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3개월째…출구전략 없이 전공의-정부 '평행선'

성서호 2024. 5. 2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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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전공의들 '탕핑' 비판 vs 전공의들 무대응 속 알바로 생계
당장의 의사 수급 차질·늘어난 의대생 교육 등 문제 산적
결국 피해는 환자의 몫…"정부도, 의료계도 출구 찾아야"
학생 의사실에 적힌 '도망쳐' (대구=연합뉴스) 윤관식 기자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김잔디 기자 = 2025학년도 의과대학 정원 확정 작업이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지만, 의정(醫政) 갈등은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번 '의료 공백' 사태의 중심에 있는 전공의와 정부가 각자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3개월 넘게 평행선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도 전문의 시험을 치를 수 있는 '복귀 디데이'가 지났으나 대다수의 전공의는 병원으로 돌아가지도, 정부의 대화 요구에도 응하지도 않은 채 "증원 백지화"만 외치고 있다.

정부는 이런 전공의들의 태도를 '탕핑'(躺平·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중국 신조어)이라고 비판하면서 미복귀 시 받을 수 있는 불이익만 강조하는 상황이다.

의대 정원 증원이 법원 결정이라는 큰 고비를 넘기고 사실상 최종 확정만을 앞두고 있으나 양측은 여전히 서로의 양보만 요구하고 있어 이를 타개할 묘안이 시급한 상황이다.

정부와 의료계, 갈등은 여전히 평행선 (서울=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복귀 디데이' 지나도 꿈쩍 않는 전공의들

21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2월 19일 전체 1만여명의 전공의 가운데 1천630명이 병원을 이탈했다. 그다음 날에는 이 규모가 더 불어나 전공의 6천183명이 병원을 떠났다.

2월 20일 오후 10시 기준 주요 수련병원 100개 소속 전공의의 71.2%인 8천816명이 사직했고 7천813명이 근무지를 이탈했다.

'전문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과 시행규칙'에 따르면 전공의 수련에 한 달 이상 공백이 발생하면 추가 수련을 받아야 한다. 추가로 수련해야 하는 기간이 석 달을 초과하면 전문의 자격 취득 시점이 1년 늦어질 수 있다.

대부분의 전공의가 수련병원을 이탈한 2월 20일 기준으로 본다면 이달 20일까지는 돌아왔어야 내년도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달 20일 출근한 전공의는 사흘 전보다 31명 증가한 659명에 그쳤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21일 오전 KBS 라디오 '전격시사'에 출연해 "정확한 상황은 오늘이 지나가 봐야 알 수가 있지만, 복귀가 아주 극소수에 그치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공의들은 탕핑을 나름의 투쟁 전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의대 증원 이슈는 사실상 일단락 됐으니 정부의 의료개혁특별위원회 등 대화의 장에 나오기를 바란다"고 요구했다.

전공의들의 복귀 여부와는 별개로 정부는 의료계가 낸 증원 효력정지 신청에 대해 사법부가 기각·각하를 결정함에 따라 정원 확정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박 차관은 "남은 절차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입학전형 시행계획 승인으로, 이번 주에 진행될 예정"이라며 "승인 이후 결과를 통보받은 각 대학은 모집 요강을 발표할 텐데 이달 말까지는 마무리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의대증원 놓고 의정 석달째 대치 (서울=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출구전략 없는 전공의들…알바로 생계 유지

이번 의료 공백 사태와 의정 갈등의 열쇠는 전공의들이 쥐고 있다.

전공의들은 수련생과 근로자(의사)라는 이중적 지위에서 상급종합병원에서 도제식으로 수련받으면서 장시간 과로에 시달려왔다.

이들이 속한 수련병원은 전체 인력의 최대 40%가량을 저임금의 전공의로 채워 병원을 운영해왔고 전공의들이 한꺼번에 빠지자 인력난·경영난 등으로 휘청이는 상황이 됐다.

이 때문에 정부가 전공의 처우·근무 환경 개선과 상급종합병원의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 등 정책 패키지를 추진하고 있지만, 전공의들은 패키지와 함께 증원을 백지화해야만 돌아간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사법부가 손을 들어주자 정부는 증원에 속도를 내고 있고, 전공의의 구심체라 할 수 있는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어 자칫 전공의들이 대책 없이 표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집단사직으로 막으려 했던 증원이나 각종 정책은 그대로 시행된 채 전문의 자격 취득에 차질만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석 달째 쉬는 동안 수입이 급격히 줄어든 점도 전공의들에게는 부담이다. 일부 전공의는 과외나 배달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의사협회(의협)를 중심으로 '선배' 의사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는 전공의를 지원하기도 하나 이들이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고 있어 당장 다른 병원에 취업할 수도 없다.

향후 개원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해도 수억원이 넘는 큰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당장 대안이 될 수 없다.

정부는 그동안 미뤄온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에 나설 수 있음을 경고하며 전공의들을 압박하고 있다.

박 차관은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들에 대해서는 처분이 불가피하다"며 "처분 시점이나 수위에 대해서 정부가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사직 전공의는 연합뉴스에 "정부에 정이 많이 떨어졌고 이제는 적법하지 않은 행동에 화도 안 난다"며 "사직 처리를 해주지 않는 것도 적법하지 않은데 면허 정지는 정말 말도 안 된다"고 분개했다.

의사 집단행동 중대본 브리핑 (세종=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증원해도 당장 의사 수급 차질…"정부도, 의료계도 출구 찾아야"

진통 끝에 정원 확정 '결승선' 앞에 선 정부도 고민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각종 처분 연기 등 회유책으로 전공의의 복귀를 촉구하고 있지만, 전공의들이 요지부동이라 당장 내년부터 의사 수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내년 초 전문의 시험을 앞둔 전국의 3·4년 차 레지던트는 총 2천910명으로, 내년에 이만큼의 전문의를 뽑지 못할 수 있다.

문제는 내년뿐만이 아니라 1∼3년 차 사이에서도 이런 현상이 연쇄적으로 이어져 전문의 배출이 늦어지고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사(공보의)도 줄어들 수 있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이로 인해 추후 늘어날 학생에 대한 교육도 정부에는 부담이다.

이대로 가면 내년도 전국 40개 의대 모집인원은 전년 대비 1천509명 늘어난 4천567명이 된다.

현재 의대 1학년 학생들이 유급할 경우 2025학년도 증원되는 학생들까지 대략 7천500명이 6년간 수업을 같이 들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잇따라 사직서를 제출한 의대 교수들은 이대로라면 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의정 양측이 보다 적극적으로 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영훈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는 "지금 제일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건 환자들"이라며 "정부도, 의료계도 현 사태의 정상화를 위한 출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교수는 "내년도 정원이 곧 확정될 예정인 만큼 정부가 이후의 의대 정원에 대해 열린 자세로 나와줬으면 한다"며 "전공의들도 대화에 나서는 등 양쪽이 어떻게든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s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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