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Thank you"

김예지 목원대 관현악·작곡학부 교수 2024. 5. 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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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전 여름, 미국 오하이오주의 한 주립대학에서 내 유학은 시작됐다.

여러 학교에 오디션 CD와 원서를 보내고 기다리던 중, 이름이 생소한 이곳에서 전액 장학금을 지원해 주겠다며 합격통지서가 왔다.

땡큐라고? 땡큐라니?, 내가 방금 오디션을 봤는데, 나한테 고맙다니? 무슨 뜻일까? 내가 너무 잘 한걸까? 왜 고맙다는 말을 했을까? 뭐가 고마운 걸까? 뜻밖의 땡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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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목원대 관현악·작곡학부 교수

여러 해 전 여름, 미국 오하이오주의 한 주립대학에서 내 유학은 시작됐다. 여러 학교에 오디션 CD와 원서를 보내고 기다리던 중, 이름이 생소한 이곳에서 전액 장학금을 지원해 주겠다며 합격통지서가 왔다. 큰 고민 없이 이곳에서의 유학을 결정했다. 학교 이름이 도시 이름이니 만큼 그 곳의 주산업이 학교였으며 인구는 당시 내가 살던 대전 전민동 인구와 비슷한 3만 명 남짓이었다. 다운타운의 메인 스트리트를 따라 걸으면 동네 유일한 우체국과 서점이 있고, 근처 북카페에 1.49 달러짜리 커피를 시키고 종일 앉아 있으면 아는 친구들을 모두 만날 수 있는 아기자기한 동네였다.

사람들은 호의적이었다. 길 가다 마주치는 사람들도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어쩌다 주차위반을 해도, 시청에 찾아가 잘 몰랐다고 사정을 얘기하면 벌금을 면제해 주기도 했다. 한국에서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미국에선 잘 통했다. 날씨마저 좋았다. 밤 9시가 돼야 어두워지는 그곳은 낮 동안 고온의 기온에도 습하지 않은 청량함이 특징이었다. 미국에 유학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매일을 보냈다.

입학 후 한 달여쯤 지난 어느 날, 오케스트라 좌석 배치를 위한 오디션 공고가 났다. 한국에서 이미 많은 콩쿠르와 오디션을 경험했으니 새로울 일이 아니었다. 열심히 연습했고 오디션 날이 다가왔다. 세 명의 교수가 심사위원이었는데 한국 심사위원들처럼 날 무섭게 노려보거나 냉소적인 태도로 앉아 있진 않았다. 웃으며 날 맞이했고 간단한 인사도 했다. 낯선 곳에서 처음으로 평가받는 자리라고 생각하니 긴장하긴 했지만, 진심으로 연주했다. 연주를 마치고 나니, 가운데 앉아 있던 여자 교수님이 부드럽고 강단 있는 목소리로 "Thank you"라고 했다. 땡큐라고? 땡큐라니?, 내가 방금 오디션을 봤는데, 나한테 고맙다니? 무슨 뜻일까? 내가 너무 잘 한걸까? 왜 고맙다는 말을 했을까? 뭐가 고마운 걸까? 뜻밖의 땡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 후 7년간 이어진 유학생활동안 수많은 시험과 콩쿠르와 오디션에서 Thank you를 듣고, 그것이 우리의 "수고하셨습니다"와 다를 것이 없는 말임을 깨달았다. 나중엔 그 말을 당연하게 여기게 됐지만, 첫 오디션에서 들은 그 첫 Thank you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입학 오디션을 포함해서 수없이 많은 탈락과 불합격을 겪으며, 누군가가 나의 연주에 고맙다는 말로 반응할 수도 있다는 것이 생소할 만큼 나는 연주자로서 자존감이 낮아져 있었던 것 같다.

연주자가 무대에 선다는 것은 상당한 시간과 관심과 정성, 집중된 연습으로 만들어낸 음악을 청중과 공유한다는 것이다. 청중은 그것을 듣고 즐기고, 공들인 연주를 완성해서 들려준 연주자에게 자신이 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한다. 연주자는 청중에게 들을 "Thank you"에 책임질 수 있는 연주를 준비해야 할 것이고, 청중은 연주자가 오랜 시간 갈고 닦아 보여주는 연주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할 것이다. 이 너무 당연해서 설명하고 있기도 머쓱한 연주자의 태도, 그리고 연주자와 청중의 관계의 본질에 대해서 나는 미국에까지 가서야 깨달았던 것이다.

유학가서 배운 건 그 외에도 수없이 많지만, 오늘까지 연주자로서 그날, 그 Thank you를 잊지 않고 살려고 한다. 내 연주에 와주는 청중에게도, 그들이 건네는 Thank you에도 되레 내가 감사하고, 또 그 Thank you가 아깝지도 부끄럽지도 않은 연주자가 되려고 한다. 앞으로도 연주자로 사는 동안 나태해지거나 혹은 좌절을 겪을 때 지금의 이 다짐을 상기시켜 줄 소중한 깨달음이라고 생각한다. Thank you.

김예지 목원대 관현악·작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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