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끝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던 당신… 이젠 훌훌 털고 떠나시게[추모합니다]

2024. 5. 2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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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합니다 - 나의 매제 안대찬(1970∼2024) <하>
형제들이 모여 함께 김장하던 날의 모습. 매제 안대찬(오른쪽 앞) 형의 얼굴이 맑고 환해서 다시 보는 마음이 더욱 애틋하다.

그 어려운 항암 과정 속에서도 당신은 늘 유머를 잃지 않았고 짜증과 서러움과 노여움을 단 한 차례도 분출한 적이 없으니, 당신은 진정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였네. “안 서방 내공(內功)이 저 정도일 줄은 몰랐네.” 나 또한 내심 놀라며 “나도 저럴 수 있을까?” 하며 존경의 염(念)을 갖기도 했었지.

미안하네, 안 서방.

결국 당신 뜻대로 생을 마감할 기회를 우리가 빼앗은 셈이 되고 말았네. 그러나 “이제 50대 초반인데 어찌 그대로 둘 수 있단 말인가, 하는 데까지는 해 봐야지.” 하는 것이 나를 비롯한 우리의 솔직한 심정이었다네. 그래도 ‘발병 후 2년여를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가족과 친지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당신을 붙들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세월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하네.

분명 40여 일 전이었네. 음식을 삼킬 수도 없고 숨길이 점점 가빠져 응급실로 달려갔지. 다시금 찾은 삼성서울병원에서 처음으로 운명(殞命)의 순간을 맞았으나, 대구에서 한밤중 한달음에 달려온 딸을 비록 의식은 없지만 영(靈)은 알아챘기에 그 첫 고비를 무사히 넘겼지.

적십자병원 호스피스병동으로 옮겨온 직후에 98세이신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으니, 부모 앞에 죽는 불효를 차마 범할 수 없는 당신의 그 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네. 이후로도 임종실을 몇 차례나 더 오르내렸으니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차마 떠나지 못하는 당신의 그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안 서방,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이겠지만 이제는 훌훌 털고 떠나시게나.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아들딸은 걱정하지 말고 저 고통 없는 세상으로 편히 떠나시게나.

나는 최근 몇 년 동안에,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죽음학’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었다네. 그리고 당신이 삼성서울병원에 있는 동안에 ‘생명연장거부서명(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과 ‘장기기증 서약’을 서둘러 마쳤지.

그리하여 도달한 결론은 ‘어쩌면 죽음은 세상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서는 관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네. 죽음의 공포를 덜어주기 위해 당신에게도 죽음학 책들을 전해줄까도 생각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했네. 그러기엔 당신은 너무 젊었으니까….

안 서방, 지금의 이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하면 한없이 밝은 빛이 쏟아지는 저쪽 어느 길목에서 먼저 가신 아버지와 어머니, 큰형님, 그리고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얘야 어서 오너라.” “안 서방 이리 와.” 하며 당신을 반갑게 맞이해 주실 것이네.

두서없는 말이 너무 길었네. 이제는 우리가 진짜로 마지막 인사를 건넬 시간이 되었네.

봄날의 햇살처럼 따사로운 사람, 안대찬이여!/ 꽃비가 내리는 날 그대 떠나시는가?/ 그리하여 또 꽃이 피었다 진다 해도/ 그리하여 또 해와 달이 번갈아 바뀐다 해도/ 봄날의 햇살처럼 따사로웠던 그 사람/ 우리가 어찌 그대를 잊으리오.

당신은 진정 이 세상 사람들을 사랑했으며, 주어진 역할과 소명에 최선을 다해 이 세상을 열심히 살았네. 이제는 편히 떠나시게. 너무 억울해하지 말게. 알고 보면 조금 먼저 떠날 뿐이라네. (우주의 시간대에선 이 또한 찰나에 지나지 않을 뿐이네. 물론 그 찰나 속에 영원이 깃들어 있음을 이제 곧 당신도 알게 될 것이네.) 우리 모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저 요단강 건너서 다시 만날 사람들이 아니겠나. 그때는 우리가 속세의 처남과 매제의 인연을 떠나,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는’ 향상일로(向上一路)의 도반(道伴)-‘진리의 벗’으로 만나기를 진정 소망하네.

잘 가게, 안 서방. 참으로 고마웠네. 잘 가시게, 대찬 형이여. 우리 다시 만날 그날을 기약하며….

허섭(배움공동체 ‘학사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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