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 그 후 - 다시 찾은 미래] 8. 장성광업소 지킨 마지막 광부 3형제 ③ - 그들의 마지막 한 달

오세현 2024. 5. 22.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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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53세’ 한창 일할 나이… 마침표 아닌 쉼표 되길
지역 기반산업 전무 퇴직 후 미래 답답
경제지탱 ‘마지막 축’ 탄광 폐광 씁슬
자녀 생각 우선, 지게차·고소작업 염두
끝났다는 안도감 들어 몸부터 추스를 것
가족·동료 큰 힘… 모두 행복하길 소망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돼 …
실패하면 못 일어날까 봐 걱정

‘5년 만 더’를 외치며 다녔던 탄광이지만 정말 어느새 폐광이 눈 앞에 다가왔다. ‘마지막 광부가 되겠다’는 각오를 하고 입사했지만 그 20여 년의 세월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잘 버텨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면 걱정이 태산 같은 것도 사실이다. 이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지 자신이 없다. 이제 한 달 뒤면 장성광업소는 문을 닫는다. 하루하루, 광업소로 향하는 광부 3형제의 발걸음은 애틋하기만 하다.

▲ 장성광업소는 이제 한 달 뒤면 문을 닫는다. 뜨거운 열기와 압력에 맞서 탄을 캐내던 광부들의 삶도 이전과는 달라질 것이다. 사진제공=김영문씨

 

■ 살았다는 안도감 이후…

3형제 중 막내 김영문(47)씨는 요즘들어 고민이 많다. 2001년 장성광업소에 입사할 당시 ‘마지막까지 광부를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순식간에 23년이 흘렀다. 한창 자라야 하는 두 딸(12살·7살)을 생각하면 아직은 무언가 일을 더 해야 한다.

미리미리 준비한다고 키즈카페를 만들어 아내에게 운영을 맡기고 영문씨 본인도 지게차 운전이나 고소작업대(스카이 작업) 일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앞으로 한 달 뒤 그의 삶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 지 예측하긴 어렵다.

영문씨는 “퇴직을 하고 나면 (지역에서)할 게 없다”며 “아직 마흔일곱 밖에 되지 않았고 한창 일 할 나이이긴 한데 미래를 생각하면 답답한 게 현실”이라고 했다.

사실 장성광업소에 영문씨 같은 사례는 흔하다. 장성광업소 광부들의 평균 나이는 53세. 적어도 5~6년은 더 일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31년을 근무한 홍성현(50)씨도 요즘 회사 분위기를 ‘어수선하다’고 표현했다. 홍성현씨는 “전부 다 붕 떠 있는 느낌이고 정착을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며 “여기(장성광업소)가 끝나는건 확실한데, 그 이후 무언가 다른 게 없지 않느냐”고 했다. 이어 “기반산업이 잘 갖춰져 있는 곳이면 이직할 수 있는 다른 곳을 알아보겠지만, 지금 여기 같은 경우는 그런 조건이 전혀 안된다. 남은 시간이 안 갔으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폐광 이후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화부터 난다. 홍씨는 “안그래도 요새 취재 오는 기자들이 많은데 내가 역으로 물어봤다. ‘우리가 끝나고 뭘 할 수 있느냐’고.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주긴 했느냐’”고 했다며 “전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퇴직하고 뭐 하실거예요?’라고 묻는 게 제일 답답한 얘기”라고 털어놨다.

현실적으로 호기롭게 무언가를 하기 어려운 나이라는 점도 광부의 발목을 잡는다. 홍성현씨는 “나이가 젊으면 장사를 하다가도 넘어지면 일어날 수 있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어설프게 잘못하다가 넘어져 버리면 못 일어난다”고 했다.

반면 3형제 중 둘째 석규(52)씨는 오히려 후련하다. 퇴직이 아니라 회사가 문을 닫아 ‘타의적으로’ 나가긴 하지만 이제는 다 끝났다는 안도감이 먼저 든다고 한다. 석규씨는 “23년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는다니 섭섭하기는 한데 일 자체도 어렵고 힘든 데다 회사 구조적으로도 불합리한 부분이 없지 않았기 때문에 시원하기도 하다”고 했다.

첫째 영구(53)씨는 ‘마지막 광부’임이 감사하다. 영구씨는 “(사망)사고가 안 났으니 마지막 광부가 됐다”며 “사고났으면 마지막 광부도 못한다”고 웃어보였다. 영구씨는 일단 다친 몸부터 추스를 계획이다. 그는 “기계도 좀 정비를 하고 새로운 일을 해야 되지 않느냐”며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어 일단은 병원부터 다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점점 쇠퇴해 가는 지역을 바라보는 것도 고역이다. 장성광업소는 태백에서 가장 큰 기업이다. 광업소에 소속된 직원들만 416명. 연관산업 관계자들까지 감안하면 탄광이 지역 경제를 지탱하고 있던 마지막 축인 셈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강원관광대학교까지 폐교, 지역은 더욱 위축됐다.

영문씨는 “평생을 살던 내 고향인데 이 동네의 발전성을 생각하면 과연 가능할까 싶다”며 “예전에는 춘천, 원주, 강릉 다음에 인구가 많은 곳이 태백이었는데 그때가 언제였는지도 가물가물하다”고 했다.

▲ 김영구·석규·영문씨 광부 3형제와 가족들. 형제들과 가족들은 이들이 20여 년간 탄광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이다.

■ 광부라는 자부심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갔다는 자부심도 상당하다. 고깃집 가서 연탄을 볼 때는 괜히 반갑기까지 하다.

영문씨는 “힘들긴 한데 돌이켜보면 남들한테 욕 먹을 짓 안 했고 ‘열심히 잘 살았구나’ 싶다”며 “보람차게 살았고 남에게 사기 안치고 소액이지만 아이들 이름으로 기부도 하고 주말에 행사가 있을 때면 자율방범대 활동도 한다”며 “누구를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때 뿌듯하다”고 했다.

영구씨는 “예전에는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것도 상당했고 일반 공무원들보다도 월급이 3~4배 많았으니 자부심도 굉장했다”며 “석탄공사 다닌다고 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도 딸내미 얼굴도 안 보고 시집보낸다고 할 정도였다”고 했다.

곁을 지켜준 가족·동료들도 큰 힘이 된다.

홍성현씨는 “하루하루 안 다치고 퇴근해서 동료들과 술 한 잔 하는, 평범한 생활이 제일 좋았다”며 “아침에 다시 일어나서 출근하고 또 퇴근하는 똑같은 패턴의 생활이지만 ‘무사히 일을 끝내고 술 한 잔 하는 구나’ 할 때 보람된다”고 했다. 이어 “아이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나 혼자였으면 걱정도 없고 이렇게까지 열심히, 성실하게 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제 한 달 뒤면 장성광업소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뜨거운 열기와 압력을 이겨내고 탄을 캐던 광부들을 기억하는 이들도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다.

▲ 30년간 장성광업소에서 근무한 홍성현씨

요즘 장성광업소 광부들은 서로를 위로하기 바쁘다. 석규씨는 “한 직장에서 20~30년 있으면 다른 곳에 가서 적응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라며 “또 다른 직장 분위기와 상황에 자기 몸을 맞춰야 하니까 서로서로 잘 하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다.

영문씨는 “마지막까지 어떠한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문 닫는 그 날까지 안전하게 마쳤으면 좋겠다”며 “20년, 30년 간 너무 고생하셨고 앞으로 퇴직해도 모두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홍성현씨는 “크게 다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에 감사하다”며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잘 지내온 것처럼 앞으로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오세현·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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