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 역대급 실적… 새 회계제도로 부풀렸나

한예나 기자 2024. 5. 2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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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 “미래에 독 될 수도” 우려
그래픽=김하경

“지금 보험사들은 미래 보험사를 대상으로 집단적 도덕적 해이를 행하고 있다.”

지난 16일 금융감독원과 한국회계학회가 공동 주최한 보험 회계 세미나에서 한승엽 이화여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한 교수는 “새 회계 제도가 도입된 이후 보험업계에서는 공격적이고 임의적으로 회계 처리를 하고 있다”며 “금융 당국은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을 정리하듯이 몇몇 보험사를 문 닫게 할 각오로 임하지 않으면, 지금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보험사들의 회계 처리가 미래에 독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손해보험사들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 1분기(1~3월)에도 최대 실적을 줄줄이 갈아치운 가운데, 학계에서 이처럼 회계를 손대서 ‘실적 부풀리기’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새로운 회계 제도에 맞춰 영업과 판매 전략 등을 적절하게 세운 효과”라고 하고 있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보험사, 최고 실적 기록 경신

최근 보험사들은 역대급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20일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DB손해보험·메리츠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 등 손해보험사 5곳의 올해 1분기 당기순이익 합계는 2조5277억원으로 전년 동기 1조9921억원보다 26.9% 늘었다.

지난해엔 보험사 순이익이 13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생명보험사 22곳과 손해보험사 31곳이 거둔 순이익은 13조3578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45.5% 증가한 것으로, 역대 최고치다.

그런데 국내 보험 산업은 저출산과 고령화, 장기 불황 등으로 성장 한계에 봉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보험사의 수입 보험료는 237조6092억원으로 생보사를 중심으로 전년보다 6% 줄었다. 손보사만 떼놓고 봐도, 수입 보험료는 고작 4%쯤 늘었는데 당기순이익은 51%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손보사들이 좋은 실적을 기록하자, 회계상 이익을 부풀렸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픽=김하경

◇새 회계 제도 도입 후, 부풀려진 실적?

보험사들의 순이익이 큰 폭으로 늘어난 배경엔 지난해 보험업에 도입된 새로운 국제 회계 제도(IFRS17)가 있다.이 제도에선 보험사의 재무 성과가 계리(보험사의 회계)적 가정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현재 금융감독원은 이런 가정에 대한 기본 원칙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보험사 자율에 맡긴다.

보험사들이 자율적으로 가정하는 것 중 하나가 ‘해지율’이다. 해지율은 보험 가입자가 중간에 보험을 해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그런데 일부 보험사가 단기 실적에 유리한 방향으로 해지율을 가정한다는 말이 나온다.

예컨대, 최근 많이 팔린 손보사의 무해지 보험은 회사가 해지율을 높게 가정한다. 나중에 고객들이 해지를 많이 해 미래에 나갈 보험금이 매우 적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해지율을 해외 통계보다 10배 높게 가정하는 보험사도 있다”고 했다.

반대로 생명보험사의 단기납 종신보험의 경우, 기존 종신보험의 해지율을 적용한다. 종신보험은 사망할 때 보험금을 받기 때문에, 보험료 완납 후 해지율이 다른 보험보다 낮다. 하지만 단기납 종신보험은 가입자들이 완납 후 10년이 지나고 환급금을 받기 위해 바로 해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존 종신보험보다 해지율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10년 뒤 해지율을 낮게 잡는다면 단기납 종신보험의 수익성은 부풀려진다는 것이다.

◇미래에 ‘손실 부메랑’ 될 수도

해지율 등에 대한 가정이 빗나간다면, 나중에 보험사가 떠안을 손실이 지금 예상보다 커지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미국, 캐나다에선 무해지 보험의 해지율을 높게 가정했다가 실제로는 그보다 낮아서 1990년대 이후 보험사 5곳이 연쇄 파산했다. 전문가들이 “지금은 미래를 모른다며 편하고 공격적으로 가정하는 대신,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금융 당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규제·감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금융위는 지난 7일 “보험 산업이 단기 이익만 좇는 출혈경쟁을 벌여 소비자 보호와 건전성 관리에 소홀하다는 비판이 있고, 보험 개혁 회의를 통해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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