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감사의견 거절' 업체만 벌써 9곳···"옥석 가리는 계기 돼야"

왕해나 기자 2024. 5. 20. 17:3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돈줄 막힌 바이오]
◆ '40억 지원' 신청에 홈피 마비
정부 이어 민간투자 20% 급감
감원에 파이프라인 중단 속출
국가지원과제 유치 경쟁 치열
"창업땐 무조건 투자 편견 깨야"
생태계발전 위한 성장통 분석도
[서울경제]

바이오 업체들이 대·중소 규모에 관계없이 너도나도 정부·기관 과제에 선정되기 위해 뛰어드는 것은 그만큼 자금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국내 바이오 업계는 대내외 불확실성과 투자자 신뢰 하락 등으로 투자가 크게 위축됐다. 벤처캐피털 등 민간에서 유입되는 신규 투자는 물론이고 기존 투자분도 만기 이후 재투자가 되지 않고 끊기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다 ‘나눠먹기, 갈라먹기식’이라는 지적이 제기된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마저 올해 대폭 삭감됐다. 자금난으로 핵심 연구자 이탈이 속출하고 신약 파이프라인 개발을 중단하는 회사들이 잇따르고 있다. 자금난으로 올해 한국거래소에서 ‘감사 의견 거절’을 받아 상장폐지 기로에 선 곳만 9곳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국내 바이오 업계가 이 같은 성장통을 거치며 ‘옥석 가리기’가 이뤄지는 과정으로 한 단계 도약할 것으로 내다봤다.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는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조금 더 많이 준비하고 고민하고 느껴야 한다”며 “창업하고 상장하면 무조건 투자받는다가 아니라 더 많이 네트워킹하고 더 많이 성과를 내려고 노력하면서 목숨 걸고 경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1월 1차 사업에 이어 이달 2차 사업을 시작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국가신약개발사업 신규 지원 대상 과제 선정 사업은 갈수록 경쟁률이 치솟고 있다. 사업단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는 차수당 평균 6대1의 경쟁률이었는데 차수별로 계속 경쟁률이 오르고 있다”면서 “선정 기업 심사에 보다 심사숙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신약개발사업단은 유효 물질에 대해서는 12억 원, 비임상 물질에 대해서는 20억 원, 임상 1상 물질은 35억 원, 임상 2상 물질에 대해서는 70억 원 내외의 R&D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바이오 업계에 대한 투심은 좀처럼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바이오·의료 업종에 신규 투자된 금액은 2022년 대비 20% 줄어든 8844억 원이었다. 올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올해 1분기는 1563억 원으로 지난해 1분기 1520억 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대로라면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정부 R&D 예산과 민간 자본 등 모든 자금이 단절돼 바이오벤처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심지어) 대형 업체들도 정부 R&D 과제를 따기 위해 뛰어들고 있어 최근에는 몇 십 대 1까지 경쟁률이 올라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도 R&D 과제에 대한 성과를 만들어야 하니까 준비된 기업들에만 기회를 주고 초기 기업에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있으니 과감한 R&D를 할 수 없다”며 “이는 기회비용으로 이어져 향후 국가적인 바이오 경쟁력이 낙후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올해 자금난 심화로 한국거래소에서 ‘감사 의견 거절’ 판정을 받은 바이오벤처는 셀리버리·카나리아바이오·엔케이맥스·뉴지랩파마·제넨바이오·제일바이오·웰바이오텍 등 9곳이나 된다. 주요 감사 의견 거절 사유는 계속기업 가정의 불확실성으로 재무 건전성이 악화돼 기업 경영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2018년 성장성 특례 1호로 코스닥에 입성한 셀리버리는 2년 연속 감사 의견 거절을 받았다.

바이오벤처들은 파이프라인 개발 중단이나 연구 인력 축소 등 고육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기업의 성장성은 더욱 위축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CG인바이츠는 임상 1상이 진행 중이던 골관절염 치료제 ‘CG-650’, 신경병성 통증 치료제 ‘CG-651’,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 ‘CG-652’ 등의 개발을 중단했다. 파멥신은 핵심 파이프라인인 전이성 삼중음성 유방암 치료제 올린베시맙과 미국 머크(MSD)의 키트루다 병용 임상을 자진 취하했다. 제넨바이오는 사모펀드에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R&D총괄이 퇴사하는 등 핵심 연구자들이 대거 이탈했다. 관리종목 지정 유예 특례가 만료된 유틸렉스는 연구소를 총괄하던 주요 인력이 퇴사한 후 6개월 이상 채워지지 않고 있다. 유틸렉스 관계자는 “해당 인력이 퇴사한 것은 맞지만 이후 CGT사업부와 항체사업부 총괄하는 인력이 각각 충원 돼 R&D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바이오 업계의 위기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은 생태계 발전을 위해 필요한 성장통이라고 지적한다. 바이오벤처에 대한 정보를 살피고 구체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파이프라인을 바라보는 바이오 투자의 내실이 갖춰지는 시기라는 분석이다. ​​권소현 이노큐브 대표는 “현재 어려운 시기가 바이오 업계에 대한 성숙한 투자가 이뤄지는 계기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김명기 LSK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최근 “국내시장 침체로 바이오벤처들이 투자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투자자 관점에서 보면 지금이 오히려 한국 기업에 투자할 적기”라고 말했다.

왕해나 기자 haena07@sedaily.com이정민 기자 mindmin@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