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 떠납니다”···2연속 하한가 ‘HLB’에 신뢰 무너진 코스닥시장

김경민 기자 2024. 5. 21.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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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화면에 이날 거래를 마감한 코스피, 코스닥지수가 표시돼 있다.연합뉴스

“이젠 못 버티겠네요. 국장(국내 주식시장) 떠나겠습니다”

최근 2거래일 연속 하한가 직격탄을 맞은 제약회사 ‘HLB’ 종목토론방에서 나온 말이다.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2위였던 HLB 주가 폭락으로 투자자들의 원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공모가 뻥튀기 논란에 휩싸였던 ‘파두’ 사태에 이어, 운영자금 조달을 위한 잦은 유상증자 등 주주가치 훼손으로 코스닥 투자자들의 불신도 깊어지고 있다. 코스닥 시장이 ‘단타’의 장으로 전락했다는 자조섞인 목소리와 함께 신뢰 제고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가매수세 힘입어 반등 성공했지만…2연속 하한가에 신뢰 무너진 HLB
HLB주가

21일 코스닥시장에서 HLB주가는 전장보다 1500원(3.19%) 오른 4만8500원에 장을 마쳤다. 장중 한때 3.9% 하락했다가 개인 저가매수세가 유입되면서 반등했다.

HLB주가는 지난 17일과 20일 2거래일 연속 하한가(-29.96%) 직격탄을 맞으면서 주가가 9만5800원에서 4만7000원으로 반토막 났다. 12조5300억원이던 시가총액은 6조원 넘게 증발하면서 시총 순위도 4위까지 밀렸다. 코스닥 대형주의 폭락에 코스닥지수도 850선 밑으로 밀렸다.

HLB 주가가 곤두박질친 것은 진양곤 HLB 회장이 지난 17일 유튜브를 통해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자사 신약에 대해 보완 요구 서한을 받았다며 승인 불발을 알리면서다. HLB는 자사 ‘리보세라닙’과 중국 항서제약의 ‘캄렐리주맙’을 병용하는 요법으로 미 FDA에 간암 1차 치료제 신약 허가를 신청했다. HLB가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면서 투자자의 기대도 컸지만 정반대의 결과를 마주한 것이다.

HLB는 유동성 문제는 없다며 FDA에 재승인 신청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주주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그동안 코스닥 시장에 불만이 많았던 주주들의 불신도 커진 모양새다.

만연한 불공정거래·주주가치 훼손에…신뢰 잃은 코스닥 시장
17일 서울 강남구 KT선릉타워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진양곤 HLB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업 규모가 작고 회계와 기업구조 등이 상대적으로 불투명한 코스닥 상장사들은 시세조종은 물론 불공정거래의 타깃이 돼왔다. 지난해 부진한 매출을 숨기고 높은 공모가에 시장에 진입한 뒤 폭락한 ‘파두’도 대표 사례 중 하나다. 이런 논란들은 코스닥시장에 대한 신뢰도를 갉아먹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정환 한양대 교수는 “코스닥 시장은 기관보다 개인투자자가 대부분인 만큼 회사가 소액주주를 생각하지 않고 멋대로 운용하는 경향도 있다”며 “회계 투명성이 문제가 되고 기업가치 측정도 어렵다보니 시장이 불투명하고 지배구조가 좋지 않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닥시장 12월 결산법인의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 순이익은 11.2% 감소했다. 수익성이 좋지 않으면서 자금조달에도 난항을 겪고 있다. 코스닥 기업들은 자금여력이 부족해 채권 발행이나 대출보다는 비용 부담이 적은 유상증자나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메자닌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왔다. 그런데 이렇게 마련한 자금이 성장을 위한 투자보다는 주로 운영자금이나 채무상환에 쓰이면서 주식 수 증가로 오히려 주주의 지분가치만 희석된다는 비판이 컸다. 기술특례상장(성장성 높은 기업에 대해 심사 기준을 낮춰 상장하는 것)에 힘입어 코스닥시장에 진출한 ‘샤페론’ 등도 운영자금 마련을 목표로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이렇다보니 코스닥 시장은 여전히 장기투자보다는 ‘단타’용 시장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한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일부 코스닥 기업이 성장보다는 돈놀이를 위해 주식시장을 이용하는 문제가 있다보니 한국 사람들이 (국내 증시를) 떠나게 된다”며 “기술에 대한 평가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회계 투명성 문제는 수사를 엄격하게 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며 “특례상장 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주주가치 측면에서 본다면 상장의 엄격성과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경민 기자 kim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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