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자전거 여행] 고도와 중력과 싸움…힘들다, 그래서 행복하다

이남석 오지 자전거 여행가 2024. 5. 22. 07: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해발 5,416m 토롱라 정상을 30kg 자전거 끌고 오르다
해발 5,416m 토롱라 정상에 올랐다. 네팔 청년의 요청으로 네팔 국기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자전거를 타고 이곳을 넘는 경우는 드물어 의도치 않게 시선을 끌게 되었다.

햇볕은 절정이었다. 오르막 경사가 높아지고 있었다. 앞서간 트레커들이 가물가물해질 쯤 다시 멈췄다. 고산 자전거 여행 경험이 10회 이상이지만 숨이 차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멈춰 쉬는 시간이 자전거를 끄는 시간보다 길어졌다.

호흡과 근육 통증은 어느 정도 적응됐지만, 문제는 기력이었다. 몸 안에 단백질과 기름기가 서서히 고갈되어 갔다. 부지런히 탄수화물을 공급하면서 근육과 심장과 폐를 가동시켰다. 저 앞에 눈이 얹힌 바윗덩어리 암벽까지 간다면 뭔가 있을 것 같았다.

앞에서 한 말몰이꾼이 휘파람을 불었다. 나는 얼른 자전거를 한쪽으로 옮겨 세웠다. 그는 로지(여행자 숙소)에 짐을 실어다 주고 돌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내가 머리를 좌우로 흔들자 그는 토롱페디Thorong Phedi 베이스캠프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힘을 내라며 흰 이를 드러냈다. 뒤돌아보니 안나푸르나(8,091m)는 반쯤 구름 속에 가려져 있었다.

해발 4,900m에 이르자 설산이 한층 가까워졌다.

마침내 토롱페디에 도착했다. 해발 4,500m의 토롱라 베이스캠프는 근사하게 지은 로지와 함께 방문자에게 황홀한 풍경을 선사했다. 오늘 묵을 하이캠프High Camp까지는 약 1.5km를 더 가야 했다. 대부분 트레커들은 하이캠프에서 묵은 후 다음날 아침 일찍 토롱라를 넘는다. 힘이 빠진 트레커들은 토롱페디에서 자고 새벽에 전등을 밝히며 하이캠프까지 오른다.

식당에서 빵과 수프를 시켜 탄수화물부터 보충한 후 출발했다. 하이캠프는 해발 4,900m로 400m를 더 올려야 하는데, 평범한 경사가 아니었다.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프랑스인 트레커가 어느새 다가와 뒤에서 자전거를 밀었다. 그는 쉰둘의 적지 않은 나이에 구글맵에 의지해 가이드나 포터 없이 혼자 여행 중이었다.

자전거 양쪽 브레이크를 동시에 잡아도 짐 무게에 의해 뒤로 미끄러질 정도로 가팔랐다. 더구나 너덜지대가 많아 자전거를 끄는 것도 굉장한 에너지가 소모됐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다섯 발자국씩 가서 멈춰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풍경이 바뀌었다. 카메라를 꺼내는 것조차 고통스런 상황이었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셔터를 눌렀다. 만약 누군가 안나푸르나를 자전거로 여행하겠다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하이캠프(4,950m) 가는 길. 급경사에서는 카메라를 꺼내기가 어려워, 완만한 곳에서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그곳은 너무 아름다워서, 육체적 고통까지 아름답게 만드는 곳이죠. 아마 당신 자신을 자랑스럽다고 느낄 겁니다."

하이캠프에 도착하자 놀랍게도 로지 주인이 나를 알고 있었다. 트레커들이 "저 밑에서 한국인 자전거 여행자가 올라오고 있다"고 얘기한 것이다. 로지 야드에는 먼저 온 프랑스 젊은이의 자전거도 있었다. 하이캠프의 고도가 4,900m이니 이제 토롱라 정상까지는 500m 정도 남은 셈이었다. 앞에 있는 설산이 거의 같은 높이로 보이거나 아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분명 토롱페디에서 빵과 수프로 배를 채웠는데도 하이캠프에 도착하자마자 극도로 허기가 밀려왔다. 식당으로 달려갔다.

하이캠프에서 150m 정도 떨어진 곳에 4,950m 봉우리가 있는데 만약 여기를 올라가지 않았다면 후회할 뻔했다. 그곳에서 바라본 사방의 풍광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정상에 쌓아놓은 마니석(불교 기도문을 새긴 돌무더기)을 중심으로 묶어놓은 타르초가 흰 구름이 박힌 하늘과 너무 잘 어울렸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걸어서 토롱라를 넘는다. 돈을 내고 말을 타고 오르기도 한다.

눈 덮인 능선과 봉우리들 사이에 드리워진 구름 그림자가 멋지게 펼쳐졌다. 경치에 취해 정신이 나간 나는 정상에서 한참 서 있었다. 내려오면서 여러 번 걸음을 멈춰 뒤돌아봤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그 목적이 무엇일까. 모르긴 몰라도 거의 비슷할 것이다. 해가 기울면서 바람은 더 거세지고 타르초(불교 경전을 적은 오색 깃발)는 "펄럭" 소리를 내며 거칠게 몸부림쳤다. 구름은 계속 남쪽으로 달아났고, 기우는 햇볕을 받은 만년설이 선명했다. 다시 온다는 기약이 없기에 내려가는 속도는 느렸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본다. 건물 몇 채가 있는 곳이 하이캠프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면 말몰이꾼 부를 것

로지에서의 저녁은 유쾌하고 즐거웠다. 식당에 모인 인원은 대충 70명 이상이었다. 유럽 각국에서 온 트레커들은 내일이면 토롱라를 넘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모두 흥분하고 있었다. 독일인 트레커는 내게 "오늘은 운이 좋았다"며, "내일은 자전거를 말에 싣고 걸어서 넘는 건 어떠냐"며 제안했다.

그의 유머러스한 충고에 다른 트레커들도 웃으며 자전거를 말에 싣고 토롱라까지 가는 방법이 효율적일 것 같다고 거들었다. 누군가 "자전거로 오르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나는 "물론 힘들다. 하지만 행복하다"고 답했다. 식당에 있던 사람들 모두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비교적 아침 일찍 일어났으나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해가 뜨기 전 새벽에 출발한 것이다. 식사를 하고 짐을 정리한 후 마침내 토롱라를 향해 이동했다. 다행히 눈은 내리지 않고 쾌청했다. 천운이었다. 사실 가장 무서웠던 것은 기상 악화로 폭설이 내릴 수도 있다는 예보였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고도 5,000m를 넘자 확실히 몸이 둔해지고 조금만 힘을 써도 호흡이 불규칙하고 근육통이 찾아왔다.

해발 5,000m를 넘자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다운재킷을 꺼내입었다.

폭설로 길이 지워져도 갈 수 있도록 100m마다 룽다(경전이 적힌 깃발)를 꽂아 놨다. 빛이 닿은 부분과 그늘진 곳의 명암이 극도로 대비되어 낮은 언덕도 높은 구릉으로 보였다. 깊고 푸른빛의 하늘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라, 한번 시선을 고정하면 눈을 떼기 힘들었다. 지난번에 내린 눈이 완전히 녹지 않아 음지에는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경사가 완만해 자전거를 끌기에는 힘들지 않았지만 대신 지루할 정도로 길었다.

저기만 가면 토롱라 정상일 것 같은데 번번이 아니었다. 겨우 고도 500m를 남겨놨는데 아무리 가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좌우전후로 매번 달라지는 풍경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뒤에서는 토롱페디에서 머물렀던 트레커 팀들이 계속 나를 추월했다. 아마 지금까지 이 길을 간 사람은 수를 헤아리기 불가능할 정도로 많을 것이다. 오늘은 내가 그 무리의 명단에 이름을 등록했다.

"한국 사람들도 많이 와요."

중간에 있는 작은 찻집에 들러 야크버터차를 주문하자 그는 한바탕 웃었다. 물론 그 웃음의 의미를 알았다. 고소 증세를 줄이기 위해 티베트인들이 즐겨 마시는 차를 외국인인 내가 주문한 것이다.

토롱라 가는 길의 작은 찻집 주인장. 여기서 야크버터차를 마셨다. 티베트인들은 고소증세가 있을 때 야크버터차를 마신다.

그는 구석에 숨겨놓은 야크버터를 꺼내더니 숟가락으로 떼어내 뜨거운 물에 녹였다. 원래 야크버터차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긴 나무통에 물을 넣고 이렇게 하는 것 아니냐면서 티베트인들이 말하자 더 크게 웃으며 "지금은 그 방법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벽면에는 한국에서 온 여러 산악회들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올라가도 올라가도 계속 비슷한 형태의 언덕만 나타났다. 트레커들은 누구도 토롱라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냥 걷기만 했다. 고개 정상에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은 분명 왔다. 그러나 정상은 보이지 않았다. 체력이 조금씩 소진되기 시작했다. 마치 높은 곳에서 외줄 타기하며 아슬아슬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창공은 한없이 깊고, 길옆에 쌓인 눈은 한적한 시골에 쌓인 눈 같았다.

30kg 무게의 자전거 덕분에 스타 되다

한 가이드가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 경사가 급하고, 눈이 녹지 않은 곳이 많아 더 힘들 거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당장 올라가는 게 더 급하고 절실했다. 앞에는 언덕과 작은 봉우리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이따금 말몰이꾼들이 올라가고 내려갔다. 그들은 지친 트레커들이 원할 때 그들을 태워 정상까지 올려다 줬다.

마침내 토롱라가 가까워오자 눈과 빙판길이 늘어났다.

한 트레커가 바로 앞에서 고소와 근육통을 참지 못하고 말몰이꾼을 불렀다. 본격적으로 눈 덮인 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많이 녹았지만 트레커들이 발로 다져 녹고 얼기를 반복해 빙판이 잦았다. 조심하며 가는데도 몇 번이나 미끄러졌다.

언덕에 올라서서 드러난 풍경을 보고 나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오래 전 파키스탄 발토로빙하를 여행하던 당시보다 더 감동이었다. 앞에는 마치 빙하처럼 눈밭이 펼쳐지고, 한 무리의 설산군이 장엄하게 늘어서 있었다. 느낌상 눈밭을 끝까지 가면 고개가 나올 것 같았다. 오른쪽으로 펼쳐진 눈밭은 그대로 봉우리까지 이어져 대 장관이었다. 벼린 창검같이 날 선 빛이 눈 위에 쏟아지고, 굴러 내린 바위는 그대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바위였다.

이상하게도 몸에서 열이 오르고 힘이 났다. 혹시 탈이 난 건 아닌지 의심하면서도 열심히 자전거를 끌었다. 앞서가던 가이드 말대로 오늘 안에 고개에 도착하는 건 분명하니 말하자면 오늘이 여행의 백미이고 모든 고생도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힘이 나는 건지도 모른다.

토롱라 정상의 찻집과 뒤로 보이는 설산 능선.

눈 덮인 능선 옆에 갈매기를 닮은 구름이 떠 있고, 오른쪽 절벽은 주황색 흙벽을 드러내고 있었다. 흰 산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 이제 다 온 것인가?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자전거를 밀었다.

일순간 "아!"하고 탄성을 질렀다. 엄청난 타르초가 한 방향으로 요동치고 작은 휴게소 겸 찻집이 보였다. 그토록 고대하던 토롱라 정상이었다. 해발 5,416m 토롱라가 마침내 한국에서 달려온 한 자전거 여행자에게 그 모습을 공개한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장갑을 한 번도 착용하지 않았다. 불편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목욕도, 세탁도 하지 않았다. 처음엔 약간 갑갑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익숙해졌다.

뭔가 기막힌 시상詩想이 떠오르거나 감격스러운 문장 하나라도 꺼내야 하는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늘 경험했던 것처럼 감동은 순간이었다. 셀카를 찍으려고 카메라를 땅바닥에 내려놓자 한 트레커가 오더니 자기가 찍어주겠다며 손을 내밀었다. 왼쪽에 떠 있던 갈매기를 닮은 구름은 어느새 두 마리가 되어 있었다.

정신이 나가 자전거를 세워놓고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한 트레커가 다가왔다. 네팔 청년인 그는 네팔 국기를 주면서 깃발을 들고 자전거 앞에서 포즈를 취해 달라고 했다. 즉시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바로 밑에 있던 찻집 주인이 야크버터차를 찾은 한국인 자전거 여행자가 있었다며 미리 알려준 것이다. 자전거 여행자는 워낙 드문데다 한국에서 온 자전거 여행자는 더 드물었기에 그런 듯하다.

표지판에는 '토롱라(5,416m)에 성공적으로 온 것을 축하한다'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셀 수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타르초들은 이 고개를 넘던 사람들이 걸어놓은 것이다. 이런 고개 정상에 걸어놓은 타르초는 어느 곳이나 비슷한데 문득 카일라스의 돌마라 정상에서 본 타르초가 떠오른 것은 무슨 이유일까.

토롱라가 다가올수록 자전거를 타기는 어려워졌다.

덕분에 나는 이 사람 저 사람의 요청에 사진도 찍고 옆에 있는 작은 찻집에 들러 차도 한 잔 마시면서 정상에서 받은 감동과 느낌을 잘 갈무리했다. 동시에 나는 자전거에도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동안 나와 함께 세계 오지를 누볐으며 이번에도 특별한 경험을 함께했다.

정상에 늦게 도착한 몇몇 트레커들을 빼고는 한적했다. 덕분에 나는 차분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서두르지 않았다. 갑자기 들려오는 짐승 울음소리에 남은 여정이 신경 쓰이기도 했다. 묵티나트나 좀솜, 아니면 무스탕 지역 주민들이 마낭이나 그 주변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고개를 넘었을 것이다.

토롱라 정상에서 휴식을 마치고 마침내 내리막으로 접어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걱정을 했으며, 가장 높은 고개이고 힘들었던 구간을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반대편은 급경사인 데다가 눈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해 빙판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대부분 트레커들은 아이젠을 준비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오르막과는 비교할 수 없는 내리막이었다. 마음을 편안하게 안정시키고 심호흡을 한 후 자전거에 올랐다. <다음호에 계속>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