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 빌딩 외관이 주변에 끼치는 풍수적 길흉

안영배 미국 캐롤라인대 철학과 교수(풍수학 박사) 2024. 5. 2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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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배의 웰빙 풍수] 상하이세계금융센터, 일본도(刀) 연상케 해 중국 상승 기운 꺾는다는 논란

최근 워크아웃(재무구조 개선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건설사 태영건설을 두고 여의도에서 나도는 풍수 괴담이 있다. 시공능력평가 16위인 중견 건설사 태영건설이 부도 직전까지 내몰린 것은 경영진의 과오와 함께 여의도 본사 사옥(태영빌딩)에 풍수적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구체적으로는 여의도공원을 사이에 두고 태영빌딩과 마주 보고 있는 파크원타워 건물 외관이 풍수상 태영빌딩을 압박하는 모양새라는 것이다.

민폐 빌딩을 차단하는 풍수 비보

직사각형 건물 모서리마다 빨간색으로 칠해놓은 기둥 구조물이 인상적인 서울 여의도 파크원타워. [GettyImages]
2020년 7월 개장한 파크원타워는 영국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가 설계한 건물로 타워 A(지상 69층, 333m), 타워 B(지상 53층, 256m), 그리고 지상 31층 규모 호텔과 백화점 등으로 구성된 마천루 단지다. 서울에서 롯데월드타워(123층, 555m)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빌딩이자 고급 쇼핑 명소로 주목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파크원타워가 풍수적으로 주목받게 된 건 직사각형 건물 모서리마다 칠해놓은 빨간색 프레임(기둥 구조물) 때문이다. 건축가 로저스는 파크원타워 건물 내부를 넓히려고 안에 있어야 할 철골 기둥을 밖으로 드러내는 설계를 했고, 주위 시선을 끌 정도로 뻘겋게 기둥을 칠해놓았다고 한다. 이 건축가는 건물 속내가 훤히 드러난 프랑스 퐁피두센터를 디자인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흔히 '하이테크 건축'으로 불리는 이러한 빌딩들은 도시 풍경을 새롭게 하는 예술성 높은 건축물로 칭송받는가 하면, 흉물스럽다는 극단적 비판도 동시에 받는다. 풍수에서는 파크원타워의 빨간색 모서리 기둥과 대포를 연상케 하는 옥상 크레인 구조물 같은 외형이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작용을 한다고 본다.

중국과 일본 풍수가들은 특정 건물 모서리가 마주한 건물을 향해 칼날처럼 압도해 오는 모습일 경우 '격각살(隔角殺)' 혹은 '벽도살(壁刀殺)'이라고 해 매우 흉하게 본다. 거주하는 사무실이나 집에서 이러한 격각살이 보이면 조직이나 가족 내 불화와 다툼, 재산상 손실, 건강 악화 등 해로움을 받는다고 한다. 특히 파크원타워는 날카롭게 생긴 건물 모서리의 빨간색 기둥이 마치 피를 뚝뚝 흘리는 칼처럼 보여 심리적 위축감마저 들게 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래서 태영건설의 위기 사태가 파크원타워의 격각살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고층 건물이 즐비한 곳의 빌딩 외관을 두고 풍수적 길흉을 논하는 행위는 비단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중국 상하이에서는 상하이세계금융센터(上海環球金融中心·Shanghai World Financial Center)가 건물 외형 때문에 구설에 올랐다. 2008년 지상 101층, 높이 492m 규모 마천루로 일본계 자본이 완성한 이 건물을 두고 일부 상하이 시민이 일본도를 연상케 한다며 심하게 반발했다. 건물 형상이 상하이 금융 중심지에 일본도(刀)를 꽂은 것과 같아 상하이(중국)의 상승 기운을 깎아먹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원래 이 건물은 최상층부를 둥그런 원형으로 뚫어놓고 그 사이에 구름다리를 설치해 전망대로 활용하려 했다. 그러나 이것도 일장기를 연상케 한다며 반대에 부딪혀 설계가 바뀌었다고 한다. 현재 이 건물 최상층부는 병따개 모양을 하고 있다.

당시 중국인들은 중국에서 최고 높은 빌딩인 상하이세계금융센터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그 대항마로 내세운 게 상하이세계금융센터 인근에 있는 상하이타워다. 2016년 중국 자본으로 건설한 상하이타워는 지상 128층, 높이 632m 규모로 현재까지 중국에서 가장 높은 위용을 자랑한다. 또 상하이타워는 지상에서 꼭대기까지 꽈배기처럼 비틀어 올라가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 비상하는 용(龍)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하늘로 비상하는 웅장한 용(상하이타워)이 일본도(상하이세계금융센터)를 제압하는 풍수적 의도도 있다고 전해진다.

한국 파크원타워와 마찬가지로 칼처럼 생긴 빌딩 모서리가 주변 건물을 해친다는 풍수 논쟁은 홍콩에서도 있었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완공된 중국은행타워(Bank of China Tower)가 풍수적 반발을 샀다. 중국은행타워는 홍콩의 비좁은 땅덩어리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주변 건물들과 달리 매우 공격적인 외관을 하고 있다. 비 온 후 힘차게 자라는 죽순처럼 번창과 상승을 표현하려던 건축가의 의도와 달리 홍콩인들에게는 날카로운 칼 혹은 창이 떠올랐던 것이다.

건물 풍수와 기업의 명운

건물 왼편 아래에서 상단으로 꿰뚫는 듯한 모양의 벡터 구조물로 유명한 서울 삼성동 HDC현대산업개발 사옥. [안영배 제공]
특히 각진 건물의 칼끝 형태가 홍콩총독부를 겨냥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연의 일치인지, 중국은행타워가 한창 지어지던 1986년 12월 에드워드 유드 홍콩총독이 급사하는 사건마저 발생했다. 당시 홍콩총독부는 풍수사를 초빙해 자문을 구했고, 풍수사는 총독부 정원에 버드나무 숲을 조성해 살기(殺氣)를 피하라고 조언했다. 버드나무는 동아시아에서 일상적인 풍수 비보물(裨補物)로 사용됐다. 버드나무는 그 부드러운 기운이 살기뿐 아니라 사람의 거친 기질도 다독이는 것으로 여겨져 한국에서도 즐겨 사용한 비보수(裨補樹)다. 평양성이 유경성(柳京城)으로 불리고, 수원 화성에 버드나무가 도배되듯 심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중국은행타워의 칼은 홍콩총독부만 겨냥한 게 아니었다. 총독부 바로 밑에 자리한 홍콩상하이은행(HSBC) 측도 같은 피해를 받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홍콩상하이은행은 대응책으로 건물 옥상에 거대한 대포 형상의 곤돌라 2대를 설치했다. 중국은행타워에서 날아오는 살기를 대포 기운으로 진압한다는 풍수 비보책이었다.

상하이의 상하이세계금융센터, 홍콩의 중국은행타워와 관련된 풍수 논쟁은 거주민들의 정서나 심리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일본계 자금으로 지은 상하이세계금융센터는 1930년대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난징대학살을 기억하는 상하이 주민들에게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 했다. 그것이 건물 외형과 연결돼 심리적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은행타워를 향한 거부감도 홍콩에 침투하려는 중국 공산당에 대한 저항 의식과 조화·균형을 추구하는 전통의 풍수지리 관념이 복합적으로 투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건물 외형이 사람들에게 던지는 심리적 충격은 작지 않다. 대표적 예로 서울 삼성동 HDC현대산업개발 사옥을 꼽을 수 있다. 건물 왼편 아래에서 상단으로 꿰뚫는 듯한 모양의 벡터 구조물이 인상적인 이 사옥은 마치 창이 몸통(건물)을 비스듬히 찌르고 있는 듯한 이미지를 준다. 또한 건물 정면에 있는 둥그런 구조물 내 붉은색 구조물은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연상케 하는 듯하다. 미국 건축가 대니얼 리버스킨드의 건축 스타일이 강조된 이 사옥이 본격적으로 구설에 오른 건 2022년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를 겪으면서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지은 아파트가 무너지면서 인명사고가 발생하자 사옥까지 시빗거리에 올랐던 것이다. 게다가 건물 외형이 주변 건물들마저 불편하게 만든다는 불만이 준공 당시부터 제기됐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집이나 건물 외형을 사람의 길흉(吉凶)과 연결 지어 해석하는 전통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풍수 고전인 '양택십서(陽宅十書)'는 "건물 외형이 아름답지 못하면 내부가 풍수의 법에 맞더라도 끝내 길하지 못하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사람이 사는 거주지에서는 그 외형을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주변 건물과 조화는 물론, 사람의 안전을 배려하지 않은 건축물은 아무리 독창적이고 뛰어난 예술성을 자랑한다 해도 건물 본연의 역할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게 풍수적 진단이다.

안영배 미국 캐롤라인대 철학과 교수(풍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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