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 오류보다 더 심각한 ‘숨은 지표’가 부동산 흔든다

공성윤 기자 2024. 5. 2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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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 최후 보루인 공제조합 출자증권, 작년 대비 증가…주택정비사업 낙찰률 8.0% 불과
최근 19만 호 주택 공급 누락에 미분양 축소 의혹까지 불거지며 ‘과잉 공급’ 변수 추가돼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O월 위기설'. 올해 초 '4월 위기설'이 증권가와 일부 언론에서 거론된 이후 매달 위기 심리가 고조되고 있다. 위기설의 진원지는 건설업계다. 특히 최근 정부의 주택 공급 통계에서 약 19만 호가 통째로 누락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과잉 공급에 따른 건설 경기 위축 우려가 더욱 커졌다. 정부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의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지표는 속속 공개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공식 집계되지 않는 '숨은 지표'다.

정부나 업계가 따로 발표하지는 않지만 건설사의 자금 경색 실정을 엿볼 수 있는 자료가 있다. 각 건설사의 건설공제조합 출자증권 중 경매에 나온 증권의 규모다. 건설산업기본법에 의해 건설공제조합 조합원이 되려는 건설사는 반드시 조합에 출자해야 한다. 그러면 건설사는 출자금만큼 조합의 지분을 갖게 된다. 해당 지분을 입증하기 위해 조합은 '좌수'로 표시된 출자증권을 건설사에 나눠준다. 주식회사에 투자해 그 지분인 주식을 갖게 되는 것과 같다. 주식과 마찬가지로 배당금도 받을 수 있다. 건설공제조합 조합원은 총 1만3883개사, 출자 좌수는 431만7000좌다. 지난 5년간 매년 늘어났다.

1월17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의 태영건설 PF 사업장인 '마곡 CP4 개발사업' 현장 ⓒ시사저널 최준필

중소건설사 위주로 출자증권 경매行

건설공제조합 출자증권은 양도나 매각도 가능하다. 다만 양수인·매수인은 건설사로 제한돼 있다. 또 출자증권을 처분하면 조합으로부터의 대출 규모가 줄고 대외 신용에도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이를 양도·매각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최근 경매시장에 나온 출자증권 규모가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시사저널은 경매 정보 플랫폼 지지옥션을 통해 2021년부터 2024년까지 4년간 매년 1~4월에 매각기일이 잡힌 '건설공제조합 3사(건설공제조합·전문건설공제조합·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출자증권 건수와 초기 감정가를 살펴봤다. 건수의 경우 2021년 45건, 2022년 38건, 2023년 29건, 2024년 34건 등으로 나타났다. 작년까지 매년 줄어들다가 올해 증가했다. 감정가를 보면 2021년 18억4300만원, 2022년 19억3200만원, 2023년 11억6300만원, 2024년 13억4300만원으로 집계됐다. 역시 올해 들어 다시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경매 규모는 건설업종의 평균 자산에 비춰보면 일견 작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지반조성·미장·도장 등 소규모 공사를 전문으로 하는 전문건설사 출자액을 고려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5월초 기준 건설공제조합 조합원 중 전문건설사의 최소 출자 예치금액은 5200만~5800만원(34~38좌)이다. 건설공제조합보다 전문건설사 비중이 큰 전문건설공제조합의 경우 4000만~5000만원(43좌~53좌)으로 가입 기준이 더 낮다. 올해 경매에 부쳐진 출자증권의 건당 평균 감정가(3950만원)에 비춰보면, 소규모 전문건설사를 중심으로 자금 경색이 심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신용도와 대출 규모가 쪼그라드는데도 건설사들이 출자증권을 경매에 내놓는 건 자의에 의한 게 아니다. 건설공제조합 관계자는 "건설사가 자금난에 처해 빚을 갚지 못할 경우 채권자가 출자증권을 압류해 경매에 부친다"고 설명했다. 전문건설사가 채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출자증권을 포기하는 것이다. 출자증권을 모두 상실하는 경우 조합원 지위를 잃게 돼 건설업을 유지할 수 없다. 사실상 폐업 수순을 밟는 것이다. 한편 출자증권은 민간 채권자가 아닌 지자체나 조세 당국 등이 압류할 경우 공매에 부쳐지게 된다. 공매시장에 나온 출자증권까지 고려하면 실제 건설사의 자금난은 더욱 심각하다는 뜻이다.

ⓒ시사저널 박정훈,임준선

건설사 1284곳 폐업신고...12곳은 실제 부도

이는 공식 수치로도 입증된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4월 건설사 폐업신고(일부 업종 폐업 및 업종 전환 포함)는 1284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규모가 큰 종합건설사는 187건이고 나머지 1097건은 전문건설사다. 전체 폐업신고 건수는 코로나가 한창인 2021년 같은 시기의 1009건에 비해 27.3%(275건) 증가했다. 자금난을 견디다 못해 부도난 업체는 올해 1월부터 5월 초까지 종합건설사 2곳, 전문건설사 10곳 등 모두 12곳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시기(5곳)와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늘었다.

자금난이 심화되면서 업계는 몸을 사리고 있다. 이 같은 긴축 경영의 실태를 가늠할 수 있는 또 다른 지표가 있다. 주택정비사업 낙찰률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안전진단 등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풀어 정비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1·10 대책'을 발표했다. 그 후속조치로 지난 3월 실제 사업 요건이 완화되면서 올 5월초까지 전국에서 104건의 재건축·재개발 시공사 선정 공고가 쏟아져 나왔다. 이를 비롯해 각 민간주택 정비사업조합이 올 1월부터 발표한 시공사 선정 공고는 재공고를 포함해 총 159건(취소 공고 제외)이다. 이 중 건설사가 응찰해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사업은 얼마나 될까.

시사저널이 조달청 나라장터를 통해 해당 공고 159건 중 입찰이 마감된 125건의 개찰 결과를 살펴봤다. 이 가운데 낙찰된 공고는 10건이었다. 낙찰률이 8.0%에 불과하다. 나머지 115건은 모두 유찰되거나 개찰 결과를 밝히지 않았다. 특히 유찰된 공고 중에는 분양 완판이 확실시되는 서울 강남3구(강남구·서초구·송파구)의 알짜 정비사업도 포함돼 있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연합뉴스

강남도 굴욕당한 재건축, 최대 4차례 유찰도

3월6일 강남구 도곡개포한신아파트 재건축조합은 공사비 4295억원에 시공사를 공모했다. 3.3㎡당 920만원으로 작년 전국 평균 공사비(687만원)를 훌쩍 넘는 규모다. 그럼에도 유찰되는 수모를 겪었다. 현장설명회에 현대건설·DL이앤씨 등 대형 건설사 10곳이 참여했지만 막상 응찰한 곳은 하나도 없었다. 개포한신 조합은 5월7일 같은 견적으로 다시 시공사 선정에 나섰다.

서초구 신반포27차아파트 재건축조합은 지난해 11월부터 세 차례나 유찰됐다. 첫 번째 공고에서 한 곳도 응찰하지 않자 3.3㎡당 공사비를 908만원에서 959만원으로 올려 다시 공고를 냈다. 하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에 SK에코플랜트만 단독 입찰했다. 송파구 잠실우성4차아파트 재건축조합은 더 열악하다. 지난해 12월부터 네 차례 공고를 냈지만 모두 유찰됐다. DL이앤씨가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입찰 확약을 하지 않아 계약이 결렬됐다.

서울 강북 한강변 신흥 지역인 '마용성'(마포·용산·성동)도 정비사업에서 고배를 마셨다. 신용산역 북측에 324세대 아파트와 업무·판매시설 등을 짓는 재개발사업조합은 지난 3월 유찰돼 시공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마포로1구역에 231세대 아파트 등을 세우는 재개발사업조합은 4월말 세 번째 시공사 선정 공고를 올리면서 3.3㎡당 공사비를 1050만원까지 늘렸다. 그러나 또 유찰됐다.

수익이 보장되던 서울 핵심 지역의 정비사업에 건설사가 등을 돌리면서 조합과의 갑을 관계가 뒤바뀐 모양새다. 주요 원인은 치솟는 공사비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올 3월 건설공사비지수는 154.85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HUG(주택도시보증공사)가 발표하는 서울 민간아파트 분양가 중 대지비 비율은 1월 78%에서 2월 45%로 떨어졌다. 건축비가 분양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주민들이 높은 품질의 마감재를 요구하면서 실제 공사비 부담이 더 커지다 보니 수주에 나설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공급 확대한다지만 시장은 소극적

이 와중에 터진 부동산 통계 사고는 건설업계에 과잉 공급이란 리스크를 또 하나 던졌다. 국토교통부는 4월30일 주택공급자료 시스템 점검 결과 주택 인허가 실적, 착공·준공 실적 등에서 총 19만2330호가 누락됐다고 발표했다. 서울 노원구 주택 수(19만2022호)와 맞먹는 집들이 통째 사라졌다 나타난 것이다. 정부는 이 같은 잘못된 통계를 근거로 최근 1·10 대책을 비롯해 작년 '9·26 공급대책' 등 대규모 공급책을 내놓은 상태다.

이번 통계 오류로 인해 정책의 '약발'이 떨어지는 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때마침 미분양 통계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도 커졌다. 국토부가 집계한 3월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4964호지만, 시장에서는 실제 미분양 주택이 10만 호에 가까울 것이란 추측이 제기된다. 이 같은 차이는 미분양 통계 집계를 시행사와 건설사의 자발적 신고에 의존하다 보니 축소 심리가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5월13일 기자간담회에서 "굉장히 유감스럽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다만 "기조에 혼란은 없다"며 공급 확대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중소 건설사가 문을 닫는 마당에 대형 건설사마저 수주에 나설 동인이 약화된 상황이라 건설업계의 호응은 한동안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5월14일 동향보고서를 통해 "올 3월 국내 건설수주는 13조5000억원으로 3월 실적으로는 6년래 최저치"라며 "전반적으로 공사 상황이 둔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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