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권력투쟁 ‘암운’… 세습통치 부활하나

홍주형 2024. 5. 21.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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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시 대통령 사망 후폭풍
유력한 차기 최고지도자 후보 사라져
하메네이 둘째 아들 모즈타바 급부상
베일 싸였지만 막강한 영향력 행사
세습 땐 국민 반발 직면할 가능성도
대통령 보궐선거는 6월 28일 확정
누가 되든 대외 강경기조 유지될 듯
이란·美, 헬기 추락 원인 놓고 대립각
강력한 차기 최고지도자 후보였던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다음달 대통령 보궐선거 이후 내부 권력투쟁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란의 대외 정책은 라이시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강경 정책으로 일관될 전망이다.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둘째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 AP연합뉴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는 이란의 권력 구조에 따라 종교적 성격을 갖는 최고지도자와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 대통령은 구분된다. 유력한 차기 최고지도자 후보자였던 라이시 대통령이 헬기 추락 사고로 숨지면서 85세의 고령인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둘째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54)가 다음 최고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관측된다. 뉴욕타임스(NYT)는 20일(현지시간) 모즈타바가 이란 정치에서 베일에 싸인 인물이지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고 전했다. 그는 현재 아버지 집무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모즈타바는 이란 최대 신학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그가 최고지도자 역할을 맡을 정도의 높은 신학적 지위를 얻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고지도자는 종교적 존경을 받고 신학 지식을 갖춰야 한다.

모즈타바가 최고지도자가 되면 1979년 이슬람 혁명을 통해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면서 종식된 세습 통치의 부활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정통성을 훼손하는 선택이 된다. 이와 관련한 내부 불만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란 국영 IRNA통신은 대통령 보궐선거가 6월 28일 치러진다고 전했다. 대통령 선거를 분기점으로 차기 최고지도자 자리를 놓고 정국 혼란은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의 이란 국장인 알리 바에즈는 “체제 내 불확실성을 줄이려고 라이시를 (최고지도자) 후계자로 키우다가 갑자기 모든 계획이 어그러져 초안을 다시 그리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불안한 차기 세습 구도 속에 국민 불안은 증폭하고 있다. 제재로 인한 경제난, 개인 자유 통제, 2022년 히잡 시위 등을 계기로 뿌려진 전국적 반체제 시위의 씨앗이 다시 태동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싱크탱크 유럽외교협회(ECFR)의 이란 연구원 엘리 게란마예는 “새 정부는 망가진 경제, 국민의 깊은 좌절 때문에 훨씬 더 망가진 사회계약을 물려받고 출범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추모 인파 몰린 테헤란 광장 이란 국민들이 20일(현지시간) 수도 테헤란의 중심부에 위치한 발리아르스 광장에 전날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과 정부 고위인사 등을 추모하기 위해 운집해 있다. 이란 현지 언론은 이날 테헤란을 비롯해 이란 주요 도시 곳곳에서 침통한 분위기 속 추모 기도회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테헤란=AFP연합뉴스
일반적으로 정치적 권한은 대통령이 갖지만, 현재의 이란은 민주적 정통성보다는 사상적 순응에 집중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점에서 차기 대통령 선거는 이미 관심 밖이라는 평가도 있다. 지난 3월 이란 의회 선거의 결선 투표율은 10% 미만을 기록했다. 라이시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된 것은 그가 대통령이기 때문이 아니라 차기 최고지도자 유력 후보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란 대외 정책 변화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라이시 대통령은 중국 중재로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정상화 등 적대 아랍국 간의 관계 정상화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대외정책에서 강경한 입장이었다.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히잡시위를 강경 진압했고, ‘그림자 전쟁’에서 벗어나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직접 공격을 시도했으며, 북한과의 핵·미사일 협력을 해왔다. 다만 일부 이란 전문가들은 이번 보궐선거가 소외된 온건파들이 다시 힘을 기를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기대하기도 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사진=EPA연합뉴스
IRNA통신은 이날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 원인을 “기술적 고장(technical failure)”이라고 규정했다. 헬기 추락 원인이 명시적으로 언급된 것은 처음이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전 이란 외무장관은 “미국은 항공업계가 이란에 판매하는 것을 제재해 대통령과 그 일행들의 순교를 초래했다“고 말했다고 통신이 전했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브리핑에서 “이란 대통령 사망에 애도를 표한다”면서도 미국의 제재로 이번 사고가 발생했다는 이란 측 언급엔 “전적으로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안전 문제는 전적으로 그들의 책임”이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우리는 인권을 위해 싸우는 이란 국민들에 대한 지지를 이어갈 것이며 역내 안보 저해 행위에서는 이란의 책임을 계속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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