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중 거짓말·여론전...‘팬덤 방탄’에 기댄 사회병폐 종합세트

고유찬 기자 2024. 5. 21.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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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뺑소니’ 김호중
18일 가수 김호중(33)의 전국 투어 콘서트 '트바로티 클래식 아레나 투어 2024'가 열리는 경남 창원시 성산구 창원스포츠파크 실내체육관 인근에 마련된 포토존. 김호중은 뺑소니 운전 논란에도 이날 공연을 강행했다./연합뉴스

‘음주 뺑소니’를 저질러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트로트 가수 김호중(33)씨가 20일 출국 금지됐다. 경찰은 김씨를 비롯, 김씨 소속사 대표 등 관계자들이 범행을 조직적으로 은폐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수사 중이다. 김씨는 사고를 낸 후 곧바로 도주했고, 그 사실이 드러난 후에도 소속사 관계자들과 합세해 거짓말을 하고 증거를 없앴다. 범행을 부인하며 두 차례 예정된 공연을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김씨의 팬들은 “유죄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너무하는 것 아니냐”며 김씨를 감쌌다. 모두 과거 같으면 볼 수 없었던 일이다. 김씨는 이날 변호인을 통해 “너무 괴롭다”는 심경을 밝히며 경찰에 자진 출석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경찰은 ‘준비가 되면 부르겠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사정 당국 관계자는 “검찰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셀프 출두’를 했던 어떤 정치인이 떠오른다”고 했다. 김씨가 이번 사태에서 보여준 거짓말, 버티기, 동정심 유발하기, 고위 전관 변호사 선임하기 같은 ‘사법 리스크 대응’ 수법에 한국 사회 전반의 병폐가 집약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소수의 열광적 지지자로 이뤄진 ‘팬덤’의 폐해가 정치권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열광적 지지 집단(팬덤)만 바라보며 자신을 ‘순교자’ ‘희생양’으로 연출해 동정 여론을 조성하는 일이 정치권뿐 아니라 연예계 등 일반 사회에서도 ‘뉴 노멀’이 됐다고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일단 팬이 된 후에는 자신의 결정에 부합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확증편향이 나타난다”며 “정치인 지지자와 연예인 팬의 심리 구조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정치권과 비슷한 ‘방탄 전략’

김씨는 팬클럽에 “이렇게 많은 식구(팬)들이 아파하는데” “조사가 끝나면 이곳 집으로 돌아오겠다” 같은 글을 썼다. 이를 두고선 개인 비리로 유죄를 선고받은 정치인들이 ‘비법률적 명예회복’을 언급한 일이 떠오른다는 반응도 나왔다. 하지만 김씨의 팬들은 “오죽 힘들었으면 그랬겠냐” “우리는 무조건 응원한다”고 하고 있다.

범죄 혐의를 일단 부인하고 보는 것도 정치권과 비슷하다. 김씨 측은 범행 5일 후 뺑소니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음주는 절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유흥업소 방문 사실이 드러났을 때는 “술잔을 입에만 대고 마시지 않았다” “차(茶)만 마셨다”고 했다. 뺑소니 현장에서 도주한 이유를 두고도 “공황이 와서”라고 했다. 범죄 혐의가 명백한데도 일단 버티면서 시간을 끌었고 18~19일 경남 창원 공연을 강행했다. 음주 뺑소니를 인정하고 출국 금지까지 당했는데도 23~24일 서울 공연 역시 진행한다고 한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강성 개딸 지지층’을 바탕으로 보궐선거·당대표 선거에 출마해 ‘방탄 면책 특권’을 거머쥔 전략과 유사하다”고 했다. 김씨는 창원 공연에서 23억원을 벌었고 오는 서울 공연 티켓 수입도 4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연 수익과 ‘법정 형량 감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고위 전관’ 동원 여론전

김씨의 변호인이자 전직 검찰총장 직무대행 출신인 조남관 변호사는 “20일 오후 김씨가 자진 출석해 조사받고 국민들에게 입장을 표명할 예정이었으나 경찰 측 사정으로 조사가 연기됐다”고 했다. 하지만 경찰 안팎에선 “어떻게든 구속을 면해보려는 얄팍한 여론전”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경찰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허위 진술, 증거 인멸로도 충분히 죄질이 나쁜데 이제 와서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시늉을 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김씨는 매니저가 자신의 옷을 입고 ‘대리 거짓 자수’를 하는 과정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정황이 속속 밝혀지는 상황이다.

◇팬덤에 의존하다 국민 상식과 멀어져

김씨는 진실을 털어놓고 용서를 구할 시간이 10일이나 있었지만 거짓말, 버티기, 동정심 유발하기, 고위 전관 선임하기 같은 ‘사법 리스크 대응 논리’로 일관하다가 국민 대다수의 분노를 샀다. 팬덤에 기대어 범행 책임을 회피하려다 오히려 국민 일반의 상식과 도덕 기준에서 멀어졌다는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무조건 뭉쳐야 산다’는 식의 집단주의 여론을 일부 강성 팬이 주도해 정상적인 다수 팬은 오히려 떠나가는 상황”이라고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런 식으로 가다가 김씨가 구속되고 중형을 선고받는다면 팬들이 받는 충격은 더욱 클 것”이라고 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팬들이 정치인이나 연예인을 우상으로 떠받들며 열광하니 ‘우상’이 된 본인들은 온갖 비상식적 행동을 저지르는데도 깨닫지 못한다”며 “그 대가는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감당하고 있다”고 했다.

◇김씨 측 향후 변론 전략은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은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사고 전 음주가 있었던 것으로 강하게 의심이 되지만 구체적 양은 확정을 못 한 상황”이라며 “수사 협조 여부와 증거 인멸 우려가 (구속 영장 신청에)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될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김씨가 마신 술의 종류와 체중 등을 계산해 시간 흐름에 따른 혈중알코올농도를 유추하는 위드마크(Widmark) 공식을 사용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법정에서 음주 증거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도 적잖다. 김씨 측 역시 경찰이 사건 초반 음주의 직접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사실을 알고 있다. 김씨가 음주 사실을 시인한 것도 ‘여론전’을 위한 것일 뿐, 법정에선 “마시긴 했지만 혈중알코올농도 0.03%에 이를 정도는 아니었다”는 식으로 음주 운전 혐의를 교묘히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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