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광주의 피눈물이 번진 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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묽은 청색 위에 불그스름한 암갈색이 켜켜이 쌓여 있다.
굵게 내려 그은 기둥 네 개 중 하나는 쓰러질 듯 기울어져 있다.
불의에 흔들리는 사람 같은 기둥이 눈물과 피로 물든 것 같다.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윤형근 화백의 개인전 '윤형근/파리/윤형근'이 오는 6월 29일까지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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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체류 당시 작품들 전시
묽은 청색 위에 불그스름한 암갈색이 켜켜이 쌓여 있다. 굵게 내려 그은 기둥 네 개 중 하나는 쓰러질 듯 기울어져 있다. 윤형근 화백이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프랑스 파리로 떠나 그려낸 'Burnt Umber and Ultamarine'(1981)이다. 심연으로 빠져 들어갈 듯한 묵빛이 여백과 대조를 이루는 이 장면을 그리면서 그는 정의에 대해 생각했다. 불의에 흔들리는 사람 같은 기둥이 눈물과 피로 물든 것 같다.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윤형근 화백의 개인전 '윤형근/파리/윤형근'이 오는 6월 29일까지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한마디로 윤 화백의 프랑스 파리 체류기다. 그가 파리에 머물렀던 1980~1982년과 2002년을 전후해 작업한 작품들로만 회화, 드로잉 등 27점을 선보인다. 대부분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품들로, 여기에는 2002년 파리의 장 브롤리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 출품했던 작품 4점도 포함됐다. 서로 다른 두 시기에 각기 파리에서 그려진 작품을 비교해보는 의미도 갖는다.
윤 화백은 1928년 일제강점기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서예와 사군자를 즐기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늘 올바르게 사는 것에 의미를 뒀던 그는 불의에 맞서다 고초를 겪곤 했다. 청주여고 교사 시절에는 4·19사태 이후 이승만 정권에 대한 쓴소리를 했다가 부당 발령을 받고 사직했다. 유신 체제하에 있던 1973년에는 당대 최고 권력자였던 중앙정보부장의 도움으로 부정 입학한 재벌가 딸의 비리를 따져 물었다가 '반공법 위반'으로 붙잡혀 고문을 당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걷게 됐다.
윤 화백은 언제나 마음을 다스리듯 그림을 그렸다. 수묵화의 농담에서 물감이 번지는 느낌을 청다색 기둥으로 표현한 단색화가 대표적이다. 청다색은 하늘을 상징하는 청색(Ultramarine)과 땅을 상징하는 암갈색(Umber·다색)을 혼합한 색이다. 아래로 내려 그은 기둥과 기둥 사이에 생긴 문 같은 공간을 윤 화백은 '천지문(天地門)'이라 이름 지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군사독재의 억압에 환멸을 느낀 그는 그해 12월 파리로 떠났다. 그곳에서 한지를 활용한 보다 섬세한 표현으로 울분을 풀어냄과 동시에 자신의 '천지문 회화'가 서양 미술계에서도 고유의 독자성과 보편적 감수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지 시험하고자 했다.
윤 화백과 파리의 두 번째 인연은 2002년 개인전 때다. 한국을 찾았던 장 브롤리가 그에게 파리의 레지던스를 제공했고 현지에서 3개월간 머물렀다. 작업에 확신이 생긴 덕분에 당시 그린 회화는 전작보다 더 구조적이고 힘 있는 형태로 변모했다. 기둥의 가장자리는 여전히 물감의 번짐으로 표현됐지만 화면은 대형 캔버스로 크기가 커졌고 묽었던 색은 더욱 과감하고 진해졌다. 켜켜이 쌓인 물감은 아예 먹색을 띠게 됐다. 윤 화백은 이처럼 단조로운 형태와 색 안에 일평생 겪은 한 서린 감정들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추구해온 진리를 눌러 담고자 했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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