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층 도약은커녕 유지도 버겁다"… 중산층 20% '적자 인생'

김정환 기자(flame@mk.co.kr), 류영욱 기자(ryu.youngwook@mk.co.kr), 한상헌 기자(aries@mk.co.kr) 2024. 5. 2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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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계층 사다리
서울 아파트값 122% 오를 때
강남 등 핵심지역 150% 급등
자산가치 고려하면 더 벌어져
타계층 적자가구 비중 감소 속
소득 3~4분위 중산층만 늘어
이자·배당 과세기준 완화해
서민 재산형성 지원하고
대·중기 임금차 해소 나서야

◆ 위기의 중산층 ◆

20일 서울 마포구 고용노동부 서부고용센터 실업급여 설명회. 2030세대부터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까지 실직자들이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빼곡히 들어찼다. 현장에서 만난 장 모씨(49)는 중소기업에 다니다 최근 경영난이 심해지자 권고사직 대상에 올라 이곳을 찾았다. 장씨는 "나이가 들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막막하다"며 "청소 용역 일을 해보려 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서울에서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는 정 모씨(46)는 3년 전 아내와 열 살짜리 아들이 태국으로 이주해 떨어져 살고 있다.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하고 아들을 국제학교에 보냈다. 연간 학비가 3000만원이 넘는데 생활비까지 보내야 해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지만 후회는 없다고 한다.

정씨는 "한국에서 아이가 일반 교육과정만 거쳐서는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기 어렵다"며 "국제학교와 외국 명문대에 보내 좋은 출발점을 만들어 주는 것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아들 대학 학비까지 감당하려면 10년 넘게 돈을 벌어야 하는데, 대기업에서는 정년을 보장받기 어렵기 때문에 정씨는 최근 중견기업으로의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

부모가 모두 의사로 서울 강남에서 태어난 오 모씨(46)는 최근 집안의 도움을 받아 성형외과 병원을 개업했다. 오씨는 "부모님 영향으로 학창 시절 때부터 의대 진학을 목표로 충실히 사교육을 받았다"며 "또래 친구들도 모두 비슷한 성장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억대 수입을 올리는 오씨는 올여름 부모님을 모시고 유럽 여행을 다녀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중산층과 상류층 간 소득 격차가 사상 최대로 벌어지며 소득 계층 사다리가 끊어졌다. 21일 매일경제가 통계청 소득분배지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소득 중간계층인 3분위 가구가 벌어들인 경상소득(근로·사업·이전·재산소득)은 월평균 449만원으로 상류층 소득(1300만원)과의 격차가 851만원에 달했다. 관련 통계가 나온 2011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 보유 가치를 감안하면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더 높아진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지난해 11억9966만원으로 2011년 이후 122.6% 올랐는데, 강남 3구를 비롯한 상위 20% 아파트 값은 이 기간 9억8949만원에서 24억6804만원으로 149.4% 급등했다.

표면적으로 중산층은 늘고 있다. 중산층(중위소득 50~150%) 인구 비중은 2011년 54.9%에서 2022년 62.8%로 증가했다. 국제 기준(중위소득 75~200%)을 적용해도 한국의 중산층 비중은 61.1%로 비교 가능한 통계가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18위로 중간 수준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경제 성장의 과실이 중산층으로 흐르지 않고, 상류층과의 소득 격차는 거꾸로 커지면서 사회적인 역동성까지 줄고 있다. 특히 2020년부터 소득분배지표가 부쩍 둔화했다. 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 가처분소득을 하위 20%로 나눈 값)은 2011년 8.3배에서 2019년 6.3배로 개선됐지만, 2020년 이후 5.8배 안팎에서 정체 상태에 빠졌다.

가처분소득보다 소비 지출이 더 많은 적자 가구 비중은 2020년 23.3%에서 지난해 24.7%로 거꾸로 늘었다. 소득 3~4분위 중산층 적자 가구 비중이 가장 크게(2.9~4.6%포인트) 불어났다. 이 기간 3분위 적자 가구는 15.5%에서 20.1%까지 늘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기 침체 타격을 저소득층이 더 크게 받으면서 소득 재분배 상황이 악화됐다"고 전했다.

중산층에 자산 형성의 기회를 넓혀줘 성장의 밑바탕을 깔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안만식 이현세무법인 대표는 "30여 년 전에 설정된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을 개편해야 한다"며 "이자, 배당 소득에 대한 과세 기준인 2000만원을 상향해 중산층의 재산 형성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 규제를 깨 양질의 일자리가 나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고질적인 노동시장 이중 구조를 해소하는 처방도 시급해졌다는 지적이다. 한국 노동시장이 유달리 경직적인데, 저성장 구조가 굳어지며 노동 취약계층의 타격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은 "대기업 노조에 소속된 근로자는 임금이 빠르게 올랐지만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근로자들의 소득은 정체되며 소득 격차가 심해졌다"며 "직무급제를 민간 영역으로 확대해 정규직 노조의 철밥통 구조를 깨고, 중소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산업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은 "중견기업에 대한 세액공제 지원을 늘려 중소기업이 성장을 기피하는 '피터팬 증후군'을 깨야 한다"고 진단했다.

[김정환 기자 / 류영욱 기자 / 한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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