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중의 기본, 화이트 셔츠의 재발견
남성용에서 중성적 의상으로
무궁무진한 스타일링 가능해
포멀과 캐주얼 아우르는 아이템
화이트 셔츠의 정식 명칭은 남성용 슈트 재킷 안에 넥타이를 곁들여 입는 중의를 뜻하는 ‘드레스 셔츠(Dress Shirt)’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와이셔츠’라고 불린다. 이는 오래전 일본인들이 발음하기 편하게 부른 데서 유래한 것. 기본적으로 셔츠는 목 부위의 칼라와 긴 소매에 싱글 또는 더블 커프스가 달린 구조로, 생각보다 더 다양한 디자인이 존재한다. 허리 라인의 유무와 면과 리넨, 실크 소재의 혼방률, 심지어 칼라와 커프스의 모양과 간격, 각도의 미묘한 차이에 따라 입는 사람의 전체적인 인상이 달라진다.
스타일링도 무궁무진하다. 단추를 한두 개 풀거나 밑단을 묶어 입기도 하고, 칼라 단추를 잠근 채 아래쪽 단추는 모두 풀어 요즘 힙한 스트리트 스타일을 연출할 수도 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잘 빠진 화이트 셔츠 한 장은 절대 실패할 리 없는 전천후 아이템인 셈이다.
지금처럼 면이나 모직 소재의 유연한 셔츠가 보편화된 것은 19세기 중반부터다. 이 무렵 셔츠는 경제적인 계층을 가르는 도구로도 작용했다. 밝은 색상의 셔츠는 세탁을 자주 해야 하므로 사무직 종사자들이 주로 이용한 반면, 먼지에 노출되기 쉬운 육체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은 쉽게 때가 타지 않는 짙은 색상의 셔츠를 입어 ‘화이트칼라(White-collar)’와 ‘블루칼라(Blue-collar)’라는 용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20세기까지만 해도 화이트 셔츠는 사무직 일을 하는 깔끔한 신사의 상징처럼 여겨지곤 했다. 이를 깨뜨린 건 1920년대 코코 샤넬이 등장하면서다. 여성에게 코르셋 대신 셔츠를, 스커트 대신 바지를 선사하며 성별과 계층의 경계를 단번에 허물어뜨렸고, 남성의 전유물이던 화이트 셔츠가 여성복의 영역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특히 마돈나, 캐서린 헵번, 에바 가드너 등 당대 스타일 아이콘이 가득했던 1940년대에는 화이트 셔츠가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우아하고 세련되고 지적이기까지 한 화이트 셔츠의 영향력은 1970년대 페미니스트 운동이 일면서 가속화됐다. 이때부터 화이트 셔츠는 ‘중성적인’ 의상으로 변모했다. 1980년대 스타일 아이콘인 다이애나 스펜서가 긴 별거 끝에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 뒤 선보인 화이트 셔츠 차림은 약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훌륭한 스타일의 교과서 역할을 한다. 깔끔한 화이트 셔츠에 단추는 두어 개 풀고 소매를 팔꿈치 위까지 둘둘 걷어올린 뒤 슬림한 팬츠와 벨트, 로퍼를 더해 마무리하는 식이다. 화이트 셔츠의 또 하나의 상징적 순간으로는 1992년 미국 보그 100주년 기념호 표지를 들 수 있다. 보그 편집장 애나 윈터가 10명의 슈퍼모델에게 ‘갭(GAP)’ 브랜드의 화이트 셔츠를 입히며 여성의 파워를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사실 순백의 화이트 셔츠는 무엇을 더하든 제약이 없다. 어떤 스타일이든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특유의 클래식한 멋까지 한 스푼 더해 주니까. 속옷으로 출발해 포멀과 캐주얼까지 아우르며 이토록 오래도록 사랑받아 온 화이트 셔츠. 이번 시즌은 그 어느 때보다 화이트 셔츠의 무한한 변주가 예상된다.
안미은 패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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