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 귀환` 이재용의 메시지…“‘HBM 초격차’로 제압하라”

장우진 2024. 5. 2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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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현 삼성전자 신임 DS부문장 부회장. 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인공지능(AI) 반도체 패권다툼 전쟁 중 '장수'를 교체하는 초강수를 뒀다. 이는 언제나 '세계 최초·최고'였던 삼성 반도체의 초격차가 최근 SK하이닉스와 인텔 등 경쟁사들의 추격에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 대해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 회장은 선친인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이 이룩해 놓은 '삼성 제일주의'에 흠집이 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참을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순한 사업적 의미를 넘어 삼성 반도체를 다시 반석 위에 올려놓으라는 가문의 명령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이 선대회장은 LG카드가 1990년대 후반 삼성카드보다 회원수에서 앞서고 있다는 보고를 받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고, 이로 인해 한때 매각설이 나온 적이 있었다는 후문이 있다. 그만큼 이 선대회장은 '삼성=1위'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사법 리스크로 지난해까지 경영에 전념하지 못했던 이 회장이지만, 본격적인 AI 반도체 시대에 진입한 만큼 이번 기회에 다시 '초격차' 정신을 살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위기감을 이번 인사에 담은 것으로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삼성전자는 상반기 내에 SK하이닉스 등 경쟁사보다 먼저 HBM3E(5세대) 12단 제품을 양산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이를 시작으로 전 부회장의 '초격차 재건' 움직임이 본격화 될 지 주목된다.

삼성전자는 21일 정기 인사 시즌이 아님에도 전영현 미래사업기획단장 부회장을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장으로 선임하는 '원 포인트' 인사를 단행했다. 이에 대해 회사측은 "전 부회장은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와 배터리 사업을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라며 "그 동안 축적된 풍부한 경영노하우를 바탕으로 반도체 위기를 극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는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의 갑작스런 용퇴 선언에 따른 후속 조치다. 이에 대해 회사 내부에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최근 재계 인사의 키워드가 '젊은 세대' 육성인 점을 감안했을 때 '올드보이'가 귀환한 점, 정기 인사 시즌이 아님에도 '깜짝 인사'를 낸 것은 미래 반도체 시장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현 체제의 쇄신이 필요하다는 이 회장의 결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올 1분기 실적 발표에서 HBM 공급 물량을 3배 이상 확대하고, 업계 최초로 HBM3E 12단 제품을 2분기 중 출시해 하반기 램프업(생산량 확대)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공급 확대와 수요처 확보로 SK하이닉스와의 시장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포석이 이번 인사의 배경이다.

하지만 HBM의 경우 SK하이닉스에 뺏긴 주도권을 어떻게 찾아오는지가 관건이다. 이와 관련, 미즈호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해까지 HBM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시장을 양분했지만, 올해는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이 삼성전자를 10%포인트 이상 앞설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HBM3를 대규모로 납품하는 등 거래량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데 비해, 삼성전자의 성과는 상대적으로 미진하다는 평가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가 HBM 사업 호조에 힘입어 고부가 D램 생산량을 끌어올리면서, 2022년 말 15%포인트 이상으로 벌렸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세계 D램 시장점유율 격차는 작년 3분기에 4%포인트 수준으로 좁혀지기도 했다.

올 들어 삼성전자의 주가 흐름이 SK하이닉스와 비교해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이 같은 시장의 평가를 증명해준다. SK하이닉스는 이날 19만2000원에 거래를 마쳐 올 초보다 34.8% 올랐지만, 삼성전자는 7만8400원으로 1.5% 하락해 대조를 이뤘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주가 부진은 HBM 부문의 경쟁력 회복 기대감이 약화됐기 때문"이라며 "무엇보다 HBM3 이상 제품의 출하가 최대 고객사로 본격화 돼야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삼성전자는 이 회장의 부친인 이건희 선대회장부터 '일등주의' DNA를 이어오고 있다. '반도체 초격차'를 앞세우던 삼성전자가 HBM 시장에서 밀렸다는 평을 받는 자체만으로도 가문의 명령을 이행하지 못했다는 평까지 나온다.

삼성전자는 당장 이번 인사의 후속 인사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내년 3월에는 경 사장을 비롯해 노태문 MX사업부장 사장, 박학규 최고재무책임자(CFO) 사장, 이정배 메모리사업부장 사장 등의 사내이사 임기가 만료된다는 점에서, 연말 임원인사 폭은 작년보다 더 커질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이와 관련, 오일선 CXO연구소 소장은 "내년 3월에 임기를 앞둔 경 사장이 자진 사퇴라는 모양새로 퇴진하고 전 부회장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내년 경 사장이 물러날 때까지 기다려서 경영 개선을 이뤄내기엔 경영 환경이 다소 급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장우진기자 jwj1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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