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사범이 친구에게 은신처 제공 받으면 누가 죄인?

오연서 기자 2024. 5. 2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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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사범이 친구에게 부탁해 차명 휴대전화와 은신처를 제공받아도 범인도피교사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판례에는 "범인이 타인을 시켜 허위의 자백을 하게 하는 등으로 범인도피죄를 범하게 하는 경우와 같이 방어권의 남용으로 볼 수 있을 때 범인도피교사죄에 해당할 수 있고, 이때 행위의 태양과 내용, 범인과 행위자의 관계, 행위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 형사사법의 작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성의 정도 등을 종합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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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원심 깨고 무죄 선고
“방어권 남용으로 보기 어렵다”
친구는 범인 도피죄로 실형
게티이미지뱅크

마약사범이 친구에게 부탁해 차명 휴대전화와 은신처를 제공받아도 범인도피교사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피의자로서 할 수 있는 방어권 행사라는 취지다.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지난달 25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향정), 범인도피교사 혐의로 기소된 최아무개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대법원은 “최씨의 행위가 일반적인 도피행위의 범주를 벗어나 형사사법에 중대한 장해를 초래하거나 형사 피의자로서 가지는 방어권을 남용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범인도피교사 혐의를 무죄라고 봤다.

지난 2021년 10월 최씨는 검찰 수사관들이 마약류 밀수입 범죄로 자신의 집을 압수수색하자 10년 넘게 알던 지인에게 부탁해 숨어지낼 곳과 차명 휴대전화를 부탁해 제공받았다. 이 지인은 최씨의 집으로 찾아온 수사관들에게 “나는 최씨 전화번호도 모르고 피고인과 연락하려면 다른 지인과 연락을 해야 한다”고 거짓말도 했다.

범죄 혐의를 받는 피의자는 ‘스스로 죄를 인정할 필요가 없다'는 자기부죄의 원칙에 따라 거짓말을 하거나 도망가더라도 처벌받지 않는다. 그러나 최씨처럼 타인에게 도피에 도움을 달라고 요구하면 자신의 도피를 교사한 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1심과 2심은 최씨의 모든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8년을 선고했다. 다른 이들과 공모해 메스암페타민(필로폰) 1500g을 수입한 혐의도 반영됐다.

상고심에서는 최씨가 도망가기 위해 타인을 동원한 행위가 방어권 남용으로 볼만큼 지나친 수준인지가 쟁점이 됐다. 대법원 판례에는 “범인이 타인을 시켜 허위의 자백을 하게 하는 등으로 범인도피죄를 범하게 하는 경우와 같이 방어권의 남용으로 볼 수 있을 때 범인도피교사죄에 해당할 수 있고, 이때 행위의 태양과 내용, 범인과 행위자의 관계, 행위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 형사사법의 작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성의 정도 등을 종합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대법원은 최씨를 마약 혐의로는 처벌할 수 있지만 범인도피교사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최씨의 행위에 대해 “형사사법에 중대한 장해를 초래한다고 보기 어려운 통상적인 도피의 한 유형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형사피의자로서의 방어권 남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또한 “최씨의 지인은 최씨와 10년 이상의 친분관계 때문에 피고인의 부탁에 응해 도와준 것으로 보이고, 도피를 위한 인적·물적 시설을 미리 구비하거나 조직적인 범죄단체 등을 구성해 역할을 분담한 것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앞서 대법원은 ‘계곡 살인 사건’으로 검찰조사를 받다 지인들에게 은닉처와 은닉 자금 등을 부탁하고 제공받아 도피한 이은해(33)·조현수(31)씨에게도 범죄도피교사 혐의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최씨를 자기 집에 숨겨주는 등 범인도피 혐의로 기소된 지인은 실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됐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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