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약 한 줌씩 드시는 부모님, 괜찮을까?

이병문 매경헬스 기자(leemoon@mk.co.kr) 2024. 5. 2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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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해 부모님 건강을 한 번쯤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선물로 건강기능식품이나 몸에 좋은 보약을 떠올린다.

그러나 부모님 건강을 챙기고 싶다면 평소 복용하는 의약품을 챙겨보고 혹시 오남용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약은 양날의 칼과 같다. 약은 병을 낫게 하지만 오남용하면 또 다른 질환을 불러 수명을 재촉한다. 약은 잘 쓰면 명약(名藥), 잘못 쓰면 독약(毒藥)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병·의원의 접근성이 좋고 문턱이 낮아 언제든지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의료기관을 방문한 횟수는 연간 15.7회(2021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5.8회)보다 2.7배나 높다. 일본은 연간 11.1회로 한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병·의원에 자주 간다는 말은 약 처방을 그만큼 많이 받는다는 얘기다. 한 해 지출된 약값(건강보험 약품비·2022년 기준)은 약 23조4600억원으로 전체 요양급여비용(건강보험진료비 102조4000억원)의 23%를 차지한다. 건강보험 약품비는 2021년 처음으로 20조원을 넘어선 데 이어 계속 증가 추세다. 최근 8년간 연평균 증가율이 6.9%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올해 하반기 또는 내년 초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어 약품비는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의사는 약 처방을 쉽게 내고, 환자는 거부감 없이 쉽게 받아들인다. 혈중 LDL(저밀도 지단백)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면 고지혈증 약을 '보약'이라고 생각하고 먹으라는 의사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혈압도 마찬가지다. 혈압이 140㎎/Hg만 넘으면 의사는 혈압강하제를 권하고 환자들도 아무런 거부감 없이 처방받아 평생 먹게 된다.

나이가 들면 콜레스테롤(정상 범위 LDL 콜레스테롤 130㎎/㎗ 미만, 총 콜레스테롤 수치 200㎎/㎗ 미만, 중성지방 수치가 150㎎/㎗ 미만)이나 혈압(정상 범위 수축기 120㎜Hg, 이완기 80㎜Hg 미만) 수치가 올라가게 된다. 40~50대 이상 중장년층 상당수가 약 복용 기준의 전 단계나 경계선에 걸쳐 있다. 이들은 식습관과 생활습관 개선보다 '약물'에 쉽게 의존한다. 또한 감기로 병원을 갔을 뿐인데 4~5가지 약을 받아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열이 나면 해열제, 두통에는 진통제, 기침이 나면 천식약, 콧물이 나오면 비염약, 식욕이 없다면 소화제, 약 때문에 위가 아픈 것을 막기 위해 위장약을 처방한다.

국내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66세의 35.4%가 5개 이상 약물(다약제)을 90일 이상 복용하고 있으며, 10개 이상을 복용하는 비율은 무려 8.8%에 달했다. 이는 김선욱 분당서울대병원 교수,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교수, 윤지은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연구팀장이 2012~2021년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을 받은 66세 젊은 노인 330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 결과다.

조사 결과 66세 인구의 53.7%에서 1종 이상의 '노인 부적절 약물'을, 1인당 평균 2.4개를 복용하고 있었다. 노인 부적절 약물은 노인에게 이득보다 부작용이 클 수 있어 처방에 신중을 요하는 약품으로, 소화성궤양용제 '에스오메프라졸마그네슘' 성분이나 위산분비억제제 '라베프라졸나트륨'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노인 부적절 약물을 사용한 66세 인구 65만명을 5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사망 위험이 25% 증가했으며, 3등급 이상 장기요양 등급(일상생활에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장애)을 받을 가능성 역시 46% 높았다.

또 다른 연구 결과에서도 한 달 동안 매일 5개 이상 약을 복용하는 65세 이상은 44%였고 1년간 매일 5개 이상 약을 복용하는 경우도 10%에 달했다.

약물 오남용은 미국·일본도 마찬가지다. 워싱턴포스트는 평소 5가지 이상 의약품을 처방받아 복용하는 인구는 65~69세 25%, 70~79세 46%(2017년 기준)라고 보도했다. 위산역류억제, 심장병, 우울증, 불면증 및 기타 질환과 관련해 20개 이상 약을 복용하는 사례도 흔했다.

일본은 지바대병원이 조사한 결과 노인 환자의 26%가 10개 이상 약을 복용하고 있고 이 중 48%가 '고령자 주의 약물'로 나타났다. 이처럼 다양한 약물을 동시에 복용하는 것을 'polypharmacy(폴리파머시·다제약물)'라고 한다. 특히 신진대사 기능이 떨어진 고령층이 다제약물에 길들여지면 현기증, 착란, 낙상 등에 노출될 우려가 있고, 무엇보다 약물 부작용으로 병·의원을 찾으면 또다시 의약품을 처방해 '처방행진(prescribing cascade)'이란 악순환에 빠진다.

고혈압약을 먹으면 발목이 붓는 경향이 있는데, 병원에 가면 의사는 이뇨제를 처방하고, 이뇨제는 칼륨결핍증을 초래한다. 또다시 병·의원을 찾아가면 칼륨을 떨어뜨리는 약물을 처방받는데, 이는 메스꺼움을 유발하고, 또다시 다른 처방약을 받는다. 이는 착란 상태로 이어지고 또 다른 약물 처방을 필요로 한다.

심장병 가운데 심방세동 및 판막질환자는 와파린(항응고제)을 복용하는데, 다른 약과 함께 먹으면 약효가 아주 좋아지거나 떨어진다. 약효가 확 높아지면 뇌출혈이 생기고, 확 떨어지면 판막이 망가진다. 부정맥 환자는 소화제산제(위산분비억제)를 잘못 먹으면 상태가 매우 악화될 수 있다.

박진식 세종병원그룹 이사장은 "와파린 약을 복용하고 있는 환자분들에게 다른 약이랑 함께 먹으면 안 된다고 아무리 주지시켜도 척추관절약을 무의식적으로 동시에 복용해 와파린 약효가 확 올라가 온몸에 멍이 드는 경우를 종종 본다"면서 "다양한 약을 동시에 먹는 '폴리파머시'는 약물 간 상호작용에 의해 질환을 초래하고 이는 또 다른 약물 처방으로 이어져 약물부작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대표적 노인성 질환인 척추·관절병으로 병원에 가면 3~4개 약을 처방받게 된다. 통증과 관련해 처방받은 소염진통제는 혈압을 높일 수 있다. 혈압을 높이는 대표적 호르몬은 '레닌안지오텐신'이고, 혈관을 확장해 혈압을 낮추는 대표적 생리 활성물질은 '프로스타글란딘'이다. 이 프로스타글란딘이란 물질이 만들어지려면 특정 효소들(COX)이 작용해야 한다. 그런데 COX 효소는 통증에도 관여한다. 즉 COX를 억제하면 진통을 줄일 수 있다. 이를 이용한 소염진통제가 개발돼 있는데, 이를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SAIDs)라고 한다.

아스피린과 같이 우리가 복용하는 진통제의 상당수가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다. 이 약물은 통증 억제 효과가 뛰어나 골관절염이나 류머티즘관절염의 통증 억제를 위해 많이 사용된다. 문제는 약이 통증을 줄이면서 동시에 혈압을 낮춰주는 프로스타글란딘 형성도 억제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약을 먹고 통증이 줄었지만 혈압이 확 오르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젊은 사람은 프로스타글란딘이 일정 수준 이상 생성되기 때문에 소염진통제를 복용해도 혈압 조절에 별문제가 없지만 고령자는 고혈압에 쉽게 노출된다.

약물 오남용은 최근 세계 의료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캐나다, 호주에서 시작돼 미국 의료계를 중심으로 '탈처방(deprescribing)'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약을 안 쓰고 최고의 치료법을 찾자는 것이다.

장수 국가인 일본은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약을 멀리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사회 전철을 밟고 있는 있어 귀를 기울일 만하다. 일본 니가타대 명예교수인 오카다 마사히코 의학박사('죽을 때 후회하지 않을 의사와 약 선택법' 저자)는 "연령과 타고난 체질, 자연치유력을 고려하지 않고 약부터 건네는 의사는 좋은 의사가 아니다"며 "약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어 당신이나 가족이 10가지 이상 약을 복용하고 있다면 담당 주치의에게 약을 줄여줄 것을 요청하라"고 조언한다.

우리나라도 약 처방을 줄이려면 △약제급여 적정성평가 등 제도적 보완 △환자가 약 효능, 부작용과 위험성을 이해하기 쉽게 개선 △환자 및 보호자 인식과 노력 등이 필요하다. 2001년 도입된 약제급여 적정성평가는 의약품 처방을 줄이는 의사에게 절감된 약제비의 30%를 인센티브로 주고 있지만 효과가 없다. 의약분업 취지가 무색하다.

환자나 보호자의 노력도 중요하다. 실제로 의사가 약 처방을 줄이려고 하면 "왜 약을 안 주냐"고 따지는 환자가 적지 않다. 불필요한 약은 '독약'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고령 환자의 자식들은 부모에게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고 말만 하지 말고 지금 당장 복용하는 약이 몇 개이며 어떤 용도로 먹는지 파악하는 게 최고의 효도인지 모른다. 약은 가장 중요한 간이나 신장에 부담을 준다. 몸안의 화학공장인 간(肝)과 정수기 역할을 하는 신장(콩팥)은 매일 다양한 약을 먹게 되면 기능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다.

약처방전도 환자가 알기 쉽게 바꿔야 한다. 병원에서 처방전을 쓸 땐 거의 대부분 영어로 쓴다. 환자나 보호자는 한글로 써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영어로 약품명이 표기돼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 때문에 환자나 보호자는 대학 졸업자라도 어떤 성분의 약이냐고 묻기보다 식전·식후 몇 알을 복용해야 하느냐에만 관심을 갖는다. 영어나 한글 처방전 뒤에 '어떤 약'인지 보다 자세하게 써줘야 한다. 의사나 약사들은 시간 부족과 함께 한글로 풀어 쓰는 게 더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부정적이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웬만한 가정집은 상비약을 두고 있지만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효능이 눈에 잘 띄고 쉽게 표기돼 있지 않아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

약은 아는 만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기 전에 약학정보원 홈페이지에서 의약품과 성분, 제조사를 검색할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운영하는 의약품안전나라에서도 의약품 정보와 안전한 사용법, 부작용 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정희원 교수는 "의료 이용자 및 의료진 모두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노인 부적절 약제 복용은 장기적으로 기능 저하를 촉진할 우려가 있으며, 약의 부작용이 더 많은 의료 이용과 약 처방을 부르는 처방 연쇄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병문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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