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에 상륙한 북극곰이 마주한 것

한겨레 2024. 5. 20.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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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의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18) 아이슬란드 북극곰 표류 사건 1
캐나다 처칠에 한 북극곰이 자리에 엎드려 눈을 감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에 제보가 들어왔어요. 아이슬란드에서 북극곰 사냥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멸종에 치닫고 있는 북극곰을, 멧돼지 잡듯 주민이 신고하면 사냥꾼이 나서 사살한다고 해요. 세상이 정말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어요! - 제보자 IPB

“이건 거짓 제보예요.”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의 유일한 요원 왓슨이 확신에 차 말했습니다.

“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홈스의 물음에 왓슨이 신나게 대답했습니다.

“아이슬란드에서 서식하는 야생 포유류는 북극여우가 유일하거든요. 아이슬란드를 네 번이나 가봤기 때문에 잘 알죠.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어요. ‘아이슬란드 숲에서 길을 잃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빠져나올 수 있을까?’ 정답은 ‘일어서면 된다!’ 아이슬란드에는 작은 나무와 관목류가 대부분이지, 울창한 숲이 없거든요. 화산이 만든 척박한 섬이기 때문이죠. 게다가 이 섬나라는 위도가 높지만, 해류의 영향으로 바다가 얼지 않아요. 바다얼음(해빙)을 여행하면서 물범을 잡아먹고 사는 북극곰이 있을 턱이 없죠.”

왓슨이 잘 설명해 주었어요. 북극곰은 북극해와 이 바다를 둘러싼 육지를 여행하며 살아가요. 미국 알래스카와 캐나다 북극권과 그린란드(덴마크) 그리고 스발바르제도(노르웨이)가 서식지죠. 북극해의 바다얼음은 여름에는 줄고 겨울에는 늘어나죠. 북극곰은 이렇게 변화하는 얼음의 리듬에 맞춰 살아요. 한 곳에 정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해요. 하지만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 사이에는 사시사철 얼지 않는 바다가 가로막고 있죠. 천하의 수영선수라는 북극곰도 아이슬란드에 갈 수 없어요.

아이슬란드를 상징하는 새, 퍼핀. 한겨레 자료 사진

수백㎞를 헤엄치는 북극곰

수도 레이캬비크의 케플라비크공항을 향해 하강하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니, 아이슬란드는 마치 파란 바다에 떠 있는 달의 사막처럼 황량했어요. 보안검색대를 나오자마자, 홈스가 서둘러 가방을 집으며 말했지요.

“이런 곳에 북극곰이 살 리가 없군. 일단 해안가를 중심으로 수색해 봅시다.”

“왜 이리 급하세요? 일단 관광부터 하자고요.”

왓슨의 제안에 둘은 레이캬비크 산등성이에 있는 ‘펄란’(Perlan)에 갔어요. 두 개의 커다란 온수탱크를 개조해 아이슬란드 지형과 기후, 식생을 전시하는 자연사박물관이었죠. 오로라 파노라마 영상과 화산 쇼를 보고 나오는데, 한 전시물 앞에서 왓슨이 소리쳤어요.

“어, 이게 뭐지?”

하얀 북극곰 박제였어요. 전시물 밑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죠.

‘2008년 6월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북극곰 두 마리 중 한 마리의 박제이다. 당시 아이슬란드 해안경비대는 그린란드의 자연 서식지로 돌려보내려고 특수 제작된 이동용 우리에 넣어 보내려고 했으나, 이 북극곰은 탈출하려다가 총에 맞고 폐사했다.’

박제는 그린란드에서 빙산을 타고 떠내려온 북극곰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북극곰이 몇 년에 한 번씩 나타나는 모양이었습니다. 동물이라곤 북극여우밖에 없는 황량한 이 나라에서 북극곰 출현은 비일상적인 사건이었죠. 사람들은 북극곰 출현에 관해 이야기해 댔고, 다수의 역사 기록에도 꼼꼼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바이킹들이 섬에 정착한 직후인 890년이었습니다. 그 뒤 지금까지 600여 마리가 아이슬란드에 표류해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죠. 그런데, 북극곰은 머나먼 그린란드에서 아이슬란드까지 올 수 있었을까요?

“반장님, 수수께끼에 대해서 잘 설명한 논문이 있습니다!”

아이슬란드와 독일 연구팀이 2008~2011년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북극곰 네 마리의 환경호르몬을 조사한 연구였지요. 동시에 이들이 어떻게 아이슬란드에 도착했는지도 다루고 있었어요.

열쇠는 그린란드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얼음이었습니다. 동그린란드에서 아이슬란드의 웨스트피오르 지역까지 최단 거리는 280㎞입니다. 동그린란드 앞바다에 얼음이 얼면 거리는 더 짧아지겠죠. 과학자들은 이렇게 쓰고 있었습니다.

“북극곰 네 마리가 도착할 당시 동그린란드 바다얼음의 끝에서 아이슬란드 해안가까지 110~170㎞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북극곰은 수영을 잘하기 때문에 이 정도 거리는 며칠 만에 이동할 수 있다. 과거 기록을 보면, 한 암컷 북극곰이 평균 시속 3㎞로 9일 동안 687㎞를 헤엄친 적도 있다. 따라서 이삼일 수영하면 충분히 아이슬란드에 도착하리라 본다. 이들 북극곰을 해부한 결과, 극심한 영양실조 상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아마도 출발할 때부터 굶주렸던 것으로 보인다.”

상륙한 북극곰은 사살하라

그러니까 이런 상황입니다. 북극곰이 동그린란드 주변의 얼음 조각(빙산) 위에 있습니다. 빙산은 바다얼음 본체에서 떨어져 남쪽으로 흘러갑니다. 동그린란드 주변의 바다얼음 본체로 돌아가야 하는데, 북극곰은 방향 감각을 잃고 허둥댑니다. 결국 결심하여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치고, 헤엄치고, 또 헤엄치지만, 동그린란드의 얼음은 보이지 않고… 그러다가 남쪽의 황량한 갈색 땅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것이죠. 왓슨이 말했습니다.

“빙산을 타고 온 아기공룡 둘리와 비슷하군요.”

“둘리는 서울시 도봉구 쌍문동의 고길동네 집에서 신나는 삶을 살았지만, 아이슬란드에 상륙한 북극곰은 죽음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겠지. 아이슬란드는 북극곰이 살 만한 곳이 못 되니까.

“제보자의 말은… 이렇게 표류해 도착한 북극곰을 사냥꾼들이 죽이고 있다는 얘기일까요?”

과거 아이슬란드 신문을 뒤져보니, 표류 북극곰에 대한 뉴스가 꽤 있었습니다. 일부 북극곰은 그린란드로 돌려보내기도 했지만, 대다수 북극곰은 사살되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죠.

2008년에는 한 달 동안 북극곰 두 마리나 목격되면서, 야생동물 사살을 두고 논란이 커졌습니다. 당시 환경부 장관은 전문가위원회를 결성해 대응 방안을 마련했죠. 그때 바로 지금까지 적용되고 있는 지침이 결정됩니다.

‘상륙한 북극곰은 사살하라!’

*5월27일에 이어집니다.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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