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쉴 권리’ 상병수당 도입 2년 뒤로 밀렸다

박준용 기자 2024. 5. 2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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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상병수당 도입 2025년서 2027년으로 연기
공약·국정과제 포함했다가 입장 바꿔…시범사업도 부실
상병수당 시범사업이 시작된 2022년 7월4일 서울 종로구 국민건강보험공단 종로지사에 관련 배너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노동자가 다치거나 질병을 겪어 일하지 못하는 기간 소득을 보전하는 상병수당 도입을 사실상 다음 정부로 연기한 것을 두고 시민사회·노동계에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애초 정부는 이 제도를 2025년부터 전국에 도입한다고 밝혔는데, 윤석열 정부는 제도 도입을 국정과제에까지 포함해놓고도 2027년 이후 도입으로 미뤘다.

2024년 5월17일 정부 자료 등을 종합하면, 보건복지부는 올해 2월 발표한 제2차 건강보험 종합계획에서 “2024년 3단계 시범사업과 2025년 상병수당 통합 시범사업 후 평가를 거쳐 2027년부터 본 사업 제도화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상병수당은 현재 1단계 사업(2022년 7월부터 시작, 6개 지방자치단체)과 2단계 사업(2023년 7월부터 시작, 4개 지방자치단체)이 일부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고, 올해 7월부터 지방자치단체 4곳에서 3단계 시범사업 운영이 예정돼 있다. 이런 과정을 친 뒤 2025년부터 또 다른 시범사업(통합 시범사업)을 하고, 2027년에 전국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복지부 쪽은 이를 두고 “모든 시범사업이 다 종료가 돼야 구체적인 대안에 대해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라면서 말을 아꼈다.

복지부의 이번 발표 내용은 기존의 상병수당 추진 계획과 차이가 크다. 앞서 코로나19로 ‘아프면 쉴 권리’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면서 2020년 7월 노·사·정 사회적 협약 체결을 계기로 상병수당 제도 도입 논의가 진전됐다. 같은 해 정부는 2022~2024년 시범사업을 거쳐 2025년 상병수당을 보편적으로 도입을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도입 논의는 문재인 정부가 본격적으로 진행했지만, 첫 시범사업은 2022년 7월 윤석열 정부 때 이뤄졌다. 상병수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으로 약속했고, 정부 출범 후 국정과제에도 포함됐다. 이 때문에 윤석열 정부 초기만 해도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복지부는 2022년 7월 “상병수당 시범사업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로,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오랜 과제로 남아있던 상병수당을 도입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올해 들어 입장을 바꿨다. 이를 두고 김흥수 아프면쉴권리공동행동(준) 공동대표는 “2027년 이후로 제도 도입을 미룬 것은 사실상 이번 정부에서 도입하지 않겠다는 취지”라고 지적했다.

2022년부터 진행된 상병수당 시범사업도 부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먼저 상병수당 지급 금액이 너무 적다. 시범사업은 최저임금의 60%를 질병·부상으로 일하지 못한 기간에 지급하도록 했다. 이 기준이면 2022년에는 하루 4만3960원, 2023년에는 하루 4만6170원이 지급된다. 김 대표는 “치료비를 내야 하고, 생계 부담을 겪는 노동자에게 지금처럼 5만원 이하를 지급한다고 해서 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제노동기구(ILO) 상병급여협약(1969년)’을 보면, 상병수당은 △보장기간 최저 52주 이상 △(최저임금이 아니라) 근로능력상실 전 소득의 60% 이상이 보장돼야 한다고 권고한다. 실제로 국외의 상병수당 도입 국가들은 최저임금이 아닌 질병·부상을 겪기 이전 소득의 60∼70%를 지급한다.

게다가 2단계 시범사업에서 정부는 소득 하위 50%(기준 중위소득 120% 이하, 가구 재산 7억 원 이하)에게만 상병수당을 주기로 하면서 지급 대상 기준을 더욱 좁혔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당초 지급 기준에 사각지대(프리랜서 등 사회보험 미가입자, 65살 이상, 외국인 등)가 있다. 그런데 (기준이 맞는 사람 중) 소득이 낮은 사람에게만 준다고 하면, 수당 지급 기준에 해당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이 있을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는 제도의 힘을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프리랜서·외국인 등이 지급받기 까다로운 사각지대도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게 최 활동가의 설명이다.

정부가 도입 의지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상병수당 관련 입법 동력도 떨어진 상황이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 제50조(부가급여)에 따라 대통령령으로 정하면 상병수당을 지급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하지만 원활한 제도화를 위해 법적 근거 마련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이 때문에 상병수당을 법령에 구체화하는 법안을 강은미·배진교 정의당 의원과 정춘숙·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했었다. 하지만 이 법안들은 소관위원회에 계류돼 있다가, 2024년 5월 말 21대 국회 임기 종료로 폐기를 앞두고 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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