주 기업 바우(Vow)는 매머드 배양육으로 만든 미트볼을 공개했다. 매머드라고? 맞다. 약 480만 년 전 나타나 4000년 전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코끼리보다 조금 무섭게 생긴 그 매머드다. 이 기업은 시베리아의 영구 동토층에서 발견된 사체에서 DNA를 추출해 배양육을 만들었다. ‘대체육(代替 )’은 크게 ‘식물성 대체육’과 ‘배양육’으로 나뉘며, 배양육은 동물을 사냥 혹은 사육하지 않고 세포를 배양해 얻는 육류를 말한다.

바우가 만든 매머드 미트볼은 물론 먹을 수 없다.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런 어려운 일을 굳이 했을까? 바우 창업자인 팀 노크스미스는 “우리는 멸종된 매머드가 생물 다양성 손실의 상징이자 기후변화의 상징이기 때문에 선택했다”며 대형 축산, 환경 파괴 문제에 관심을 끌기 위한 시도였다고 밝혔다. 소, 돼지, 닭을 우리 식탁 위로 올려보내기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 키우고 도살하는 윤리적 문제부터, 축산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그리고 토양 및 수질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 대체육이라고 설명한다.

이제는 상식이 됐지만 축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은 상상 이상이다. 축산업에서 소고기, 염소, 양고기는 환경발자국이 가장 길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제한된 토지와 귀한 수자원을 엄청나게 소모하는 축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4.5%를 차지하며 전 세계 곡물 생산량의 약 3분의 1이 가축 사료로 사용된다. 이 가운데 특히 소가 차지하는 비율은 65%(고기 및 우유생산, 분뇨 등)다. FAO에 따르면 1961년 전 세계적으로 약 2800만t의 소고기와 버팔로 고기가 생산됐다. 2022년에는 약 7600만t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세계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육류 소비량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가 먹는 소고기 생산을 위해서는 일단 땅을 개간하고 물과 비료 등을 엄청나게 사용해 곡물을 생산한 다음 이를 배와 기차 등으로 옮겨 축산 농가에 전달한다. 이후 축산 농가는 또 다시 광활한 토지에 소에 필요한 각종 사료 등을 제공하고 이렇게 성장한 소들은 도축장으로 전달되고 유통업자들을 거쳐 우리 식탁에 오른다. 무한 반복이다. 생산부터 소비, 그리고 폐기물 처리까지 전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메탄 등 온실가스를 발생시킨다. 소고기 생산은 일반적인 식물성 대체 식품보다 단백질 단위당 약 20배나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땅을 개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저 소를 기르기 위한 공간을 넓힌다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많은 종류의 동식물들을 죽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생물다양성의 포기다. 세계자원연구소(WRI)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5년 사이에 약 4500만㏊의 산림이 소를 위한 목초지로 대체됐다. 이는 독일과 포르투갈을 합친 것과 비슷한 크기의 땅이다. 환경운동가들에 따르면, 1960년대 이후 이미 지구상 열대우림의 절반 이상, 아마존 열대우림의 3분의 2가 불태워 사라졌다. 이렇게 엄청난 땅이 소 사육을 위해 개발되고 무성한 숲을 허물고 파괴하는 사이 여기에 살던 다양한 생물종들은 터전을 잃고 극단의 경우 멸종에 이르게 된다. 토질이 열악해지는 것은 덤이다. 한 번 파괴된 자연을 복구하는 데는 그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2020년 11월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화석 연료 배출이 당장 제거된다고 하더라도 식량 생산 시스템(global food system)으로 인한 배출만으로도 파리 협정에 명시된 1.5도로 제한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2도 목표를 실현하는 것도 어렵다. 쉽게 말해 공장에서 석탄, 석유 등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식량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로 인해 지구는 인류가 설정한 한계선을 넘어 더욱 뜨거워질 거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유럽연합(EU) 통계를 분석한 ‘비건 영향 보고서’(Veganism Impact Report)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 세계 육식 인구가 100% 비건으로 전환한다면 식량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량 배출은 약 70% 감소해 총 96억t의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기후변화와 토지에 대한 특별보고서’에서 “육류 섭취를 줄이면 줄일수록 더 좁은 면적의 토지에서 더 많은 식량을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류가 육식 소비를 일정 부분 줄이는 대신 제한된 자원으로 더 많은 식량, 양질의 식량을 생산한다면 인류에 더 긍정적인 일이다. 기후 변화 속도를 늦추는 것도 따라오는 결과다.

#. 자신도 모르게 고르는 채식... ‘넛지 전략’

이런 글을 쓸 때마다 약간의 죄책감이 든다. 필자도 채식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식지옥, 채식 천당’ 식의 구호는 육식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크게 와 닿지 않고 때로는 죄책감을, 때로는 불편함을 던져 준다. 그래서 누군가가 생각해낸 게 바로 넛지(Nudge) 전략이다. 2008년 출판돼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됐던 넛지는 상대방에게 직접 강요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행동의 변화, 즉 여기에서는 식생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블룸버그는 최근 이 넛지 전략을 통한 식생활 변화를 조명했다. 아주 단순하게는 음식 진열의 순서만을 바꿔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고기 대신 채식을 ‘자기도 모르게 고르게’ 하는 방법이다. 같은 음식이라도 좀 더 매력적인 이름, 재료 소개를 통해 구매자가 호기심을 갖고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방법도 효과적이었다. 더불어 고기가 최고라는 ‘편견’을 깨고 ‘고급스러운 채식 요리’를 홍보하면서 조용한 인식의 변화를 꾀하는 것도 넛지 방법 중 하나다.

예를 들어보자. 직원 복지로 유명한 기업 구글은 직원 카페에서 뷔페 라인 끝에 고기를 배치해 다른 음식을 먼저 먹도록 유도한다. 일단 다른 음식을 먹으면 마지막에 선택한 고기를 양껏 먹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몇몇 곳을 테스트한 결과, ‘와인 조림 프랑스 야채 메들리 수프’와 같이 식물성 요리에 더 매력적인 이름을 붙이자 섭취량이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식품 서비스 대기업인 소덱소노스아메리카(Sodexo North America)는 약 400개 대학 캠퍼스의 학생 100만명을 대상으로 식물성 기본 식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3개 대학에서 파일럿 프로그램을 운영한 결과, 기본적으로 식물성 요리를 제공하고 육류는 요청 시에만 옵션으로 제공했을 때 배출량이 평균 24% 감소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업과 학교처럼 개별 단위의 움직임도 중요하지만 공공기관의 의지와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뉴욕시는 2030년까지 식품 관련 탄소 배출량을 4분의 1로 줄이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컬럼비아대학과 뉴욕 식물원, 11개 공립 병원 등이 식물성 음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학생들과 관광객, 환자들에게 제공하는 음식에서 육식 비중을 줄이고 주로 식물성 식품을 메인 디쉬로 소개하는 방식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세 개의 병원을 운영하는 UC 샌디에이고 헬스는 병원 구내식당에서 육류 대신 채소와 버섯 등을 주 원료로 하는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2017년부터 붉은 육류 구매를 13% 줄였고, 1000kcal당 음식 관련 배출량을 35% 감소시켰다고 밝혔다.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95%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공공 행사에서 기본적으로 육류 없는 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무려 95%다.

넛지 방식은 폭력적으로(?) 육식 메뉴를 모조리 없애는 것이 아니다. 넛지의 기본 정신은 개입은 적게, 변화는 강력하게다. 앞서 언급한 세계자원연구소(WRI)는 2020년 ‘외식 서비스에서 식물이 풍부한 요리 안내를 위한 플레이북’을 발간한 바 있다. 고객들이 식물성 음식을 더욱 많이 선택하도록 서비스 업체가 활용할 수 있는 57가지 행동변화 기술을 담았다. 이런 연구와 기술은 진화를 거듭하며 90개까지 늘어났고 2024년 5월 현재, 이 플레이북은 연간 총 80억 끼의 식사를 제공하는 식품 업체 운영에 변화를 가져왔다고 한다. 부단한 연구와 테스트의 결과지만, 이들이 말하는 ‘행동변화 기술’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학교나 뷔페 식당에서 육류음식을 제공하지만 주 메뉴로 식물성 요리를 우선 강조하고 권유하고 배치하고 제공한다. 식물성 음식 설명을 좀 더 고급스럽고 맛깔나게 한다. 똑같이 한 접시 음식을 제공하더라도 과거 접시 위에 육류가 70%였다면 이제는 식물성 재료를 70%, 육류를 30% 제공하는 식이다. 육류가 고혈압, 당뇨, 심장병, 뇌혈관질환, 암, 비만 등 각종 성인병을 유발한다는 ‘위협’만으로는 부족하다.

식물성 음식의 맛과 질감과 다양성을 꾸준히 늘려서 소비자의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 레스토랑인테리어의 분위기와 배경 음악마저 소비자의 음식 선택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월드애니멀 파운데이션에 따르면 전 세계 비건 인구는 약 8800만명이며 전 세계 인구의 1% 이상을 차지했다. 미국 영국 등은 한자릿수였던 데 비해 인도에서는 국민의 13%가 비건으로 조사됐다. 비건 인구의 4분의 3은 여성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40년에는전세계 인구의 약 40%만이 육식을 선택할 것으로 전망됐다. 비건 인구 8800만명. 아직은 미미한 숫자다. 하지만 넛지 전략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그리고 소, 양 등 반추동물의 소비가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지속적으로 설명한다면 이 숫자는 달라질 수 있다. 넛지, 지금 필요한 전략이다.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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