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어촌 살린다…구슬땀 흘리는 수협중앙회

김정환 기자 2024. 5. 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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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 소멸·어획량 감소·어가 경영 상황 악화 상황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등 국회·정부 제안 예정
노동진 수협중앙회장 '현장 중시' 리더십 기대감 고조
노동진 수협중앙회장(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지난해 8월25일 전남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의 한 양식장을 찾아 고수온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국내 수산업계를 대표하는 수협중앙회가 오는 30일 개원할 제22대 국회에 전방위적으로 지원과 협조를 구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현재 관련 업계는 폭풍우 앞에 내몰린 상황이다.

우선 '어촌 소멸' 현상이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농림 어업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어가 인구는 8만7000여 명으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 9만명 선 아래로 떨어졌다. 1970년 90만 명 대비 10분의 1도 안 될 정도로 격감했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이 48%에 달해 고령 인구 비율이 절반에 육박한 것은 더 큰 문제다.

여기에 어획량은 나날이 감소하고 있다.

기후 변화 영향으로 수온이 급상승해 지난해 동해 오징어 어획량은 4279t에 그쳤다. 10년 전 7만8354t에서 95%가 증발했다. 전국 생산량도 2013년 11만8726t에서 지난해 2만4660t으로 80% 가까이 사라졌다.

연근해어업 어획량도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과거 1970년 72만4365t, 1980년 137만324t, 1990년 147만1810t으로 상승세를 탔으나, 2016년과 2022년 각각 90만7580t과 88만8694t을 기록하며,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가 경영 상황은 좋지 못하다.

연평균 소득은 2018년 5183만원, 2022년 5291만원으로 답보 상태다.

반면 유류비와 전기료 인상 등으로 각종 경영 비용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어가당 부채 규모 역시 눈덩이처럼 커지기만 한다. 2022년 5978만원을 기록했다. 이는 농가 부채(3502만원)보다 1.7배 많은 수준이다.

4월1일 수산업계와 중소기업계 관계자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위헌 여부를 가리기 위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고,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수협중앙회, '23대 수산 정책 과제' 선정…제도화 추진

각종 수산 통계 지표에 빨간불이 켜지는 등 어촌 경제 악화가 우려되자 수협중앙회는 전국 어업인의 현장 의견과 요구를 수렴했다.

이를 토대로 시급히 해결해야 할 '23대 수산 정책 과제'를 선정했다.

▲어업인 권익 강화(9개) ▲살기 좋은 희망찬 어촌(6개) ▲지속 가능한 수산 환경 조성(5개) ▲중앙회·조합·어촌 상생 발전(3개) 등 총 4개 주제에 걸쳐 각각 세부 요청 사항을 담았다.

수협중앙회는 국회 원 구성 이후 이 같은 과제가 제도화할 수 있도록 국회와 정부에 이를 제안할 방침이다.

그 첫 과제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요청'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전면적으로 확대 시행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5인 이상의 사업장에서 사망, 부상 등 중대 산업 재해 발생 시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문제는 이 법이 육상 사업장 기준을 적용하고, 수산업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법과 현장 간 괴리감이 클 수밖에 없다. 올해 초 '어선 안전 조업법' 개정을 통해 어선원 재해 예방에 특화된 제도가 마련됐다. 그러나, 내년 1월 법 시행과 맞물려 하위 법령이 만들어질 때까지 현장과 맞지 않은 제도를 따라야 한다.

그뿐만 아니다. 법이 정한 안전·보건 관련 수많은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선 전문가 도움이 요구되지만, 비용이 과다한 만큼 재정 지원이 절실하다.

2022년 2월8일 전남 여수시 국동항 인근에서 펼쳐진 '여수 해역 해상 풍력 발전 사업 반대 어업인 총궐기 대회'에서 어선 600여 척이 해상 시위를 하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황금 어장'을 앗아가는 '해상 풍력' 사업이 무분별하게 추진되지 않도록 '해상풍력 특별법'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는 호소도 포함됐다.

해상 풍력 사업 입지를 국가가 정하는 해외와 달리 국내에선 민간 사업자가 이를 주도한다. 그러다 보니 사업장이 난립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27.8GW 발전량 규모로 86개소가 해상 풍력 발전 사업 허가를 받았다. 정부 목표치인 14GW를 2배 가까이 초과한 규모다.

기존 허가 사업이 정상적으로 추진되면, 조업 구역 축소는 불가피하다. 91%인 78개소가 ‘해양공간계획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지정한 '어업 활동 보호 구역' 안에 터를 잡아서다. 국가가 입지 개발을 주도하는 것을 골자로 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다.

이 법안은 현재 제21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심의가 중단된 상태다. 다만 정부가 내년 경제 정책 방향에 '해상 풍력 특별법 입법 추진'을 담았고, 어업인은 물론 풍력 업계와 기후·환경·시민사회 단체도 관련 입법을 촉구하는 등 사회 각계의 합의와 공감도 충분히 이뤄진 상태여서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지난해 12월1일 수협중앙회와 한국수산업경영인중앙연합회가 공동 개최한 동해안 연근해 어업 대책 마련 국회 토론회에서 발언하는 노동진 수협중앙회장. *재판매 및 DB 금지


수협중앙회는 정부에는 수산업 관련 예산 확충을 바라고 있다.

기후 변화 영향으로 수온이 치솟으면서 '어장 지도'가 바뀌고, 각종 자연 재해도 많이 발생해 수산물 생산력이 저하한 상황을 개선해 달라는 요청이다.

실제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반도 해역의 평균 수온은 이를 관측하기 시작한 1990년 이후 가장 높았다. 고수온 지속일은 2018년 43일에서 2022년 64일로 늘어났다.

그 여파로 지난해 강원도 내 수협 회원 조합의 위판량을 보면, 방어는 5269t으로 전체 위판량(3만2,456t)의 16%를 차지해 1위에 올랐다. 반면 2021년까지 줄곧 가장 많이 잡혔던 오징어는 1378t에 그쳐 8위로 내려앉았다.

이에 ‘양식 보험 국고 보조 확대’와 ‘연근해 어선 감척’이 대응책으로 꼽힌다.

'양식 보험'은 자연 재해 피해 어가의 경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정부가 운영한다. 사업자는 수협중앙회가 맡고 있다.

그러나 2022년 말 기준 가입률은 37%에 그쳤다. 연평균 보험료가 890만원 수준으로 농작물 보험료(180만원) 대비 5배나 높은 탓이다.

현재 '농어업재해보험법'에 근거해 양식 어가가 부담하는 보험료의 50%를 정부가 보조하고 있으나, 보조율을 높여 가입률을 끌어올려야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동해 오징어처럼 어족 자원 이동으로 생산량이 줄어드는 문제는 어선 감척을 통해 풀 수 있다.

현재 정부가 수산 자원 회복을 위해 감척을 추진 중이긴 하나, 비용 대비 효과는 미미하다. 오히려 연근해 수산물 생산량은 어선 감척이 시작한 1990년대 초 147만t에서 지난해 95만t으로 뒷걸음질 쳤다.

이는 ▲감척이 어획 강도가 낮은 어선 위주로 소량만 이뤄지는 점 ▲폐업 지원금 수준(평년 수익액의 3년분)이 부채를 상환하기에도 어려울 정도로 낮은 점 등의 영향이 크다.

수협중앙회는 보상 기준을 현행의 2배 이상으로 높이는 등 대규모·집중적인 감척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동진 수협중앙회장(가운데)이 지난해 6월 15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열린 '우리 수산물 지키미 운동본부' 발대식에서 참석자들과 포즈를 취했다. *재판매 및 DB 금지


◇노동진 회장, '현장 중시' 소신으로 정부·국회 움직여

이번 수산 정책 과제 선정은 노동진 수협중앙회장이 앞장서 이끌었다.

노 회장은 지난해 3월 취임 이후 1년 만에 전국 수협 회원 조합 91곳 중 40곳을 찾아 어촌 현장 목소리를 경청했을 정도로 '현장 경영'을 중시한다.

이는 금융권 최초 '복합 점포' 출범이라는 업적을 낳았다.

복합 점포는 제1·2금융권인 수협은행과 수협 상호금융이 한 공간에 입점한 형태다. 투자 비용이 많이 들어 수도권 진출이 힘들었던 조합에 수협중앙회가 영업 장소를 제공하고, 개설 비용도 무이자로 지원해 준다.

이로써 소규모 조합도 복합 점포를 통해 영업 기반을 수도권으로 넓혀 신규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됐다.

수협중앙회는 지난해 서울 수협은행 금융센터 3곳에 조합 9곳을 입점시킨 데 이어 올해도 조합 10여 곳과 손잡고 복합 점포를 개설할 계획이다.

조합 재정 지원 자금 대규모 확대도 노 회장이 현장의 애로 사항을 익히 알고 있어서 가능했다.

조합 재정 지원 자금은 지난해 1000억원에서 올해 1800억원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금융 시장 침체에 따른 부실 위험이 커진 상황에서 자금 지원을 통한 일선 수협의 건전한 성장을 돕겠다는 취지다.

그의 현장 중시 소신은 정부와 국회마저 움직였다.

양식업 소득 비과세 한도 상향이 좋은 예다.

지난해 말 기준 양식 수산물은 227만t으로 전체 생산량 316만t 중 70%를 차지했다. 그러나, 소득 비과세 기준은 어획 방식인 '어로 어업'이 5000만원인데 반해 '양식업'은 3000만원에 불과했다.

노 회장은 국회 토론회, 국회 재정위원회 위원 면담 등을 통해 불공평한 세제 개선 필요성을 거듭 제기했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 소득세법 개정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해 양식업 소득 비과세 한도 역시 5000만원으로 상향했다.

극심한 어획 부진을 겪은 오징어 어가 300곳에 총 75억여원 규모 긴급 경영 자금이 지원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지원된 자금에서 부실이 생기면 수협이 부담하겠다"고 노 회장이 정부와 국회에 제안하면서 정부의 긴급 지원 대책이 급물살을 탈 수 있었다.

노 회장은 지난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 대처에도 신중하면서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자칫 수산물 신뢰가 무너질 경우 수산업 자체가 붕괴할지도 모르는 국가적 이슈였기 때문이다.

그는 취임 즉시 국내 수산물 생산자 대표자로서 대대적인 수산물 안전 홍보와 소비 촉진에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노 회장은 이를 앞으로도 수십 년간 지속할 이슈로 보고, 수산물 소비 동향을 지속해서 예의 주시해 상황에 따라 기민하게 대응할 방침이다. 수산물 안전 확보와 소비 촉진 활동을 장기 과제로 펼쳐나갈 계획이다.

그는 지난해 취임사에서 “전국을 돌며 조합장과 조합원의 바람을 적어 둔 수첩을 가슴에 품고, 회장직에 서게 됐다"며 "귀중한 뜻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역량과 성심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1년간 이를 현실로 만들었다.

“제22대 국회가 새롭게 구성되는 즉시 정치권의 협조를 구해 시급한 수산 현안 해소에 주력하겠다”는 그의 말이 하나둘 열매를 맺기를 수산업계가 기대감 속에 지켜보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ac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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