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학습 계획 바꿨다고 직무유기로 교사 고발…교원단체 “체험학습 강요 중단해야” [오늘의 정책 이슈]

김유나 2024. 5. 22.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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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들이 현장체험학습 계획을 변경했다는 이유로 직무유기·아동학대로 고발당할 위기에 놓였다. 교원단체는 “현장체험학습 강요를 중단하라”며 1인 시위에 나섰다. 
대구교사노조가 교육청의 숙박형 체험학습 강제 시행을 규탄하며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대구교사노조 제공
◆체험학습 계획 변경에 ‘직무유기·아동학대’ 고발 협박

22일 초등교사노동조합에 따르면 경기 양주의 A초는 올해 2월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에서 현장체험학습 운영 계획을 심의받았다. 그러나 올해 4월 강원 현장체험학습 인솔 교사의 공소사실이 알려진 뒤 현장체험학습 계획 변경을 추진했다.

앞서 강원 춘천의 한 초등학교 교사들은 현장체험학습 도중 버스 기사의 부주의로 학생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해당 사건이 알려지자 교사들 사이에서는 현장체험학습 사고에 대한 교육 당국의 대책이 없어 불안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일부 학교는 현장체험학습 계획을 취소하거나 축소했다.

A초도 현재 현장체험학습 도중 발생하는 사고에 대한 교육 당국의 대책이 부족하다고 보고, 수익자 부담 현장체험학습은 취소하고 교육청이나 시에서 지원하는 현장체험학습만 추진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기로 했다. 이에 대한 학부모 설문결과 60%가 학교 의견에 동의했지만, 일부 학운위 위원들이 반발하며 교사들을 직무유기와 아동학대로 고발하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초등교사노조에 따르면 학운위 일부 위원들은 학교 정문 앞에서 아이들에게 “교사들이 현장체험학습이 가기 싫어서 안 가려고 한다”고 하며 서명을 받으려 하고, 교육청에 관련해서 지속적으로 민원을 넣었다. 또 학부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우리 학교가 혁신학교라면서 교육과정을 마음대로 운영한다” 등의 글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측은 학부모들의 의견 수렴을 위해 대화 자리를 만들었지만, 학운위 학부모 위원들은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초등교사노조는 “교사들은 대화 자리에서 교사와 학생이 안전하게 체험학습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이 마련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고, 참석한 대다수의 학부모님은 교사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했다”며 “학운위가 본분을 망각하고 학교의 자율성을 해치는 행태를 보인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초등교사노조는 20일 A초 앞에서 학운위 위원들을 규탄하는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현장체험학습이 취소됐으나 소수의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이 여론을 조성하며 결정에 따르지 않고 교사를 아동학대와 직무유기로 고발한다며 협박하고 있다”며 “아동학대를 무기로 교육과정을 침해하는 행위에 큰 유감을 표현하며, 해당 발언의 당사자인 학운위 학부모 위원 사퇴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대구에서도 교사 천막농성…“체험학습 강제 시행 규탄”

현장체험학습과 관련한 갈등은 A초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구에서도 교사들이 교육청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대구교사노조 등은 지난 4월 대구교육청 산하 기관인 팔공산수련원에서 체험학습에 참여했던 6학년 학생이 화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한 것을 계기로 숙박형 체험활동 강제 시행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위험성 등에 대해 꾸준히 문제제기를 했음에도 대구교육청은 전체 초등학교에 일괄적으로 ‘팔공산 야영’을 추진하고 있다”며 “대구교육청의 심각한 안전불감증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대구교사노조 등은 학교 현장체험학습 자율권 보장, 숙박형 체험활동 강제 시행 중단, 현장 교사 의견 수렴 등을 요구하고 있다.

교원단체들은 현장체험학습에 대한 교육 당국의 대책이 없다면 교사들의 체험학습 거부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초등교사노조는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의 가슴 아픈 일이 해마다 벌어지지만 현장체험학습 중 교사와 학생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지 않았다”며 “안전에 대한 제도적 장치도 없이 교사와 학생을 현장체험학습으로 내모는 행위 자체가 학대"라고 강조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도 “학생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또 추억을 남겨주고 싶은 마음에 힘들지만 현장체험학습에 나서는 교사들이 많다”며 “그 노고와 헌신을 결코 당연시하고 종용만 할 것이 아니라 과도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함께 지혜를 모으고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교총은 “교사 면책 방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교사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현장체험학습을 점점 기피하게 될 것”이라며 “국회와 교육부, 교육청은 현장체험학습 교사 보호를 위한 법‧제도 마련에 조속히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세종=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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