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기자의 영화감]아드레날린 치솟는 그녀의 질주… ‘퓨리오사 : 매드맥스 사가’

이정우 기자 2024. 5. 22.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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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퓨리오사 : 매드맥스 사가’
전작 ‘분노의 도로’ 프리퀄 작품
풍요의 땅 향한 퓨리오사의 여정
원수 디멘투스와 광란의 액션신
대사 줄이고 역동적 영상미 살려
갈등구도 단순해 전작보다 심심
영화 ‘퓨리오사 : 매드맥스 사가’는 광활한 황무지를 배경으로 끝없이 달린다. 조지 밀러 감독은 전작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에 버금가는 압도적인 액션 시퀀스를 만들어냈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매주 영화는 개봉하고, 관객들은 영화관에 갈지 고민합니다. 정보는 쏟아지는데, 어떤 얘길 믿을지 막막한 세상에서 영화 담당 기자가 살포시 영화 큐레이션을 해드립니다. ‘그 영화 보러 가, 말아’란 고민에 시사회에서 먼저 감 잡은 기자가 ‘감’ ‘안 감’으로 답을 제안해봅니다.

잔혹한 세상의 종말에 무엇으로 맞서 싸울 수 있을까. 22일 개봉한 ‘퓨리오사 : 매드맥스 사가’(감독 조지 밀러)는 핵전쟁으로 죽음의 땅이 된 ‘황무지’에서 생명력 있는 ‘풍요의 땅’으로 가려는 한 소녀의 여정이자 아드레날린으로 가득 채운 여전사의 질주입니다. 대사 없이 순수한 영화적 쾌감을 만들어내듯,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영화는 끝내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주인공 퓨리오사(안야 테일러-조이)의 목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풍요의 땅으로 돌아가겠다는 엄마와의 약속, 또 다른 하나는 엄마를 죽인 디멘투스(크리스 헴스워스)에 대한 복수이죠. 초반은 어린 퓨리오사의 처절한 고생담입니다. 디멘투스가 이끄는 오토바이 갱단에게 납치당한 퓨리오사는 황무지에서 갖은 고생을 합니다. 중반부턴 성장한 퓨리오사가 복수를 위해 달리는 필사의 추적극입니다.

안야 테일러-조이는 가냘프지만 강인한 ‘퓨리오사’를 연기했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듣지 않고 본다…순수한 시네마의 역동성

이 영화는 대사가 별로 없습니다. 퓨리오사가 조력자 잭(톰 버크)과 오토바이 갱단의 추적을 따돌리는 20분 남짓의 폭발적 추격 시퀀스는 압권인데요. 엔진의 굉음과 경적 소리만 극장을 가득 메웁니다. 대사를 절제한 이유는 순수한 영화적 체험을 위한 감독의 장치입니다. 밀러 감독은 내한 당시 버스터 키튼, 찰리 채플린 등의 무성영화를 언급한 뒤 “글을 읽지 못하는 어린아이들도 영화를 보면 이해한다”며 “순수한 시네마의 역동성을 관객이 경험하길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감독의 말대로 이 영화는 인물과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영화적 체험을 극대화합니다.

또 영화는 3차원의 공간에서 움직임을 담을 수 있는 예술임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평면일 수밖에 없는 사진이나 회화와 달리 영화는 움직임(운동성)으로 3차원의 입체감을 살릴 수 있습니다. 스크린 속 공간을 3차원이라고 하면 가로는 X축, 세로는 Y축, 그리고 스크린 내부에서 관객석으로 향하는 Z축이 형성됩니다. 이 영화는 그 Z축을 부단히 활용합니다. 즉 자동차들이 횡적으로 가로지르고, 공중전을 가미해 종적으로도 움직이는 가운데, 극 중 피사체들이 관객에게 다가오거나 멀어지는 거죠. 그만큼 깊이감이 강조됩니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황무지란 공간을 확장시키며, 압도적인 영상미와 숭고미를 구현하려는 감독의 의지가 느껴집니다.

안야 테일러-조이는 가냘프지만 강인한 ‘퓨리오사’를 연기했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엔 못 미치는 이유

그런데 전작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엔 못 미칩니다. 걸작이었던 전작과의 비교는 가혹할 수 있지만요. 전작에서 탄성을 자아냈던 광기 어린 자동차 추격전을 곳곳에 배치했음에도 상대적으로 단조롭고 심심합니다. 이는 뚜렷한 욕망을 가진 인물들이 복합적인 대립 구도를 형성했던 전작에 비해 갈등 구도가 단순해졌기 때문입니다. 전작은 주인공인 맥스와 퓨리오사 외에 임모탄, 워보이 등 각 인물의 욕망이 다양한 조합으로 충돌했습니다. 반면 이번 영화에서 내면이 묘사되는 건 퓨리오사와 디멘투스 정도입니다. 2시간 28분을 채우기엔 갈등 조합이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퓨리오사의 전사가 너무 상세히 나오는 성실한 프리퀄이란 점도 매력을 떨어뜨립니다. 성인 퓨리오사는 영화가 시작된 지 1시간이 지난 후에야 등장할 정도죠. 설명이 불충분했기에 오히려 강렬했던 전작에 비해 세계관이 너무 상세하고 매끈하게 다듬어져 있습니다.

크리스 헴스워스는 오토바이 갱단의 두목 ‘디멘투스’를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황무지에서 풍요의 땅으로

퓨리오사와 마지막으로 대면한 디멘투스는 “우린 이미 죽은 자들이야. 자극을 찾지”라며 자신과 퓨리오사가 같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퓨리오사는 허무주의자인 디멘투스와 달리 풍요의 땅에 가야 한다는 희망을 품은 인물이죠. 그런 점에서 죽음을 양분 삼아 새로운 생명인 사과나무가 자란다는 결말은 인상적입니다. 죽음에서 생명이 나고, 허무주의는 양분이 돼 희망이 됩니다.

영화는 퓨리오사가 임모탄의 여인들을 데리고 풍요의 땅으로 출발하기 직전에 끝이 납니다. 그리고 엔딩 크레디트에서 시간적으론 이후 이야기인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의 장면이 펼쳐지죠. 극장 밖을 벗어나도 질주하는 자동차의 굉음이 들리는 듯합니다. 절망에서 희망을 찾는 노감독의 도전이 계속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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