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발언대 선 초6 청구인 "이상기후 폭우에 언덕 위 우리집 잠겼다"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2024. 5. 21.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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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시킨 것 아냐…투표권 없어 소송이 유일한 행동"
"5년마다 실현가능 목표 세워야…미래세대 미안" 울컥
헌법재판소에서 열리는 기후 위기 소송을 제기한 서울 동작구 흑석초등학교 6학년 한제아 양(12)이 21일 오후 헌재 대심판정에서 열리는 기후위기 헌법소원 2차 변론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5.21/뉴스1 ⓒ News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News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서울=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2022년 8월, 엄청나게 비가 쏟아질 때 집이 물에 잠겼습니다. 엄마가 주변을 살피러 나갔을 때 엄마가 못 돌아올까 봐 무서웠습니다. 저만을 위해 이 자리에 선 게 아닙니다. 지금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가 물에 잠길 겁니다."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선 한제아 양(12)은 또박또박 준비해 온 최종변론문을 읽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지난 2022년 아기 기후소송을 제기한 한 양은 이 날 공동 소송인단 61명을 대신해 발언에 나섰다.

한 양은 "대부분 어른은 어린이들이 세상을 잘 모른다고 생각하며 '어린이다움'을 강조하면서 기후위기 해결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대답을 피한다. 어쩌면 미래의 어른인 우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어리다며, '부모가 시켜서 (헌법 소송을) 했다'했다고 무시하는 댓글을 봤다. 억울했다. 이 소송은 투표권 없는 어린이에게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또 해야 하는 유일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한 양은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생명이 위험에 처할 것"이라며 정부가 기후 대응을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제42조 제1항 제1호 위헌 확인 마지막 공개 변론에 참석하고 있다. 2024.5.21/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한 양과 함께 발언에 나선 청소년 기후소송 청구인 김서경 씨는 "(청구 당시 활동했던) 탄소중립위원회(현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서 미래세대인 청소년은 '장식'이었다.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할 수 있는 온실가스 감축 정책과 사회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시민기후소송 당사자인 황인철 기후위기비상행동 운영위원장은 "국회와 정부는 기후위기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데 무능하고 무책임했다"며 "헌재가 이번 판결을 통해 헌법을 기후위기 시대의 권리장전으로 기록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참고인으로 나온 박덕영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한국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미흡과 국제조약 이행 강제성을 소개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는 2018년 대비 2030년까지 40% 감축 목표를 설정했지만, 65% 감축을 약속한 독일이나 68% 감축을 목표로 하는 영국에 비교해 미흡하다"고 했다.

이어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2021년 판결에서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 감축 목표를 설정한 독일 정부의 계획이 미래 세대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시했다"며 "대한민국도 이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했다.

한편 정부 측 참고인으로 나선 유연철 전 기후변화대사는 "(청구인 측 주장대로) 더 높은 목표 설정은 할 수 있으나, 그게 얼마큼 실현 가능한가는 별개의 문제다. 긴 호흡으로 파리협정과 탄소중립기본법을 충실히 이행하고, 매 5년마다 제출해야 하는 감축목표(GST)를 잘 세우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 전 대사는 발언 말미에 "2035년, 2040년, 2045년에 탄소감축 계획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제출할 때 청년세대 등 각계의 필요와 요구를 더 반영하는 게 필요하다"며 "현 세대 한 사람으로서 미래세대에 미안하고, 부족했다. 앞으로 더 매진하겠다 다짐한다"며 울컥했다.

청구인과 이해관계인(정부)은 이날 변론에서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적절성에 대해 재판부에 설명했다.

청구인 측은 파리협정에서 설정한 탄소예산을 한국이 이르면 2030년 이전, 늦어도 2030년대 중반에 소진하게 된다며 "정부는 2031년 이후 탄소예산을 배정하지 않아 미래세대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감축 목표 불이행 시 정부와 국회 누구도 헌법적·법률적·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아 2020년 목표를 이행하지 않고 방기한 사태의 재발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 기후위기 대응 강화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에 대해 문형배 재판관은 '측정할 수 없다면 관리할 수 없다'는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 명언을 들어 "'목표가 없이 관리한다'는 것은 관리를 제대로 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걸로 보인다"며 정부 측이 2031년 이후 구체적 목표를 들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이해관계인인 정부 측은 "정부는 전 세계적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 동참해 '2050년 탄소중립 사회 구현'이라는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이행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 중"이라고 했다.

ac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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