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릴 물감으로 되살린 찰나의 감정

하송이 기자 2024. 5. 2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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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연작 '에너지 교감'을 처음 보면 액자 위에 얹어진 것의 '정체'가 뭔지 감이 오지 않는다.

풀어진 실뭉치? 벗겨진 전선? 그 정체가 아크릴 물감 덩어리라는 것을 깨닫고 나면 이제는 대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진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은 앞뒤가 없고 상하좌우도 없다. 밑에서 위에서 옆에서도 뒤에서도 볼 수 있지만 가능하면 양옆에서 보시라'는 작품 속 문구를 발견할 수 있는데, 실제로 옆에서 작품을 들여다보면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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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미술계 원로작가 김정명展, 킴스아트필드서 내달 22일까지

그의 연작 ‘에너지 교감’을 처음 보면 액자 위에 얹어진 것의 ‘정체’가 뭔지 감이 오지 않는다. 풀어진 실뭉치? 벗겨진 전선? 그 정체가 아크릴 물감 덩어리라는 것을 깨닫고 나면 이제는 대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진다. 손바닥 두 개 만 한 작은 액자 속에는 도록에서 잘라낸 명화가 들어있다. 그림은 구겨지고 접히는 과정을 거치며 3차원으로 거듭난다. 명화와 뒤섞인 아크릴 물감 덩어리는 액자 속 명화에서 얻은 찰나의 감정을 감각적으로 담아낸다.

김정명 작가가 지난 17일 부산 기장군 킴스아트필드 미술관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하송이 기자


또 다른 연작 ‘삐져 나오다’는 캔버스의 앞면이 아닌 뒷면을 전면에 내세웠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은 앞뒤가 없고 상하좌우도 없다. 밑에서 위에서 옆에서도 뒤에서도 볼 수 있지만 가능하면 양옆에서 보시라’는 작품 속 문구를 발견할 수 있는데, 실제로 옆에서 작품을 들여다보면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두 캔버스를 맞붙이면서 캔버스 앞면에 있던 그림이 양옆으로 ‘삐져나온’ 형상임을 깨닫기 때문이다.

‘삐져나온’ 또는 ‘흘러나온’ 형태는 ‘성주괴공’이라는 작품으로도 이어진다. 책에서 물감이 쏟아져 나온 듯한 이 작품은 책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너뜨린다. 설치작품 ‘꽃향기를 보다’는 또 다른 시도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유리병에 담긴 색색 물감은 향기를 시각화해 시각·후각의 묘한 교감을 선사한다. 가로 5m가 넘는 대형 회화 작품인 ‘알타미라에서의 만찬’은 또 어떤가. 벽화가 그려진 알타미라 동굴에서 신윤복, 마티스, 고갱, 잭슨 폴록, 고흐 등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작가들이 모여 만찬을 즐길 준비를 하고 있다. 작가가 존경하는, 그래서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들과 함께 전시를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위트와 상상력 넘치는, 때로는 놀이 같기도 한 작품을 선보인 이는 놀랍게도 여든을 앞둔 1945년생 김정명 작가다. 홍익대 미술대학 조각과를 나와 1982년부터 2010년까지 부산대 미술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한 원로다. 위에서 언급한 작품 대다수가 그가 최근 5년 이내에 새로 선보인 신작이다. “뜻밖의 맘이 불현듯 생기면 하던 일을 멈추고 또다시 저질러 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그의 설명처럼 작품은 여든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신선하다.

미술평론가 박영택 경기대 교수는 “일상의 비근한 재료들, 레디메이드 이미지와 재료를 통해 메타미술에 대해 지속적인 놀이를 시도하고 있다. 김정명은 반복되는 놀이 속에서 차이를 만들면서 나아간다”고 설명했다. 다음 달 22일까지 부산 기장군 킴스아트필드 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 ‘뜻밖의 맘’에서는 그의 녹슬지 않은, 연륜이 얹어져 더욱 반짝이는 신작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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