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카멜레온 생고기는 북북 뜯어먹어야 제맛이지!”

정지섭 기자 2024. 5. 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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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때까치, 카멜레온 산채로 나무 사이 놓고 ‘날고기 성찬’
날개 얻고 앞발잃은 새들, 부리 도구처럼 쓰며 식사에 활용
새가 카멜레온을 사냥하고 있다./ 페이스북 @Nombekana Safaris and Wildlife Photography

‘변신의 귀재’. 가장 화려한 도마뱀으로 이름난 카멜레온에게 따라붙는 별명입니다. 주변 환경에 맞춰 몸색깔을 휘황찬란하게 바꿔가면서 포식자와 먹잇감을 모두 멘붕에 빠뜨리는 둔갑술도 이름났죠. 하지만 이런 변신의 귀재도 포식자의 부리에 낚이는순간 한낱 고깃덩이로 전락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수많은 짐승들은 찰나의 순간, 한끝차이로 고깃덩어리·밥반찬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발버둥칩니다. 그럼에도 포식자의 잽싼 몸놀림을 피하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해야 해요. 바로 가엾은 카멜레온의 마지막이 담긴 이 장면(Nombekana Safaris and Wildlife Photography Facebook)처럼요.

대부분의 파충류는 울림통이 없습니다. 제대로 된 소리를 못 내요. 그래서 소리로 고통을 표현할 길이 없죠. 하지만 저 가엾은 카멜레온의 얼굴을 보세요. 힘없이 굴리는 눈동자, 쩍벌린 입에서 생의 고통이 처절하게 느껴집니다. 정신이 말똥말똥한데 살가죽이 북북 뜯겨져나가는 고통, 그 뜯겨져나간 살점이 포식자의 입속으로 꾸역꾸역 넘어가는 걸 두 눈뜨고 지켜봐야 하는 고통 말입니다. 야생에서의 약자의 처절한 숙명이죠. 하지만 이 포식자에겐 더없는 성찬입니다. 그 작은 뇌에서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역시 카멜레온은 북북 뜯어먹어야 식감이 제대로야!”

회색머리덤불때까치가 버둥거리는 카멜레온을 나무 가지 사이에 꽂아 고정시킨뒤 산채로 뜯어먹으려 하고 있다./Nombekana Safaris and Wildlife Photography Facebook

벌레를 향해 화살처럼 혓바닥을 발사해 순식간에 입속으로 빨아들이는 사냥법으로 이름난 카멜레온을 한순간 고깃덩이로 만든 장본인은 회색덤불때까치(grey headed bushshrike)입니다. 이름에서 ‘아, 그 새?’하고 어떤 장면을 떠올리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쥐나 개구리, 물고기 등을 물어와 나뭇가지나 대못에 꿰어두고 꾸덕 꾸덕 말려서 뜯어먹는 독특한 습성으로 이름난 그 때까치 말이죠. 멀리 아프리카 대륙에 사는 친척이지만, 살육본능만큼은 때까치 집안의 일원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회색머리덤불때까치가 나뭇가지에 끼워둔 카멜레온의 살점과 내장을 뜯어먹고 있다./Nombekana Safaris and Wildlife Photography Facebook

처참하게 희생된 카멜레온에게는 미안한 마음이지만, 이 장면은 인간의 눈으로 여간해서 보기 힘든 진귀한 사냥 장면입니다. 특히 젖먹이짐승·파충류·물뭍동물과 달리 날개를 얻는대신 앞발을 희생한 새가 어떤 식으로 도구를 활용해 식사를 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죠. 놈은 어렵사리 싱싱한 카멜레온을 사냥해왔습니다. 그렇지만 수리·매처럼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도 없습니다. 부엉이·올빼미·왜가리처럼 단번에 꾸역꾸역 삼켜버릴 수 있는 강력한 소화력도 갖추지 못했어요. 자칫 어렵게 잡은 먹이를 어쩌지 못하고 그림의 떡처럼 멀뚱멀뚱 바라봐야할 상황입니다.

지난달 미국 빅벤드 국립공원에서 때까치가 갓 잡은 쥐를 나뭇가지에 꿰어놓고 마치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는듯한 모습이 포착됐다./Big Bend National Park Facebook

하지만 놈은 지능을 발휘합니다. 나뭇가지의 좁은 틈을 이용한 거예요. 카멜레온의 몸뚱아리를 그 틈바구니에 끼워놓고 단단하게 고정시킵니다. 이렇게 고정이 되고나니 뜯어먹는게 한결 수월해지죠. 때까치들은 먹잇감을 꼬챙이에 궤어놓고 비바람에 숙성시키며 시간을 두고 뜯어먹으며 세월의 맛을 음미하는데, 놈은 그저 싱싱한 생고기에 집중하는 듯 보입니다. 그리고 때까치라는 족속이 사용하는 지형지물과 도구가 늘 꼬챙이나 나뭇가지는 아니라는 점도 증명해냈습니다.

도마뱀을 사냥한 물총새. 먹기전에 사냥감을 나뭇가지에 여러 차례 패대기친다./Limpopo National Park

이처럼 새들 중에는 앞발이 없다는 단점을 극복하고 주변의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먹이활동에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대표적인 경우가 물총새이죠. 이들은 대개 자기 몸집과 맞먹는 물고기·뱀·도마뱀·개구리 따위를 사냥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한번에 꿀꺽 삼키지 않고 단단한 육질을 파괴해 부드럽게 할 목적으로 부리로 물고 나뭇가지나 콘트리트 구조물을 상대로 수 차례 패대기칩니다. 똑같이 먹히는 입장이라면 차라리 왜가리에게 통째로 삼켜지거나 수리·매의 발톱에 온몸이 공중해체되는게 나을지도 몰라요. 물총새에게 잡힌 먹잇감들은 연이은 패대기질로 혼절했지만 여전히 정신은 똘망똘망 붙어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위 동영상(Annemieke de Wit Facebook)에서 보셨듯,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새 중에 빼놓을 수 없는게 이집트대머리수리입니다. 수리·매는 산 사냥감을 사냥하는 ‘이글’과 죽은 사체를파먹는 스케빈저인 ‘벌처’로 크게 양분되는데요. 아무래도 ‘벌처’가 부리나 발톱이 덜 날카롭고 성질도 상대적으로 유순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집트대머리수리는 ‘벌처’ 중에서도 가장 덩치가 왜소하고 힘도 약한 편이에요. 여느 대머리수리들처럼 맹수들이 먹다 남긴 짐승 사체를 먹는 경쟁에서도 뒤처지기 십상이죠.

이집트대머리수리가 부리에 돌멩이를 물고 타조알을 깨고 있논 모습./Annemieke de Wit Facebook

이런 놈들이 대안으로 택한 비기는 ‘지능’입니다. 큼지막한 타조알을 겨냥해 부리로 자갈을 물어 여러 번 내리치기를 반복해요. 열번찍어 안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이 있듯 콘크리트 처럼 단단한 알껍데기에 금이 가기 시작하죠. 그 틈바구니로 부리를 들이밀고 노른자, 혹은 좀 더 숙성되어가고 있을 그무엇을 생명수처럼 콸콸 들이켜거나 끄집어 후루룩 삼켜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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