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쇄국 정책’서 발 뺀 정부…설익은 발표에 혼란 빠진 국민들

조유빈 기자 2024. 5. 20.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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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 인증 의무’ 입장 사흘 만에 선회…“위해성 확인되면 직구 금지”
‘졸속 대책’ 비판 이어져…KC 인증 안전성도 도마에 올라

(시사저널=조유빈 기자)

정부가 국가통합인증마크(KC) 인증이 없는 품목에 대한 해외 직접구매(직구)를 금지하는 방안을 내놨다가 말을 바꿨다. 안전성 조사 결과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만 반입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해외 직구 원천 차단'에 대한 비판 여론에 불이 붙자 진화에 나선 모양새다. 직구 산업의 현주소를 모른 채 '졸속 대책'으로 혼선을 가져왔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정부는 향후 여론을 수렴해 법 개정 여부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KC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에 대해 해외 직구를 금지하는 정부 정책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온 바 있다. ⓒ연합뉴스

"직구 전면 차단 계획 안했다"…기존 발표 내용 어땠나

이정원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위해성이 없는 제품에 대한 직구는 막을 이유가 없고, 막을 수 없다"며 "국내 안전 인증(KC 인증)을 받지 않은 80개 품목의 해외 직구를 차단·금지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그런 안은 검토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80개 품목을 대상으로 관계부처가 집중적으로 사전 위해성 조사를 실시하겠다는 것"이라며 "사전 조사 결과 위해성이 확인된 품목을 걸러서 차단하는 작업을 추진한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정부의 말이 바뀐 건 사흘 만이다. 지난 16일 정부는 '해외 직구 급증에 따른 소비자 안전 강화 및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정부는 '국민 안전을 해치는 해외 직구 제품 원천 차단'을 강조했다. 특히 유모차나 완구 등 어린이 제품 34개, 전기 온수 매트 등 전기·생활용품 34개에 대해 KC 인증이 없으면 해외 직구를 금지한다며 'KC 인증 의무화'를 언급했다.

또 가습기 소독제 등 생활화학제품 12개 품목 역시 신고·승인되지 않은 경우 직구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법률 개정이 필요한 사항들은 연내 신속히 개정을 추진하고, 개정 전까지는 관세법에 근거해 6월 중에 위해 제품 반입 차단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에 개인의 해외 직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라는 불만과 함께, 직구 시장을 알지 못한 채 내놓은 '졸속 대책'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사실상 현대판 '쇄국 정책'이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그동안 직구를 통해 아이용품을 구매해 온 소비자들부터, 피규어·프라모델, 음향·악기·커피 등 취미용품을 직구로 구매해 온 이들을 중심으로 정책 철회가 이뤄져야 한다는 청원과 민원까지 빗발쳤다.

19일 이정원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이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해외직구 관련 추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비자 선택권 제한하는 것…KC 인증 의무 무리수"

정부는 기존 발표에서 해외 직구 급증에 따른 국내 산업의 충격을 완화하고, 경쟁력 제고를 지원하겠다는 입장도 내놓은 바 있다. 일명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로 대표되는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의 공세를 차단하고 국내 유통·제조업체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에 집중한 나머지, 직구를 통해 물건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의 입장은 반영하지 못했다는 목소리가 높다.

안전성 확보 방안으로 제시한 'KC 인증 의무'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정부가 KC 인증 상품은 안전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인증에 수백만원의 비용이 드는 데다 정기적으로 갱신까지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해외 판매자들이 한국 소비자들을 위해 인증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경우 국내 플랫폼에서 비교적 고가의 가격으로 제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인증 절차가 까다로운 EU 국가나 미국 등의 품질 인증 이력은 모두 배척하고, KC 인증 제품만 직구가 가능한 품목으로 인정하는 것에 대한 반발도 나왔다. KC 인증 제품에서 사고가 발생한 사례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획일적 안전 기준으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많은 희생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제품 중에도 KC 인증을 받은 제품이 있으며, 배터리 결함으로 인한 발화로 리콜된 갤럭시노트7 스마트폰 역시 KC 인증을 받았다는 글도 소비자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었다. KC 인증을 받은 '국민 아기 욕조'에서는 기준치 600배 이상의 환경 호르몬이 검출돼, 소비자들이 제조사와 유통사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KC 인증이 안전성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증 장사'가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오는 가운데, 이를 정책의 중심점으로 삼은 것은 무리수였다는 지적이다. 'KC 인증 의무'에서 정부가 발을 뺀 것도 이 같은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인천시 중구 인천공항본부세관 특송물류센터에 쌓여있는 직구 물품들 ⓒ연합뉴스

직구 '일단 가능'…"축적된 데이터 통해 향후 조치할 것"

정부는 '사후 관리'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우선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에 한해서만 직구를 차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소비자들은 지금까지처럼 유모차, 어린이 완구, 피규어 등 상품을 직구할 수 있다. 다만 위해성 검사 결과에 따라 향후 일부 항목이 금지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정부는 "6월 중 시행되는 것은 실제로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만 반입을 제한하는 것으로, 산업부·환경부·서울시 등 관계 기관에서 그동안 진행해 온 해외 직구 제품에 대한 안전성 조사 결과와 앞으로 추진할 안전성 조사에서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에 한정해 반입을 제한할 계획"이라고 했다. 최근 카드뮴 등이 검출된 어린이용 장신구 등 특정 제품들을 지목한 것이다.

위해성 검사 결과는 '소비자24'에 통합된 해외 직구 메뉴에 공개한다는 계획으로, 검사를 통과한 물건은 앞으로도 계속 직구가 가능하다는 것이 정부 설명이다. 축적된 데이터와 자료를 검토해 유해물질이 많이 검출된 품목이 있다면, 여론을 수렴하고 이해관계자간 협의를 거쳐 향후 조치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KC 인증만 인정하겠다는 정책에 대한 재검토 가능성도 시사했다. 김상모 국가기술표준원 제품안전정책국장은 "KC 인증을 받은 제품이 안전하다고 확인이 되기 때문에 그런(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을 차단하는 방안을 제시했다"며 "KC 인증이 유일한 방법이 아니므로, 다양한 의견 수렴을 거쳐 법률 개정 여부를 신중히 검토해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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