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난 M&A 본능…한화오션, MRO·해양플랜트 양 날개 키운다

정용석 시사저널e 기자 2024. 5. 21.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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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해양플랜트 업체 지분·호주 조선방산업체 인수 나서
14년 만에 인수전 뛰어들어…조선·해양 융복합 선사 도약 노려

(시사저널=정용석 시사저널e 기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필두로 방산 부문 성과에 날개를 단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올해부턴 함정 설비·유지·보수(MRO), 해양플랜트 사업 확장에 나섰다. 한화오션을 통해서다. 최근 한화오션은 싱가포르 해양플랜트 업체 지분을 인수했다. 이어 호주 조선·방산 업체 '오스탈'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인수합병(M&A) 본능'이 아들인 김 부회장에게도 이어지는 모양새다.

한화오션이 본격적으로 M&A 시장에 뛰어든 건 14년 만이다. 한화그룹에 인수되기 전 대우조선해양 때가 마지막이다. 조선업 불황기가 시작되기 전인 2010년 전후로는 M&A 의지가 컸다. 대우조선해양은 조선업황이 살아있던 2009년 미국 풍력발전 업체 드윈드를 5000만 달러(약 673억원)에 인수했다. 다음 해엔 약 200억원을 들여 삼우정공으로부터 선박 블록·조선기자재 업체인 삼우중공업을 인수했다.

조선업 침체기가 시작되면서 끊긴 M&A 명맥은 한화그룹이 한화오션을 인수하면서 다시 살아나는 모양새다. 2020년대 초반부터 상선 사업을 중심으로 업황이 되살아나면서 수익 구조가 개선됐다. 한화그룹이란 든든한 대주주도 만났다. 계열사를 향한 전폭적인 지원이 가시화됐다.

2023년 5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 후 한화오션으로 사명을 바꿨다. ⓒ연합뉴스

한화그룹의 실탄 지원이 든든한 배경

M&A를 추진할 실탄도 마련됐다. 한화그룹이 대규모 자금 지원책을 펼친 결과다. 지난해 5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이 한화오션을 인수하면서 2조원을 납입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주주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1조4970억원을 수혈받았다. 유사시 한화그룹이 추가 지원할 가능성도 있다.

'한화 효과' 덕택에 한화오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223%까지 낮아지면서 재무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사업 역량 강화를 위한 투자 여력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게 업계 평가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화오션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조8787억원이다. 전년(1조1126억원) 대비 68% 증가한 규모다.

올해 첫 투자는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나왔다. 5월13일 한화오션은 싱가포르 증시에 상장된 다이나맥홀딩스 지분 21.5%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거래 규모는 약 910억원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이번 투자에 참여하면서 양사 지분은 총 23.9%가 됐다.

이번 투자는 ㈜한화의 풍력과 플랜트 사업을 양수받는 내용의 사업구조 개편에 이은 후속 투자 성격이 강하다. 한화오션은 4월3일 이사회를 열고 ㈜한화 건설 부문에서 풍력을, 글로벌 부문에서 플랜트 사업을 양수하기로 의결했다. 플랜트 사업 양수 가액은 약 2144억원이다. 이번 지분 투자 규모와 합치면 약 3000억원에 이른다.

당시만 해도 "해양플랜트 사업을 영위하는 한화오션에 육상플랜트 사업이 어떠한 시너지를 가져올지 불분명하다"는 시장의 우려가 제기됐지만, 한화오션은 되레 추가 투자에 나섰다. 한화오션은 시장의 우려와 달리 기존 사업과 양수 사업 간 시너지 효과가 충분하다고 봤다. 육상과 해양의 업황 사이클이 달라 사업 결합을 통해 리스크에 대응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사업 경험이 풍부한 기존 한화 플랜트 사업 내 설계·조달·시공(EPC) 인력을 확보해 해양플랜트 업체인 한화오션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오션은 글로벌 해양플랜트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생산 능력 확대를 통해 향후 수주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이나맥홀딩스는 해양플랜트 상부구조물을 전문적으로 제조하는 기업이다.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 및 하역 설비 등을 전문적으로 설계·제조하는 업체다. 한화오션을 포함한 국내 조선사들은 해양플랜트 생산 역량은 뛰어나지만, 설계 기술이 부족해 설계 전문성이 있는 해외 기업을 찾아 컨소시엄 형태로 국제 입찰에 참여해 왔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다이나맥홀딩스는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설비(FPSO),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저장하역설비(FLNG) 등 핵심 제품들에 대한 제조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부유식 해양플랜트 수요가 증가하는 글로벌 시장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자 한다"고 했다.

2014년 이후 국제유가가 하락세에 접어들며 글로벌 해양플랜트 시장이 잠잠했지만, 고유가 시대가 지속될 경우 바닷속 LNG 채굴을 위한 FLNG 등의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영국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해양플랜트 사업에 투자된 금액은 총 1705억 달러(약 230조원)다. 최근 10년간 해양 프로젝트에 투자된 연간 규모 중 가장 많은 수준이다.

다음 인수 대상 후보로는 호주 방산 조선업체 '오스탈'이 강력하게 거론된다. 오스탈은 호주에 본사를 둔 조선업체다. 호주 지역을 비롯해 미국 앨라배마 현지에 조선소를 두고 있다. 미국 해군에 선박을 설계·건조해 납품하는 주요 방산업체이기도 하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연합뉴스

오스탈 인수까지 넘보는 이유

한화오션은 내년 상선 시장이 다소 축소될 것이란 시장 전망이 나오자 상선 시장보다는 특수선 시장 경쟁력 확보에 방점을 찍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화오션은 오스탈 인수에 성공할 경우, 국내 최초 에너지·조선·해운 산업 전반을 모두 영위하는 조선·해양 융복합 선사가 된다.

한화오션이 오스탈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는 미 해군 함정 MRO 사업에 뛰어들기 위한 핵심 요건이기 때문이다. 사업을 따내기 위해선 현지 조선소 운영이 전제조건으로 작용한다. 미국은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0년 제정한 '존스법'에서 미국 내 건조 선박만 미국 내 운항을 허용한다. 해외 건조 함정은 안보, 자국 조선업 보호 등을 이유로 운항을 금지하고 있다. 한화가 오스탈을 인수할 경우 미 함정 사업까지 노릴 여건이 마련된다.

지난 3월 오스탈 측은 한화오션의 인수 제안에 대해 거절 의사를 밝혔다. 반면 "불발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한화오션 측 입장이다. 한화 측은 인수를 자신하는 이유로 그간 한화그룹이 호주 연방정부와 방산 분야에서 K9자주포, 레드백 등 수출을 통해 협력 관계를 구축해 왔다는 점을 꼽고 있다. 한국과 호주 정부가 우호적이라는 점도 긍정적 요인이다. 한화오션 측은 앞서 진행한 글로벌 로펌과의 검토 작업을 통해 "규제 당국 승인 가능성이 높다"는 조언도 들었다고 밝혔다.

최근 호주 측이 한화오션의 오스탈 인수 승인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하면서 분위기도 무르익고 있다. 리처드 말스 호주 부총리 겸 국방장관은 이달 초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의 만남 이후 두 회사 합병 건에 대해 "오스탈의 문제이고 오스탈은 민간기업"이라며 "(호주) 정부 입장에서는 한화가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는 오스탈의 몸값이다. 한화오션 측은 "인수 금액을 오스탈에 제시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오스탈의 몸값이 최소 9000억원 이상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거래 규모가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지난 3월 오스탈 측이 한화오션의 현장 실사를 하루 앞두고 실사 취소를 통보한 것도 몸값을 높이기 위한 꼼수로 보인다"면서 "'규제 당국의 낮은 승인 가능성'을 거절 사유로 밝혔지만, 이면에는 여러 매수자와 경쟁시켜 회사의 몸값을 높이려는 노림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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