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컷] “베이비박스는 소멸해야 합니다”

박성원 기자 2024. 5. 2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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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박스 설립자 이종락 목사(가운데)와 관계자들이 20일 서울시 관악구 난곡로 소재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 담벼락에 설치된 베이비박스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산모가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맡기려면 이름과 생년월일 등 간단한 인적 사항을 남겨야한다./박성원 기자

“베이비박스는 소멸해야 합니다” 베이비박스를 설립한 이종락 목사의 말이다.

영아 유기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베이비박스(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는 2009년 말부터 서울시 관악구 소재 교회에 설치돼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이 목사의 둘째 아들은 뇌병변 장애가 있어 15년 동안 병원 생활을 했다. 그 기간 동안 자기 아들과 같이 병원에 누워있는 많은 아이들을 돌봐줬다. 그 후 이 목사에게 아이를 맡기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 수가 많아지자 2009년 12월 교회 담벼락에 한국형 베이비박스를 설치하게 됐다.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가 운영하는 베이비박스는 문 열림과 동시에 벨소리가 울린다. 벨이 울리고 10초 안에 보육사는 베이비박스 안에 있는 아기의 상태를 케어하고, 상담사는 밖으로 나가 산모와 상담을 한다. 산모가 아이를 키우겠다 결심한 경우엔 일시적으로 아기를 맡아 한 달에서 6개월 정도 돌봄서비스를 제공한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는 경우엔 출생신고를 먼저하고 아기가 좋은 가정에 입양 갈 수 있도록 입양 진행 기간 동안 아기를 돌본다. 출생신고조차 할 수 없는 경우나 출산 사실을 외부로 알리기를 꺼릴 경우, 산모는 귀가 조치시키고 구청에서 아기를 인도할 동안 맡아준다. 베이비박스를 찾은 산모들의 상담율은 96% 정도 되는데, 이 중 원가정에 복귀한 아이는 24%, 출생신고 후 입양된 아이는 13%, 시설에 맡겨진 아이는 63% 정도 차지한다(최근 3년 평균 기준).

베이비박스를 찾은 미혼모가 직접 쓴 편지. '절대 입양보내지 말아달라. 꼭 찾으러 가겠다'라는 글귀가 쓰여있다./박성원 기자
베이비박스 관계자가 20일 서울시 관악구 난곡로 소재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에서 위기영아를 돌보고 있다./박성원 기자

주사랑공동체는 “최근 베이비박스를 찾는 이들이 줄어든 상황”이라며 지난해 출생미등록 아동 전수조사로 위기에 놓인 임산부(위기임산부)가 위축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해 6월 경기도 수원시에서 벌어진 ‘수원 냉장고 영아 유기 사건’ 이후 영아 유기에 대한 공분이 치솟았고, 엄마인 피의자의 이야기는 언론에 노출됐다. 이를 두려워하는 위기임산부는 베이비박스의 도움조차 받지 못하게 됐다.

20일 서울시 관악구 난곡로 소재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에서 케어받는 위기영아 모습./박성원 기자
베이비박스가 열리는 동시에 울리는 알람벨. 벨이 울리는 동시에 상담사는 밖으로 나가 산모와 상담을 하게 된다./박성원 기자
베이비박스가 있는 서울시 관악구 난곡로 소재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왼쪽에 십자가가 설치된 건물) 전경. 이곳은 높고 가파른 언덕에 위치해있어 위기임산부나 산모가 베이비박스로 향하는 내내 아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박성원 기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는 보호출산제를 입법화했고, 오는 7월 19일부터 시행된다. 보호출산제는 위기임산부가 아기를 키울 수 있도록 상담하고 지원하는 법이다. 숨어있었던 위기임산부를 상담하고 아기를 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있게 해준다는 취지가 베이비박스와 결을 같이 한다. 이종락 목사는 “해당 법이 잘 정착해 베이비박스가 없어지길 간절히 바란다”며 이를 위해 위기임산부가 아기를 키울 수 있게 국가 재원 마련도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임산부의 출산, 아이 양육 및 입양 등을 위해 민간이 아닌 국가가 나서야 할 때다.

베이비박스 설립자 이종락 목사가 20일 서울시 관악구 난곡로 소재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에서 베이비박스를 찾은 위기임산부, 산모 등의 손편지가 들어있는 파일을 보여주고 있다. 파일에는 2010년부터 작년까지의 편지가 꽂혀 있었다. 주사랑공동체는 현재까지 2143명의 아이를 보호했다./박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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