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용’ 보고서에 등장한 “재벌 리스크”, 왜 ‘국내용’엔 없을까?
미국 증시에 상장된 KB·신한·우리금융지주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연간보고서에는 공통점이 있다. 세 금융지주 모두 ‘재벌(Chaebol)’로 표현되는 소수 국내 대기업이 중심이 되는 포트폴리오를 각 사의 ‘리스크 요소’로 분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전자공시스템(DART)에 등록된 2023년 사업보고서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21일 미국 전자공시시스템(EDGAR)과 DART를 통해 각 금융지주의 ‘미국용’ 2023년 연간보고서(20-F)와 번역본을 확인한 결과, 재벌 대출 외에도 가계·중소기업·신용카드 대출 현황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각 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위험 요인이 다양하고 상세하게 분석돼 있었다.
예컨대 신한금융의 경우 “주로 재벌 기업으로 구성된 신한은행의 10대 법인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총 30조5210억원이며, 총 익스포저의 8.8%에 달한다”고 분석하며 “재벌을 포함한 대기업의 파산 또는 재정적 어려움은 신한은행 중소기업 여신의 불이행을 야기하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KB금융 역시 “재벌 중 37개 주채무계열(부채가 많은 기업집단)에 속한 대기업 집단에 대한 당사 총 익스포저 규모는 46조3260억원으로, 당사 총 익스포저의 7.0%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금융은 “기업 차주 상위 20개 중 7개가 국내 40대 재벌 계열사”라며 “40대 재벌에 대한 익스포저 규모는 25조9180억원으로 총여신의 4.4%”라고 했다.
사업보고서 등 국내 공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내용들이다. 이유는 한국과 미국이 공시 관련 제재의 수준과 방향성에서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상장 기업이 공시하지 않은 리스크 요인으로 투자자가 중대한 영향을 받는 경우 엄격한 수준의 제재를 내리지만, 국내에는 이같은 규정이 없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한국의 경우 정해진 항목과 형식에 맞춰 공시 내용을 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미국의 경우 실제 발생할 가능성이 낮더라도 리스크 요인을 상세히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 이유로 ‘재벌’에 대한 설명은 국내 금융지주들이 20-F 양식의 미국용 연간 보고서를 작성한 이래 지속적으로 등장해왔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대기업 집단’ 여신은 통상 위험노출액 규모가 크지만 해외 투자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국내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재벌’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조혜경 금융경제연구소 소장은 “미국의 경우 2008년 이후 금융 기업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하면서, 기업의 리스크 요인이 미래에 끼칠 영향까지 상세히 계산해 공시하도록 한다”면서 “국내에는 관련해 외부적으로 공시되는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미국 상장 기업들이 SEC에 제출한 사업보고서 등은 DART에서도 번역본으로 확인할 수 있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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