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 장례식 갈 돈 없어요” 울던 필리핀人 도운 의사...8개월 뒤 생긴 일

이가영 기자 2024. 5. 21. 07:5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장례를 치르라고 돈을 빌려준 의사에게 필리핀 이주노동자가 8개월 후 돈을 갚으며 편지를 썼다. /현대병원 박현서 원장 페이스북

충남 아산의 한 병원에서 치료받은 이주노동자에게 부친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선뜻 큰돈을 빌려준 의사의 사연이 전해졌다. 이 이주노동자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8개월 후 돈을 갚으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아산시 온천동에 있는 현대병원 박현서 원장은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작년 9월 급성 감상샘기능항진발작증으로 치료받은 필리핀 이주노동자 A씨의 사연을 전했다.

박 원장에 따르면, 일주일간 입원 치료 후 건강을 되찾은 A씨는 퇴원을 앞두고 침대에 앉아 처량하게 울고 있었다. 필리핀에 계신 아버지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A씨는 집안의 가장이었다. 암에 걸린 어머니를 아버지가 돌보고 있었다고 한다. 동생들은 아직 어렸기에 A씨가 버는 돈으로 필리핀에 있는 가족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A씨는 “비행기를 타고 필리핀에 가서 아버지 장례를 모셔야 하는데 비행기표 살 돈이 없다”며 울었다.

박 원장은 두말없이 100만원을 봉투에 담아주며 “어서 필리핀 가서 아버지 잘 모시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박 원장은 “내가 빌려주는 거니 나중에 돈 벌어서 갚아요. 내가 빌려줬다는 얘기는 절대 아무에게도 하지 말고”라고 말하며 A씨 손에 봉투를 쥐여줬다고 했다.

박 원장은 “그렇게 비행기 여비도 쥐여주고, 퇴원비도 돈 벌어서 내라고 하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고 했다. 8개월이 흐른 이날 오후, 어떤 젊은 외국 사람이 진료실 밖에서 간호사와 실랑이하고 있었다고 한다. 대기 환자가 20명이 넘는데, “원장님께 꼭 드릴 게 있다”며 들여보내 달라고 요구했던 것이었다.

박 원장은 “어디서 보던 낯익은 얼굴이길래 1분만 얘기를 들어주자 했는데 두꺼운 봉투와 영문으로 된 편지를 살며시 내밀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더라”고 했다. 이어 “그제서야 나는 A씨가 잊지 않고 8개월 만에 돈을 갚으러 왔다는 걸 알고 눈물이 글썽여졌다”며 “그도 마찬가지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고 전했다.

A씨는 박 원장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잘 매장해 드리고, 이제 다시 입국해 돈을 벌고 있다며 “너무 늦게 갚아서 미안하다”고 했다고 한다. 박 원장은 “고국의 어려운 가족에게 송금하면서 매달 한푼 두푼 모아서 이렇게 꼭 갚으려고 애를 쓴 걸 보니 더 눈물이 났다”고 했다.

다만 20여 명의 대기 환자들이 ‘왜 저 사람 먼저 봐주냐’고 항의하는 바람에 A씨에게 “잊지 않고 와주어서 고맙다. 건강하게 잘 지내길 바란다”고만 얘기하고 헤어졌다고 했다.

A씨는 편지에서 “돈을 갚는 데 너무 오래 걸려서 죄송하다. 선생님이 빌려주신 돈으로 아버지 장례를 치를 수 있어 정말 감사하다”고 적었다. 이어 “언제나 선생님을 위해 기도했다”며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늦게 돈을 갚아 죄송하다”고 했다.

박 원장은 “외국인 노동자들, 대부분 순수하고 정직하다”며 “단지 우리와 피부색, 언어가 다르다고 무심코 차별하고 편견을 가진다면 A씨 같은 외국인들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은 100만원의 돈보다, A씨가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한없이 기쁘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