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해외직구 금지 소동, 만약 당정 협의 했더라면

조선일보 2024. 5. 21.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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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조정실 이정원 국무2차장이 19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해외직구 관련 추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0일 “정부 부처는 국민 일상에 영향이 큰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당과 사전에 충분히 협의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정 협의 없이 설익은 정책이 발표돼 국민 우려와 혼선이 커질 경우 당도 주저 없이 정부를 강하게 비판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KC인증(국내 안전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의 해외 직구(직접 구매) 금지를 추진하다가 사흘 만에 철회한 것을 두고 정부를 비판한 것이다.

대통령실 성태윤 정책실장도 “해외 직구와 관련한 정부의 발표로 국민께 혼란과 불편을 드린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 “정부의 대응이 크게 부족했다”며 사과했다. 국민 안전을 위한 것이라도 소비자 선택권을 과도하게 제한했고, 저렴한 제품 구매에 애쓰는 국민 불편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을 미흡했던 부분으로 꼽았다. 대통령실이 신속하게 정책 오류를 직접 사과한 것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구체적으로 나열한 것 모두가 이례적이다. 총선 참패 이후의 현상이다.

그동안에도 당정 협의가 없었던 게 아니다. 정부와 여당은 취학 연령을 만 5세로 앞당기는 문제나 R&D 예산 삭감 같은 굵직한 정책 사안에서 ‘선(先) 조치, 후(後) 수습’ 같은 뒷북 대응을 해왔다. 대통령의 연구비 카르텔 비판 발언이 나온 지 두 달 만에 의견 수렴 절차도 없이 R&D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등 일방통행을 했다. 대통령의 지시나 정책 목표가 제시되면 당정 협의는 이를 걸러내기보다 사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됐다. 정책은 대부분 국회에서 법 개정을 통해 이뤄지는데, 국회를 책임진 당과 협의도 없이 해외 직구 금지 발표를 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런 한편으로 지금의 국민의힘 고위직 인적 구성으로 설사 당정 협의를 했더라도 ‘해외 직구 금지’ 발표를 막을 수 있었겠느냐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모두가 엘리트 출신이지만 민심 감수성이 떨어지고 대통령 눈치를 살피는 것이 체질화돼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국민의힘은 원내 부대표 13명 전원을 초선으로 임명했고, 이 중 10명은 1970년대생과 1980년대생으로 구성했다. 이들이 제 목소리를 내야 하고 그럴 여건이 만들어져야 한다. 인터넷 카페나 각종 동호회 같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여론이 빠르게 확산하는 시대 흐름과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 정부도 정당도 버텨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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