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재인 회고록에 대한 10가지 반박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2024. 5. 2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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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국내 대통령들의 회고록은 주관적인 견해의 나열이거나 미화(美化)의 성격이 강하다. 일부는 솔직한 기록보다는 재임 중 추진했던 정책에 대한 자화자찬이거나 합리화 및 불가피성 등을 기술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당한다. 일반적으로 외교 안보 및 대북관련 부분은 상대국이나 상대 지도자 등이 관련되어 있고 외교적 마찰을 고려하여 공식적 기록을 중심으로 기술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주말 발간한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는 공식적인 외교문서를 토대로 기술한 정통 외교안보 분야 회고록이라기 보다는 최종건 전 외교부 차관이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기술되어 사건과 정책에 대한 감성적 의견과 소회로 평가된다. 따라서 문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미국 대통령들의 회고록이 사료나 당시 외교문서 등을 토대로 치밀하고 꼼꼼하게 기록된 것과는 대조가 된다.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문재인 전 대통령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가 진열돼 있다. /뉴시스

문 전 대통령은 회고록 집필 계기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이룬 일과 이루지 못한 일의 의미와 추진 배경, 성공과 실패의 원인과 결과를 성찰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며 “설명에 필요한 범위 안에서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사실들을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식적인 기록이나 문서를 인용하지 않고 김정은의 발언을 거두절미하고 일부만 소개하거나 부분적으로 모호한 이야기 등을 나열하여 과연 역사적 사료로서 의미가 어느 정도일지 애매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미화하고 북한의 핵 개발과 대남정책을 속칭 내재적 입장에서 지나치게 옹호하고 대변하여 일반 국민들이 향후 김정은의 의도와 대남정책을 오판할 가능성이 큰 만큼 세부적인 지적과 반박은 불가피하다. 통상적으로 과거 북한 최고 지도자의 행태나 관행, 평양의 선전과 실제 행동 등에서 평가할 때 문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김정은에 대해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판단하거나 감성적으로 해석하여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김정은의 녹취파일이 없는 만큼 사실관계 확인은 한계가 있다. 주로 김정은 관련 발언이나 북핵 정책을 중심으로 열 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회고록에 나온 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소개하고 이를 반박하고자 한다.

1. 김정은이 직접 연평도 포격전으로 고통받은 주민을 위로하고 싶다고 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말이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놀라웠다.

연평도 포격전은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0분쯤, 북한이 아무런 선전포고도 없이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의 대연평도를 향해 포격하자 대한민국 해병대가 피격 직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토를 향해 대응사격을 가한 사건이다. 선대 지도자인 김정일의 군사행동에 대한 남한 주민들의 피해에 대해 아들인 김정은 자신이 현장을 방문하여 위로한다는 발언은 선대의 선군정치를 부정하는 발언으로 과거 사례에서 평가할 때 불가능 수준이다. 과거 2008년 8월 금강산 관광 당시 북한군의 총격에 민간인 박왕자씨가 사망하였지만 북한은 선군정치 원칙을 내세워 끝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필자는 당시 현대아산 관계자들과의 접촉을 통하여 북한에서는 군대의 행위에 대해서는 어떤 사과도 할 수 없다는 원칙을 갖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김정은의 발언이 실제 존재했는지 혹은 다른 의도로 언급하였는데 문 전 대통령이 비틀어서 왜곡 표현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실제 이런 발언은 북한의 최고지도자 행태로 봐서 가능하지 않다.

2. 정상간의 소통은 이메일로 하자고 했다.

수많은 해커를 양성하고 남한은 물론 전 세계를 해킹하는 등 인터넷 해킹 수법에 대해서 정통한 김정은이 정상 간의 소통을 이메일로 하자는 것은 농담 수준의 발언에 불과하다. 보안에 관해 극도의 경계심을 갖고 있는 김정은이 보안 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이메일로 정상 간의 소통을 하자고 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된 발언이다. 세계 정상들 간에 이메일로 소통하는 경우는 없다. 코미디 같은 이야기다.

3.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게 주도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여러번 당부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2019년 2월 하노이 정상회담에 참여했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020년 6월 발간된 회고록 ‘그것이 일어난 방’에서 가능한 문 전 대통령이 미북 대화에 개입하는 것을 트럼프 대통령이 원치 않았다고 주장했다. 문 전 대통령이 지나치게 북한에게 양보하려고 해서 판문점 회담 등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문 전 대통령이 스스로 자칭 ‘운전자론’을 내세워 과잉 중개자 역할을 하려는 시도를 시간이 갈수록 차단하는데 주력했다.

4. 트럼프는 북한과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 비핵화를 하려고 해도 프로세스를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노하우가 없으니 한국이 그 방안을 강구해서 알려주면 좋겠다고 했다. 외교부 국정원 최고전문가들이 평화프로세스를 위한 로드맵을 작성해서 트럼프에게 전달했다.

미국은 대북 협상에 관해서는 우리보다 한 수 위다. 1994년 제네바 합의를 성사시키기 위해 유엔대표부 채널을 비롯해서 한국보다 더 많은 협상 경험과 자료를 축적하였다. 클린턴 전 대통령 등은 평양을 적접 방문해 억류자를 구출하기도 했다. 대북협상 채널은 유엔, 베이징, 스웨덴 대사관 채널 등 다양하다. 미국이 노하우가 없다고 한국에게 방안을 강구해줄 것을 요청했다는 것은 한국의 속내를 알고 싶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트럼프와 김정은 간 친서는 2018년 4월 1일부터 2019년 8월 5일까지 모두 27통이 교환돼 양측은 이미 충분한 소통을 하고 있었다. 김정은은 폼페이오 등 고위 관료들과의 협상에 대해 불신했고 문 전 대통령이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의 협상에 끼어드는 것도 원치 않았다. 그러한 의사를 친서에서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각하의 의중을 충실히 대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폼페이오와 설전을 벌이기 보다는 각하와 직접 만나 비핵화를 포함한 중요한 현안들에 관해 심층적으로 의견을 교환함이 더 건설적(2018.9.6.)“,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각하와 직접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길 희망(2018.9.21.)” 등의 내용이다.

트럼프는 문 전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에 개입하려는 것을 반대해서 형식적으로 한국의 복안을 내라고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존 볼턴 전 보좌관은 문 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는 듯한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문 전 대통령에 대해 매우 불편해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문 전 대통령이 잘못된 거래를 하도록 트럼프를 혼란스럽게 했다고 평가했다.

김정은은 2018년 9월 트럼프에게 보낸 친서(親書)에서 “앞으로 조선반도 비핵화 문제는 남조선 대통령 문재인이 함께 하는 게 아닌, 각하와 제가 직접 논의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문제들에 문 대통령이 보이는 과도한 관심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문 전 대통령을 북·미 간 대화에서 배제할 것을 주장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회고록에서 2019년 6월 남·북·미 판문점 회동에 대해 “트럼프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근처에 없기를 바랐지만, 문 전 대통령은 완강하게 참석하려 했다”고 했다. 또한 “김정은은 문 전 대통령을 위한 시간도, 존경심도 없었다”고 했다.

5. 트럼프는 평화프로세스의 내용과 로드맵을 전화로 설명하면 페이퍼로 정리해서 보내 줄 수 없느냐고 부탁하기도 했다.

백악관 재입성을 노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대거 집필에 참여한 책 ‘미국 안보를 위한 아메리카 퍼스트 접근법(An America First Approach to U.S. National Security)’이 5월 9일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모건 오테이거스 전 국무부 대변인은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해 “트럼프는 문 전 대통령의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가 원했던 것보다 더 북한에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며 “문 전 대통령이 너무 북한에 양보하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고의로 그를 싱가포르 회담에서 배제시켰다”고 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트럼프가 문 전 대통령의 평화프로세스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6. 김정은은 예의 발랐다. 김정은은 남북 공동 정상회담에 대해 자신에게 상의해왔다. 김정은이 기자회견을 한번도 한 적이 없다. 어떻게 하면 되는 거냐고 내게 물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와서도 자기가 잘했냐고, 이렇게 하면 되는 거냐고 내게 물었다.

기자회견을 자신에게 물었다고 예의가 바르다고 평가했는지 의문이다. 기자들을 상대해본 적이 없는 독재자 김정은 입장에서 문 전 대통령이 기자들을 잘 관리해달라는 의미를 전달했는데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 간의 사담이 주제가 아닌 정상회담에서 대화는 예의가 있고 없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각국의 국익을 얼마나 정확하게 표현하고 관철하였는가가 핵심이다. 김정은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발언에 불과하다.

7. 김정은이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1년만인 2021년 5월 친서를 보내왔다. 김정은이 그 일(연락사무소 폭파)이 미안했던지 연락사무소를 군사분계선 일대에 다시 건설하는 문제를 협의해보자고 제안했다.

김정은이 미안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행동을 위장하기 위해 변환 전술을 구사한 것이다. 대한민국 예산 600억원이 투입된 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해 배상 요구도 못했던 자신의 난처한 입장을 변명하는 발언에 불과하다. 군사분계선 일대에 용도도 분명치 않은 연락사무소를 거액을 투자하여 새로 건설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전혀 현실성이 결여된 발언이다.

8.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당시 트럼프와 미국 협상팀은 북한의 제안 내용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도 나중에 내게 후회한다는 말을 하며 미안해했다.

북한은 영변핵 포기와 유엔안보리 제재 11건 중 민생 분야 5건을 해제하는 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영변핵은 북한핵 개발의 성지(聖地)이지만 현재 북한 핵의 50%가 안된다. 분강, 강선 등 다른 핵시설의 폐기는 언급하지 않고 무조건 현금 거래를 푸는 5건의 해제는 전체 제재를 무력화시킨다. 트럼프는 부분 비핵화로 대북제재 전체를 무력화시키는 거래를 할 수 없었다. 미국 협상팀은 이러한 사실을 전부 인식하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의 제안을 받고 “당신은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You are no ready for the deal)”고 언급하고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트럼프는 회담이 노딜로 종료된데 대해 후회한다는 발언을 한 적이 없다.

9. 하노이 노딜은 트럼프 대통령 때문이 아니라 존 볼턴 등 미국 대통령 참모들때문이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부분 비핵화로 대북제재를 해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사전에 참모들로부터 충분히 인지하였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북한의 의도를 간파하였다. 참모들이 반대해서 협상이 노딜로 끝난 것이 아니다. 북한은 김정은이 개인적으로 트럼프를 유혹하면 즉흥적인 트럼프가 합의안에 서명할 것이라고 오판했다. 트럼프와 김정은 간에 오간 친서들은 트럼프 측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서 의문 부호를 떼지 않았으며 동시에 안보적 대가를 주는 것에 대해서 매우 절제되어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10. 김정은이 그런 표현을 썼다. 핵은 철저히 자기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사용할 생각 전혀 없다. 우리가 핵 없이도 살 수 있다면 뭣 때문에 많은 제재를 받으면서까지 힘들게 핵을 머리에 이고 살겠는가. 딸 세대한테 까지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는 것 아니냐. 핵을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다.

과거 김정일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비핵화는 김일성의 유훈(遺訓)’이라고 단골 멘트를 하여 남측을 기만하였다. 최근 김정은은 “유사시 핵 무력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박차를 가하라”고 지시했다. 김정은의 비핵화 발언은 핵을 개발하고 보유하는 것을 방어하는 상투적 궤변에 불과하다. 김정은은 2022년 핵무력 법제화를 비롯하여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금년 들어 한반도 2국가론을 내세워 남한 역시 외국이기 때문에 핵공격 대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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