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실장이던… 박종규의 손때 묻은 대형 벼루
권총 사격술이 뛰어났고 수시로 총을 뽑아 들어 ‘피스톨 박’이란 별명으로 불린 현대사 인물이 있었다. 1964년부터 1974년까지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실장으로 위세를 떨쳤던 박종규(1930~1985)씨다. 소령 시절인 1961년 5·16의 주도 세력으로 참여했으며, 반도호텔에 있던 장면 총리의 집무실로 곧장 쳐들어간 것도 그였다. 당시 선글라스를 쓴 박정희 소장 바로 뒤에서 이낙선 소령, 차지철 대위와 함께 서 있는 사진이 유명하다. 1973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물러난 뒤에는 사실상 2인자 지위에 올랐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1974년 8월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으로 인해 경호실장에서 물러났고,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나 1980년 5월 신군부에 의해 권력형 부정 축재자로 지목됐다. 이후 의원직을 사퇴하고 재산을 헌납해야 했다. 신군부의 수장은 바로 그가 경호실장이었던 시절 부하인 경호실 차장을 지낸 전두환이었다.
독자 이용선(81)씨는 동양고속 인사·총무부장과 ㈜대우 고문을 지냈다. 1985년 박종규씨가 별세했을 때 이용선씨는 동양고속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품을 정리한 박씨의 처남이 이씨와 같은 직장에 있는 고교 후배였다. 나무로 만든 12각형 탁자 하나와, 너무나 무거워 아무도 가져가지 않은 벼루 하나를 이씨가 전달받게 됐다. 용이 새겨진 벼루는 가로 36㎝, 세로 24㎝, 높이 8㎝에 이른다고 한다. 이씨는 “혼자서는 도저히 들 수 없어 두 명이서 같이 들어 옮겼고, 이사할 때마다 곤욕을 치렀다”고 했다.
그 물건들은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박씨는 부정 축재자로 몰린 뒤 좌절감에 빠져 은둔 생활을 했다고 한다. 모친에게 물려받은 탁자 위에 양주 병을 올려 놓고 매일 한 잔씩 마셨다. ‘주군’을 잃은 죄책감에 시달린 나머지 폭음을 했다는 얘기도 있다. 또한 대형 벼루에 먹을 갈아 붓글씨를 쓰는 것으로 소일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55세 나이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것은 권력무상(權力無常), 이 네 글자를 잘 설명해 주는 현대사 유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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