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 떠나간 회장님의 '빈자리'[안재광의 대기만성]

2024. 5. 2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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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이 지난 2월 서울 여의도 KFI타워에서 열린 한국경제인협회 정기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매년 대기업 집단 이런 걸 발표하는데요. 늘 논란이 되는 게 ‘동일인’이란 겁니다. 동일인은 쉽게 말해 누가 진짜 회장님인가 하는 겁니다. 실질적으로 총수 역할을 하는 사람을 지정하는데요. 삼성이나 현대차 같은 전통적인 대기업들은 문제가 없는데요.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IT 기업들은 애매한 상황이 종종 발생합니다. 네이버가 대표적이죠. 이해진 창업자는 현재 글로벌투자책임자 직함을 갖고 있는데 본인은 동일인이 아니라고 주장하고요. 공정위는 이해진 창업자를 동일인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쿠팡의 김범석 창업자는 동일인 지정이 안 됐죠. 한국계 미국인이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다룰 이 회사는 IT 회사도 아닌데 동일인이 조금 애매해요. 그룹 회장님이 6년 전인 2018년에 “회장을 그만하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말만 그렇게 한 게 아니라 진짜로 회사를 떠났고요. 자연인으로 정말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정위는 이분을 동일인으로 올해도 지정을 했습니다. 바로 코오롱의 이웅열 명예회장입니다. 이번 주제는 6년째 회장님이 부재한 코오롱입니다.


 

 ◆회장 공백 어느덧 6년째

이웅열 회장이 사퇴하겠다고 밝힌 것은 2018년 11월이었어요. 임직원 행사에 예고 없이 나타나서 “회사를 떠나겠다. 그룹 경영에도 관여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임직원들 중 일부는 “농담인 줄 알았다”고까지 말할 정도였어요.

 당시엔 엄청난 화제가 됐습니다. 승계목적이 아닌데 회장직을 내려놓은 것은 전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죠. 이분이 1956년생, 만으로 68세인데요. 6년 전인 2018년엔 62세였어요. 나이가 많다고도 볼 수 있지만요. 그렇다고 퇴임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요즘 80 넘은 경영자도 많은데요. 

 그렇다고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겨 준 것도 아니었어요. 지분을 하나도 주지 않았죠. 경영은 전문경영인들에게 맡겼습니다. 코오롱이 그렇다고 굉장히 독특한 기업문화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나 전형적인 한국의 대기업에 가까워요.

 이웅열 회장은 물러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어요. 회사를 성장시키는 데 자기가 가장 걸림돌이란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코오롱이 10년 전, 5년 전과 큰 차이가 없어서 잘 생각해 봤더니 ‘내가 빠지면 더 잘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코오롱이란 회사는 누구나 다 알지만 뭘 해서 대기업인지 느낌은 잘 안 옵니다. 등산복 팔아서 대기업이 된 것 같진 않고요.

 코오롱은 이원만이란 분이 창업했어요. 한국에서 가장 먼저 나일론 사업을 한 분이었죠. 1951년에 일본인과 합작으로 삼경물산이란 회사를 설립하면서 시작했고요. 1957년에 나일론 공장 한국나일론을 세우면서 코오롱으로 이름을 바꿉니다. 한국나일론이 생산한 제품명이 코오롱이었어요. ‘코리아 나일론’의 합성어였죠. 브랜드명을 따서 회사명에 쓴 겁니다. 당시에 국내 첫 영문 회사명이었다고도 해요. 이원만 창업주가 꽤 앞서간 사업가였단 생각이 듭니다.

 나일론은 1950~60년대에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커졌어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의복 소비가 급증했는데요. 내구성 좋고 가격은 저렴한 나일론이 섬유 소재 가운데 단연 인기가 높았거든요. 한국은 산업화를 시작하면서 섬유를 국가 기간산업으로 정했고 대대적인 지원도 해줬죠. 1970년대에 섬유가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나 됐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반도체, 자동차 같은 역할을 한 겁니다.

 코오롱은 이후에 폴리에스터, 스판덱스 같은 기능성 소재를 개발해서 확장했고요. 아예 옷 브랜드 사업까지 진출했어요. 1973년이었습니다. 이후에 2세 경영자인 이동찬 회장이 1977년 총수 자리를 물려받고 본격적으로 회사를 키우죠. 이웅열 회장은 이동찬 회장 뒤를 이은 3세 경영자였고요. 마흔이었던 1995년 총수에 올랐어요.  


 

 ◆주력 계열사 실적 악화



그럼 코오롱의 현재를 보시죠. 코오롱은 지주사 체제이고요. 주력 계열사는 코오롱인더스트리입니다. 이 회사가 한국나일론의 후신이죠. 요즘은 옷 만드는 데 들어가는 소재는 안 합니다. 대신에 산업용 소재를 해요. 예를 들어 타이어의 형태를 잡아주는 타이어코드를 생산해요.

 타이어코드는 과거엔 나일론을 많이 썼고 지금은 폴리에스터가 주력입니다. 맞아요. 옷의 소재로 쓰였던 게 타이어코드로 확장된 겁니다. 또 아라미드도 생산하는데요. 강철보다 다섯 배 강하고, 500도 이상 고온도 견딘다고 해서 꿈의 소재로 불려요. 방탄복에 많이 쓰이고요. 해저 광케이블 같은 데 들어가기도 합니다.

 패션사업도 인더스트리에서 하죠. 코오롱스포츠 말고도 브랜드가 엄청 많아요. 엘로드, 잭니클라우스, 지포어, 왁 같은 골프 브랜드도 있고요. 시리즈, 헨리코튼, 커스텀멜로우 같은 캐주얼 브랜드도 있어요. 또 마크제이콥스, 닐바렛 같은 수입 명품도 있고요. 이렇게 산업용 소재, 패션 사업 등등 해서 작년에 매출 약 5조원, 영업이익 1500억원가량을 벌었습니다.

 코오롱글로벌도 주력 계열사인데요. 옛날 코오롱건설입니다. 지금도 매출의 80% 이상이 건설에서 나오고 있으니까 건설사로 보면 될 것 같고요. 스포츠센터나 휴게소 운영도 하는데 미미한 수준이고요. 지난해 약 2조6000억원의 매출을 올렸어요.

 코오롱모빌리티그룹도 있죠. 2022년 말에 코오롱글로벌에서 떼어내서 상장시킨 회사인데요. 수입차 판매회사라고 보면 됩니다. BMW, 미니, 롤스로이스, 아우디, 볼보, 지프 등등을 국내에서 판매하고요. 특이하게 프리미엄 오디오인 뱅앤올룹슨과 보스를 수입해서 판매하는 것도 하고요. 매출은 작년 기준 약 2조4000억원으로 꽤 큰 편인데요. 이익은 400억원 조금 못 미쳤습니다.

 대략 큰 사업들은 이런데요. 문제는 이웅열 회장이 그만두면서 언급한 대로 회사가 성장을 못 했다는 데 있습니다. 주력인 인더스트리의 경우 영업이익이 작년에 1500억원가량 했는데요. 이게 전년 대비 40%나 감소한 겁니다. 야심차게 추진했던 산업용 필름 사업이나 수소 사업에서 별다른 성과를 못 냈고요. 

 코오롱글로벌도 그래요. 연간 1000억원 이상 이익을 내줬던 글로벌이 지난해엔 그 10분의 1인 100억원대 이익을 냈습니다. 건설 경기가 요즘 너무 안 좋잖아요. 코오롱글로벌은 ‘하늘채’란 브랜드로 지방에 아파트를 많이 지었는데요. 일부 사업장에서 분양이 잘 안되고 있다고 합니다. 

 바이오 사업을 하는 코오롱생명과학의 적자도 뼈아팠어요. 이 회사는 신약 개발 사업을 하는데요. 작년에 매출 약 1200억원, 영업손실 24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이웅열 회장 입장에선 더 뼈아픈 게요. 이 회사는 그 유명한 ‘인보사 사태’로 한순간에 나락에 빠졌거든요. 인보사는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인데요. 원래 허가받은 주성분이 제조 과정에서 뒤바뀌는 사건이 2019년에 발생한 겁니다. 

 결과적으로 사업들을 죽 살펴보면 이웅열 회장이 나가면서 회사는 더 안 좋아졌고요. 당장 뭔가 새롭게 도모할 사업도 잘 보이진 않습니다.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면서 과감하게 사업을 확장하거나 M&A(인수합병)를 한 것도 없었고요. 해외 기업처럼 소유와 경영을 분리할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닙니다. 이웅열 회장 나가고 장남인 이규호 씨가 바로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하더니 최근 부회장까지 달았습니다. 지주사 코오롱과 핵심 계열사인 인더스트리, 글로벌, 모빌리티 등등의 회사 사내이사를 다 맡고 있기까지 하고요.

 이웅열 회장은 코오롱 지분을 49% 넘게 보유하고 있는데요. 아들에게 증여할 수도 있겠지만요. 혹시 다시 복귀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건 없어 보이긴 합니다. 선례도 많죠. 해외에선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가 그랬고, 국내에선 셀트리온의 서정진 회장이 그랬고요. 승계든 복귀든 코오롱의 오너 경영, 조만간 다시 시작될 것 같네요.

안재광 한국경제신문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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