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소도 조류인플루엔자 백신 맞을까...곳곳에 암초

이정아 기자 2024. 5. 2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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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원성 H5N1형 예방 소 백신 개발 중
안전성, 경제성 우려로 승인 어려워
1일(현지 시각) 텍사스주 보건부와 미 질병통제센터(CDC)는 텍사스에 사는 주민이 고병원성 AI인 H5N1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밝혔다./pixabay

전 세계적으로 조류 인플루엔자(AI)가 가금류를 넘어 젖소와 사람에게까지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가축용 백신 제조사들이 잇따라 소 백신 개발에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젖소에 고병원성 H5N1 AI를 예방할 백신을 맞히면 우유 생산량 감소를 막고 사람에게 전염될 위험도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 백신 승인이 불투명하고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개발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20일(현지 시각) 미국 농무부(USDA)가 H5N1에 대한 소 백신을 개발하고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기업들에게 ‘정보 요청서’를 보냈다고 전했다. 미 농무부는 요청서에서 “현재 상황이 빠르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백신과 관련 정보를 파악하고 관심 있는 제조사들로부터 관심 표명과 역량 정보를 얻고 향후 결정을 내리기 위한 목적에서 보냈다”고 설명했다.

H5N1은 말은 바이러스 표면의 헤마글루티닌(HA)과 뉴라미니디아제(NA)가 각각 5형, 1형이란 뜻이다. HA는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에 달라붙는 열쇠 역할을 하며, NA는 증식 후 인체 세포를 뚫고 나오게 해준다. 해마다 계절독감 백신을 만드는 것은 바이러스라는 적군이 두 단백질의 형태를 매번 바꾸기 때문이다. H5N1형 AI는 2003년부터 유행해 238명이 사망했다.

미국우유생산자연맹(NMPF)에 따르면 미 농무부의 요청서에 대해 ‘관심 표명을 한 회사가 현재까지 최대 10곳에 이른다. 수의사 그룹인 미국소실무자협회(AABP)도 이달 초 여러 잠재적인 백신 제조사들의 비공개 발표회를 열기도 했다.

미국 정부와 민간이 이처럼 백신 제조에 속도를 내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젖소가 1300만 마리 있다. 지난 3월 말 이후 미국에선 텍사스주와 캔자스주를 비롯한 9개 주 51개 농장에서 젖소가 H5N1형 AI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달에는 젖소가 사람에게 H5N1 AI를 옮긴 사례도 확인됐다.

지난달 30일 장웬칭 세계보건기구(WHO) 글로벌인플루엔자프로그램 책임자는 “H5N1이 사람에 퍼지기 시작하면 사람 간 전염이 일어날 정도로 바이러스가 진화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그만큼 소 인플루엔자 백신을 개발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백신 나와도 안전 규제, 수출 규제 시달릴 것”

사이언스는 자체 조사 결과 일부 연구기관들이 이미 소에게 투여할 AI 백신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프랑스 동물의약품 회사인 세바상테아니말(Ceva Sante Animale)은 가금류용 H5N1 AI 백신을 개발했다. 존 엘아트라슈(John El-Attrache) 세바상테아니말 글로벌책임자는 “이 백신은 HA 유전자를 겨냥하고 있어 동물의 종에 구애 받지 않는다”며 “야생 조류와 가금류, 동물원의 펠리컨까지 예방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몇 주 안에 가금류용 백신이 소에게도 예방 효과가 있는지 알아볼 계획이다. 효과가 입증되고 백신이 승인된다면 바로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미국 메드진랩스(Medgene Labs)는 2013년 소 D형 인플루엔자 백신을 개발했다. 곤충 바이러스인 배큘로바이러스를 이용해 만들었다. 앨런 영(Alan Young) 메드진랩스 창업자는 사이언스와 인터뷰에서 “H5N1을 예방하는 소 백신도 개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 농무부 소속 과학자들은 현재 아이오와주에 있는 생물안전3등급(BSL3) 시설에서 H5N1에 감염된 동물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바이러스가 어느 정도여야 소를 감염시킬 수 있는지, 주요 감염 경로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있다. 만약 유축기(우유를 짜는 장치)를 함께 쓰는 것만으로도 AI가 전파된다면 기존 백신 물질의 예방 효과는 크게 떨어진다.

백신 개발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현재까지는 긍정적이다. 제이미 존커(Jamie Jonker) 국립우유생산자연맹(National Milk Producers Federation) 최고과학책임자는 사이언스와 인터뷰에서 “소 백신이 얼마만큼 효과적이고 안전한지 입증된다면 널리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 불확실성과 엄격한 안전 규제, 수출 우려는 소 AI 백신의 전망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사이언스는 먼저 H5N1을 비롯한 고병원성 바이러스는 연구에 대한 규제가 엄격해 생각보다 개발이 훨씬 지연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미국 정부는 H5N1 바이러스를 운송하거나 취급할 때 반드시 예방 조치를 해야 하는 고위험군으로 분류하고 있다. 임상시험에서 백신을 맞은 가축을 H5N1에 노출시키려면 생물 보안 계급이 두 번째로 높은 BSL3 실험실에서 진행해야 한다. 미국도 이 정도 수준의 소 실험실이 극소수이다.

백신 개발이 늦어지는 사이 자연적으로 또는 농장 위생이 개선되면서 바이러스가 사라질 수도 있다. 영 메드진랩스 창업자는 “H5N1 취급 절차가 까다롭지 않다면 이미 소에 백신을 맞춰 효과가 있는지 시험해봤을 것”이라며 “백신이 HA5에 대한 항체를 다량 생산한다는 점만 입증한다면 미 농무부가 추가 심사 없이 백신을 승인해야 한다”고 했다.

백신 개발에 성공해도 여전히 경제적 리스크는 남는다. 사람이나 소나 백신을 맞으면 실제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와 같은 면역 반응의 흔적이 몸에 남는다. 무역업자들은 백신 접종이 자칫 소의 감염 사실을 가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저온 살균 과정을 거치는 우유와 달리 치즈와 분유 같은 유제품에는 계속해서 바이러스가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존 클리포드(John Clifford) 전 미 농무부 최고수의학책임자는 “몇몇 국가들은 소가 백신을 맞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우유와 유제품 수입을 중단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유제품 수출 심사를 복잡하게 만들 소 백신을 허용할지 확실치 않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미국은 같은 문제로 닭, 오리 등 가금류에 대한 H5N1 백신을 승인하지 않은 전력이 있다. 대신 AI에 걸린 가금류 9000만 마리를 모두 살처분하는 조치를 내렸다.

소가 H5N1 감염 때문에 죽은 사례가 아직 없기 때문에 굳이 백신이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오히려 소들이 H5N1에 걸렸다가 나으면 면역력이 생긴다는 주장이다. 일부에선 소 백신 접종 비용이 농장에 큰 부담을 주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실현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참고 자료

Science(2024) DOI: https://doi.org/10.1126/science.zn3aw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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